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그들이 온다 - 전쟁 승패 가르는 무기 ‘정보력’
이스라엘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
30년 전부터 이란 내 스파이망 구축
압도적 정보력, 족집게 공격 이끌어
불법·비윤리 비난받는 스파이 활동
대량 살상 막고 국가안보에 필수
전쟁의 한 축 정보기관 제 역할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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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전면에 나선 이스라엘 정보기관
지난달 13일 이스라엘의 기습으로 시작된 이란·이스라엘 전쟁은 불과 12일 만에 이스라엘의 완승으로 끝났다. 나라가 점령된 것은 아니지만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공을 들여온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이 정밀 폭격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주요 산업시설이 파괴됐을 뿐 아니라 전쟁을 이끌어야 할 군 핵심 지휘관과 핵 과학자들이 족집게 공격으로 살해된 상태로 휴전했으니 이란의 패배가 명백하다.
이번 전쟁의 결과를 두고 이스라엘 공군의 기습 성공, 암반층 깊숙한 곳에 구축된 핵시설을 타격한 미국의 가공할 벙커버스터 GBU-57 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각국의 언론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압도적인 정보력을 최대 승전 요인으로 꼽았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관리들을 통해 확인했다며 이번 전쟁의 승리는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가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스파이 작전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30여 년 전부터 이란 내 스파이망을 구축해 온 모사드는 그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이란 주요 인사나 핵 과학자 등을 암살하는 공격적인 정보활동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이란 내 구축된 광범위한 스파이망을 가동해 전쟁 전면에 나서 직접 공격 임무를 수행했다.
이란에 잠입한 특공대와 현지에서 포섭된 첩자들은 수개월 전부터 드론과 미사일을 몰래 반입해 기지를 구축하고, 이스라엘 공군의 공습 직전 이란의 지대공 미사일 기지와 차량 발사대를 파괴해 방공망을 마비시켰다.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될 장거리 미사일 발사대도 파괴해 이란의 반격을 제한했다.
특히 그동안의 첩보를 바탕으로 공군의 폭격 목표를 특정하고, 이란 군 최고 지휘관들과 테헤란 고급 주택가에 있는 핵 과학자들의 자택 위치까지 정확히 파악해 공중 폭격과 이란 내에서의 드론 공격으로 이들을 일시에 제거했다.
이번 작전은 모사드와 이스라엘군이 합동으로 수행했는데 이란 군 수뇌부 제거를 위한 ‘붉은 결혼식’(암호명) 작전으로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 군 총사령관,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등 수십 명의 지휘관이 사망했다. 핵 과학자 제거를 위한 ‘나니아’ 작전으로는 10여 명의 과학자가 표적 살해됐다. 당장의 전쟁 수행 능력뿐만 아니라 장기 핵 개발 역량까지 일시에 제거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작전 수행은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기관의 임무 수행 범위를 뛰어넘는 것으로, 정보기관 역할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정보전의 중요성이 확대된 현대전
현대전에서 적 동향을 알아내고, 가짜 정보를 통해 적을 기만하며, 비전형적 수단을 통해 적을 공격하는 정보전의 중요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는 인간 스파이를 활용하는 휴민트(HUMINT), 통신감청 등 전자 신호를 활용하는 신호정보(SIGINT), 첩보위성과 정찰기를 활용하는 영상정보(IMINT) 등 전통적 정보수집뿐만 아니라 암살, 파괴, 선전 선동 등 비밀공작(Covert Action), 해킹과 시스템 파괴 등 사이버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정보분석 등이 모두 포함된다.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CIA 등 미국 정보기관은 러시아의 침공 훨씬 전부터 우크라이나 군과 정보기관 내 러시아 스파이들을 제거하는 방첩 작전과 정보요원들의 훈련을 지원했다. 또 전방에 감청기지 설치를 통해 러시아군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사이버 공격 대비 태세도 갖추도록 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초기 공격에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의 무기 지원뿐 아니라 정보 역량 지원이 큰 힘이 됐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더 공격적이다. 최근 수년간 이란 군 핵심 인사와 핵무기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가자지구 무장세력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주요 인사들이 모사드에 의해 암살됐다. 2020년에는 이란의 최고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가 승용차를 타고 가다 주차된 픽업트럭에 설치된 무인 원격조종 기관총으로 살해됐다. 2024년에는 하마스 최고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가 테헤란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혁명수비대 영빈관 침실에 미리 설치된 폭탄에 의해 살해됐다.
지난해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는 수년 전부터 헤즈볼라에 공급해 둔 특수 제작 무선호출기와 무전기를 동시에 폭발시키는 기발한 작전으로 수십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다쳐 전의를 상실케 했다. 통신 감청과 위치 파악으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정밀 폭격해 살해했다. 이스라엘의 적들에게 모사드는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공격해 올지 모르는 공포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전쟁에서도 모사드는 미사일과 드론 등을 수개월 전부터 여행용 가방과 컨테이너로 밀반입, 군사기지 공격과 주요 인물 제거에 활용했다. 이러한 대대적인 작전은 이란 내 광범위한 스파이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습 이후 이란이 최우선 대응으로 이스라엘 간첩 혐의자 수백 명을 체포하고, 재판과 처형을 신속하게 진행하면서 국민들에게 스파이 신고를 독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이스라엘군은 이란인을 대상으로 SNS를 통해 모사드의 연락처를 알리며 적극적으로 스파이를 모집했다. 모사드는 휴전 직후인 지난 6월 25일 자체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다비드 바르니아 국장이 “이번 작전에 협력해 준 이스라엘 군과 주요 파트너인 CIA에 감사를 전한다”며 이례적으로 공개 성명을 내는 등 자신들의 역할을 확인시켜 줬다. 이는 공포심과 패배 의식을 활용해 공세적으로 스파이를 모집하고, 이란 내부의 반정부 정서를 조장해 체제 전복까지 노리는 심리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평시의 정보전도 전쟁의 일환
모사드의 비공식 슬로건인 ‘우리는 기만으로 전쟁을 수행한다(By way of deception, thou shalt do war)’는 정보기관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문구다. 정보기관은 이번 전쟁에서처럼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조직문화, 철저한 보안 유지, 적 지역 내 우군(스파이) 활용 등 특화된 역량으로 전시 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군과의 긴밀한 협력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평시 정보전도 엄연한 전쟁이다. 정보기관의 요인 암살, 준 군사작전 등 비밀공작 활동은 흔히 불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며 비난받기 일쑤지만, 정보전이 국가안보를 위해 수행하는 전쟁의 일환임을 이해한다면 달리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천에서 수만 명의 인명이 살상되는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거나, 국가안보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국익을 지키기 위해 수행되는 정보전을 또 다른 형태의 전쟁으로 인식한다면 윤리성 판단에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휴대전화 감청이나 조사권 등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무기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우리 정보기관이 다른 나라와의 정보 전쟁에서 승자가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강한 군이 있어야 국가가 생존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다른 전쟁을 수행하는 정보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만 국가 안보가 유지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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