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찬란 벽화의 도시…멕시코의 보석 ‘오악사카’
자갈길은 괴롭지만
그 와중에 벽화는 또 왜 이렇게 예쁜 건지
누가 그렸는지 모르는 그림 속에
사회 문제·민중의 이야기가 있다. 오악사카 사람들이 있다
‘오악사카(Oaxaca·일명 와하카)’는 멕시코 남서부 고지대에 자리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로, 찬란한 벽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아침 햇살 아래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담벼락마다 놀라운 완성도의 벽화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산토도밍고성당과 몬테알반 유적지, 이에르베 엘 아구아의 신비로운 석회폭포 등이 여행자를 사로잡는다. 시장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원주민들이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번데기와 곤충튀김이 익숙한 듯 낯선 모습으로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오악사카의 전통주 메스칼의 독특한 향은 나른한 듯하면서도 강렬하고, 축제가 끊이지 않아 겔라게차와 망자의 날에는 도시 전체가 춤과 음악으로 휘덮인다.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 합리적인 물가,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이 도시는 여행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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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벽화, 민중의 권리 알리는 좋은 수단으로
이놈의 바퀴 달린 가방을 또 가지고 오나 봐라. 오악사카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지의 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 고행 그 자체였다. 택시비 1만 원을 아끼겠다고 큰 짐을 낑낑대며 끌었다. 숙소가 가까워질수록 길은 온통 자갈밭이다.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갈길은 보기엔 예쁘지만, 캐리어를 끌면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된다. 몇 푼 되지도 않는 택시비를 절약하겠다고 사서 고생하다니 딱하고, 바보 같다. 그 와중에 벽화는 또 왜 이렇게 예쁜 건지. 멕시코는 벽화의 나라다. 1910년대 멕시코 혁명 이후 정부는 사회개혁을 추진했다. 문맹률이 높았던 대중에게 공공벽화는 사회 문제와 민중의 권리를 알리는 좋은 수단이었다. 어디에서나 수준 높은 벽화를 볼 수 있지만, 오악사카는 차원이 다르다. 40분가량 바퀴 가방을 질질 끌고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뭐지? 주위가 캄캄하다. 여기 사람들은 밤 9시만 되면 다들 자나? 아니었다. 정전이었다. 숙소가 있는 골목만 벼락을 맞아 전기가 나갔다는 것이다. 여행자들은 테이블 위에 촛불을 켜 놓고 도란도란 낯선 친구들과 어울린다. 여행은 늘 반전의 연속이다. 자갈길은 괴롭지만 벽화는 아름답고, 정전은 짜증 나지만 어둠 덕분에 촛불과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여행을 왜 하나? 답이야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사람을 만나려고 여행을 다닌다. 피부색도, 눈동자색도 다른 이들이 한곳에 모여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는 낭만은 기적이고, 기쁨이다. 정전의 밤은 참으로 향긋했다. 스마트폰 충전은 어쩌냐고? 그래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짜증은 통제가 쉽지 않았다.
고유한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
멕시코 남서부 시에라마드레산맥 기슭에 자리한 오악사카는 약 27만 명의 인구가 사는 도시로, 오악사카주의 주도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해발 1500m가 넘는 고원 분지에 있으며, 수백 년간 사포텍과 미스텍 등 12개 이상의 원주민 집단이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온 곳이기도 하다. 도시 곳곳에선 여전히 원주민 언어가 사용되고, 시장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화려한 색감이 눈부시다. 오악사카는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매년 7월엔 ‘겔라게차’라는 대규모 전통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에선 7개 지역에서 모인 이들이 고유의상과 춤, 음악으로 화려한 퍼레이드를 펼치며 도시 전체가 활기와 열기로 가득해진다. 12월 23일에는 ‘무의 밤(Night of the Radishes)’이란 독특한 축제가 개최돼 예술가들이 무를 조각해 만든 다양한 작품을 전시한다. 이 행사는 1897년부터 이어져 온 오악사카만의 특별한 문화로, 수많은 예술가와 관광객이 이 기간에 도시를 찾는다. 축제일 때의 오악사카는 마을 전체가 행사장이 된다. 그 화려함과 들썩임은 직접 보지 않으면 실감 나지 않는다. 축제에 목숨을 건다는 것, 먹고살기 바쁜 현대인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도시는 더욱 신비롭고 천진하다. 나의 세상과 다를수록 여행의 가치는 올라간다. 오악사카는 그야말로 별천지, 여행의 이유를 골목마다 알려 주는 기특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멕시코에서 가장 맛있는 도시
오악사카의 대표음식으로는 ‘몰레’를 꼽을 수 있다. 고추, 견과류, 초콜릿, 향신료 등 수십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진한 소스다. 우리 기준으로는 듣도 보도 못한 맛이다. 매운데 달콤하다. 떡볶이나 비빔면 맛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매운 초콜릿 맛이다. 초콜릿에 고춧가루를 넣어 먹어 본 사람은 없을 테니, 그 맛이 잘 상상되지 않을 것이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오악사카는 멕시코 대표요리인 몰레를 가장 잘하는 고장이니 꼭 한 번 먹어 보길 권한다.
오악사카인은 벌레도 먹는다. ‘차풀리네스’로 불리는 메뚜기튀김은 시장과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라임즙과 소금, 고춧가루를 뿌려 바삭하게 먹는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독특한 식감 덕분에 현지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벌레라는 선입견만 버린다면 우리가 즐겨 먹는 문어·새우맛 스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번데기, 뿌리채소인 ‘히카마’도 시도해 보길 바란다. 무와 맛·식감이 비슷한 히카마에 칠리파우더, 라임즙, 소금 등을 뿌려 먹는다. 식용색소가 들어간 가루를 뿌려 파란색·붉은색 히카마를 빙과류처럼 즐긴다. 더위에 수분 보충용으로 이만한 간식이 없다. 오악사카 음식문화를 말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게 ‘메스칼’이다. 오악사카를 대표하는 전통증류주로, 용설란(아가베)을 땅속에 파묻어 숯불로 구운 뒤 발효·증류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 술은 강렬하면서도 스모키한 향미를 지녀 ‘테킬라’보다 훨씬 깊은 맛을 자랑한다.
도시 너머로 펼쳐지는 매력
오악사카 시내도 볼거리가 많지만, 진짜 보물은 조금만 벗어나면 펼쳐진다. 가장 유명한 명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몬테알반 유적지다.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사포텍 문명의 수도로, 언덕 꼭대기에서 오악사카 시내를 내려다보며 걷다 보면 고대 문명이 멋진 산책로가 돼 준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나무’로 알려진 툴레나무는 수령이 무려 2000년이 넘는다. 천연염색으로 유명한 마을 ‘테오티틀란 델 바예’에서는 장인들이 물레를 돌려 직물을 짜고, 식물에서 뽑은 색으로 실을 물들이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흙으로 도자기를 빚는 전통을 이어가는 ‘산 바르톨로 코요테펙’에선 반짝이는 흑색 도자기 ‘바로 네그로’를 만날 수 있다. 신기한 석회폭포가 있는 ‘이에르베 엘 아구아’는 굳어 버린 폭포처럼 보이는 절벽 위에 천연온천이 흐르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오악사카의 산악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차를 타고 한두 시간 거리에 불과한 이들 명소는 오악사카를 ‘예쁜 마을’에서 ‘위대한 자연’으로 격상시킨다. 멕시코를 여러 번 찾은 이들이 오악사카가 최고라고 하는 이유는 그만큼 가진 게 많아서다.
다시 돌아오고 싶은 곳
뭐니 뭐니 해도 오악사카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건 사람들이다. 멕시코에서도 오악사카인은 인정 많고 친절하기로 유명하다. 한 번은 벤치에 가방을 놓고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 노트북이 들어 있어 그야말로 생명줄 같은 귀중품이었다. 헐레벌떡 뛰어갔더니 다행히 벤치에 노트북이 그대로 있었다. 멕시코는 치안이 썩 좋은 곳은 아니다. 대도시에는 소매치기도 많다. 물건을 이런 식으로 놔두고 왔다면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야 한다. 30분 가까이 방치된 가방은 무사했고, 당황한 나를 보며 오악사카인들은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지켜보고 있었거든.” 그렇게 말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날씨가 좋은 사람을 만드는 걸까? 오악사카는 1년 내내 대체로 온화하고, 햇살이 뜨거울 때도 결코 불쾌하지 않다. 한 달 살기를 하기에 이만큼 좋은 곳도 없지 싶다. 비가 자주 내리지 않고 공기도 맑아 도시 전체가 깔끔하고 또렷하다. 도시는 크지 않지만, 풍요로운 요소가 촘촘히 배어 있다. 주요 명소는 대부분 도보로 갈 수 있어 종일 걷고 머물며 자연스럽게 도시와 친해질 수 있다. 어느 골목이든 벽화, 음악, 음식 냄새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오악사카는 물가가 저렴하다. 숙소·음식·교통비 부담이 작고, 시장에선 정성 가득한 요리를 가성비 좋은 가격에 사 먹을 수 있다. 활기찬 시장과 거리예술, 오랜 역사와 강렬한 풍미의 음식들, 현지인의 환한 미소가 이 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머무는 동안에는 편안함을, 떠난 후에는 그리움을 안겨 주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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