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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영웅들을 위한 애가

입력 2025. 07. 14   15:34
업데이트 2025. 07. 1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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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권 중령 육군21보병사단 화랑대대
박기권 중령 육군21보병사단 화랑대대



우리 화랑대대는 육군 부대사에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7월 전남 광산(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창설돼 7야전포병단(옛 2사단 포병여단, 현재 해체) 예하 부대로 1952년 철원지구전투와 1953년 금성지구전투에 참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부대장으로서 나는 그 기록을 자세히 찾아본 적은 없었는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6·25전쟁사 11권-고지쟁탈전과 정전협정 체결』이란 책을 펼쳐 들게 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대대의 기록을 찾아봤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화랑대대’라는 부대명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 대대의 기록은 거짓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 2사단 포병여단이 해체되면서 관련 자료마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역사 속에서 우리 부대의 자취가 지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부대 역사를 직접 확인해보기로 결심했다. 각종 공개자료와 참전자 증언·인터넷 자료를 뒤졌고, 더불어 육군 군사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그렇게 추적을 이어가던 끝에 마침내 문헌과 기록의 빈틈 속에서 기록되지 못한 전투 흔적들, 이름 없는 영웅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화랑대대는 1952년 7월, 7야전포병단 예하 부대로 창설돼 당시 63포병대대와 함께 철원으로 이동했고, 미5포병단에 배속돼 수도고지와 지형능선 전투(1952년 9월 23일~10월 14일)에 참전했다. 이후 미7사단에 배속돼 철원지구전투, 즉 삼각고지 및 저격능선전투(1952년 10월 14일~11월 24일)에서 화력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1953년 1월에 7야전포병단이 2사단 포병단으로 개편되면서 대대 역시 2사단에 소속됐고, 6·25전쟁 최후의 격전이라 불리는 2차 화살머리고지전투(1953년 6월)에서 결정적 기여를 했다. 또한 정전 직전인 7월 금성지구전투에서도 활약했다. 당시 기록에는 ‘화랑대대’라고 적혀 있지 않지만 우리가 7야전포병단과 2사단 포병단 소속으로 참전한 사실은 명백하다. 이 사실은 육군 군사연구소의 협조와 교차 검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조사를 통해 단지 과거를 되짚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부대의 영웅들을 다시 조명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전장의 중심에서 뜨겁게 임무를 수행했던 선배 전우들의 발자취는 오늘날 우리 부대원들에게도 더없는 교훈이자 자긍심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선배 전우들이 몸소 실천한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그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군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그분들의 뜻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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