백 투 더 스테이지 - 뮤지컬 '멤피스'
인종 차별의 벽 높고 견고하던 시대
백인DJ와 흑인가수의 유쾌한 반란
초연과 비슷한 배우·확 다른 무대
관객들,콘서트 보듯 뜨겁게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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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멤피스’는 두 개의 심장을 지닌 작품이다. 하나는 흑인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인종차별이다. 1950년대 미국 남부 테네시주 멤피스를 배경으로 백인 청년 ‘휴이’와 흑인 가수 ‘펠리샤’가 함께 겪는 차별과 갈등, 그리고 성공의 꿈과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리듬앤드블루스처럼 끈적하고 후련하다.
뮤지컬의 출발 지점은 소울과 로큰롤이 펄펄 살아 뛰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이다. 흑인 음악에 심취한 백수 청년 휴이는 용기를 내 빌스트리트의 흑인 전용 클럽에 들어선다. 그곳에서 클럽 사장 델레이의 여동생 펠리샤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단번에 그녀의 재능에 매료된다. 휴이는 펠리샤의 음악을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라디오 방송국 DJ에 도전한다.
하지만 백인 라디오 방송에서 흑인 음악을 트는 일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시대. 그의 시도는 번번이 거절당하고 만다.
그러던 중 휴이는 한 백인 전용 방송국에 몰래 들어가 펠리샤의 노래를 송출하는 의도적 사고(?)를 친다. 예상과 달리 청소년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방송국 사장 시몬스는 그에게 정식 DJ 자리를 제안하게 된다. 라디오를 통해 흑인 음악을 백인 사회에 소개하기 시작한 휴이는 빠르게 멤피스의 인기 스타로 부상하고, 그 덕분에 펠리샤 또한 주목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과 ‘몰래 한 사랑’은 보수적 도시의 현실과 계속해서 충돌하게 된다.
2002년 미국에서 초연된 뮤지컬로, 록스타 본 조비의 밴드 키보디스트였던 데이비드 브라이언이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멤피스의 실존 인물인 DJ 듀이 필립스의 실화가 모티브다.
국내에서는 2023년 초연됐고, 이번이 재연 시즌이다. 공교롭게도 관극한 날의 캐스트는 휴이를 빼면 모두 초연 때와 같았다. 정선아(펠리샤), 최민철(델레이), 최정원(글래디스), 이종문(미스터 시몬스), 조성린(게이터). 딱 하나, 초연 때는 이창섭 ‘휴이’였는데 이번엔 박강현으로 보았다. 물론 이창섭도 이번 시즌에서 휴이로 출연 중이다.
무대와 조명은 초연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졌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됐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대표적인 루트는 두 개다. 하나는 휴이와 펠리샤의 러브라인, 다른 하나는 음악이라는 해머가 인종차별의 벽을 부숴나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번 공연을 보면서 샛길 하나를 추가로 발견한 기분이다. 반복 관람의 진짜 재미는 이런 데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붙드는 것. 샛길은 바로 ‘펠리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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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봤을 때 펠리샤는 휴이 덕분에 방송에 데뷔하게 되지만, 대도시 프로듀서의 눈에 띄더니 자신을 키워 준 애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성공을 위해 뉴욕으로 떠나버리는 전형적인 미국 신데렐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펠리샤는 휴이를 만나기 전부터 그야말로 간절하게 성공을 꿈꾸며 준비하고 있었다. 그에게 성공은 부와 명예 이전에 차별받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기반이자 무대였다. 펠리샤는 휴이의 손을 잡았지만, 사실은 꿈을 위해 한동안 같은 방향을 걸었던 것이다.
이들의 길은 뉴욕행을 앞두고 진행된 TV 쇼의 분장실에서 갈라지게 된다. 휴이는 말한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걸어왔는데, 지금은 두 개의 길이 놓여 있네. 이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해.” 펠리샤는 답한다. “나는 끝까지 올라가야 해. 그게 내가 싸우는 법이니까.”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는 넘버가 있다. 펠리샤의 첫 번째 히트곡이자 대표 넘버인 ‘섬데이(Someday)’다. “언젠가 널 떠날 거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그저 예쁘기만 한 러브송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 시즌 펠리샤 역은 정선아, 유리아, 손승연이 맡고 있다. 모두 초연 배우들이다. 펠리샤의 극중 직업이 가수인 만큼 펠리샤의 넘버가 워낙 많다 보니 3인 3색 펠리샤의 콘서트 같은 느낌마저 든다. 리듬앤드블루스 창법에는 손승연이 가장 익숙하겠지만 정선아의 단단하면서도 빛을 간직한 고음의 금속성 질감은 입김처럼 하얀 탄성을 지르게 만든다. ‘컬러드 우먼(Colored Woman)’은 펠리샤라는 캐릭터를 농축시켜 놓은 넘버로, 정선아가 드라마 속 OST처럼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박강현의 ‘휴이’는 이창섭의 ‘휴이’와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다. 개그캐는 이창섭이 좋고, 박강현의 ‘휴이’는 확실히 더 괴짜스럽다. 고은성과 정택운의 ‘휴이’는 보지 못했지만 고은성은 박강현, 정택운은 이창섭과 묶을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최민철의 ‘델레이’는 초연 때부터 굉장히 잘 어울리는 캐릭터인데, 최민철의 기름 좔좔 보이스가 딱이다. 이번에 새삼 놀란 것은 최민철이 은근히 춤을 잘 춘다는 것.
관객의 반응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 이렇게 관객이 객석에서 배우들과 무대에 뜨겁게 반응하는 뮤지컬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는 펠리샤의 노래에 머물고, 누군가는 휴이의 괴짜스러운 모습을 눈에 담을 것이다. 각자 다른 넘버와 장면들이 마음에 붙겠지만 끝나고 나면 ‘자꾸 다시 생각나게 하는, 감칠맛 나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멤피스’는 한 번 보고 끝내기엔 아쉬운 작품이다. 관객들은 이 뮤지컬을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를 하나둘쯤 호주머니에 넣고 돌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멤피스가 마음에 한 줄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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