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훈련병의 편지

할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손자

입력 2025. 07. 09   15:31
업데이트 2025. 07. 0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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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우 이병 해병대교육훈련단
안태우 이병 해병대교육훈련단

 


대부분의 학생이 그렇듯 입대는 진지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더구나 ‘해병대’는 복무가 힘들고, 강한 사람만 가는 곳이란 인식이 강했다. 진심으로 ‘해병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기보다 ‘남자가 한 번 가는 군대, 빡센 곳으로 가야지’라고 주변에 허세를 부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1학년 때쯤 형과 함께 할머니 댁에서 들은 6·25전쟁 이야기는 생각을 바꿔 놨다.

할머니는 6·25전쟁을 직접 겪으신 분이다. 어린 나이에 북한군을 피해 죽기 살기로 피란을 가던 어느 날,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북한군이 나타난 것이다. 어린 할머니의 눈에도 다급했던 그때 구세주처럼 국군 아저씨가 등장해 할머니와 주변 사람들을 살려 줬다고 했다. 세월이 오래 지나 그 지역이 어디인지, 몇 명이나 함께 있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할머니는 그 아저씨의 가슴에 새겨진 두 글자를 평생 기억하셨다. 바로 ‘해병’이었다. 할머니를 구해 준 국군이 ‘해병’이었던 것이다. 적의 손아귀에서 할머니를 구한 ‘해병’ 이야기를 들은 순간, 형과 나는 해병대에 입대하기로 결심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를 구해 줬던 그 해병의 정체성이 이제 나에게도 스며들고 있다. 6주간 훈련을 받으면서 피부색이 검게 변하고, 시간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져 하루 과업을 시작한다. 하루 세끼 열심히 먹으면서 눈빛도, 동작도 점점 날카로움을 더해 가고 있다. 해병대 정신이 몸과 마음에 녹아들고 있음을 느낀다.

수료를 앞둔 지금, 1주 차의 갈등이 떠오른다. 자의든 타의든 귀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너무 힘든데 그냥 돌아갈까?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잖아’라며 괴로워했다. 그렇게 나약했건만 지난 6주간 소대장님의 지도와 훈육, 동기들의 응원과 도움 속에서 의연하게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는 해병으로 다시 태어났다.

병 1302기로 곧 전역을 앞둔 형의 존재도 큰 힘이 됐다. ‘형도 이 훈련을 받았겠지. 그래, 당당히 형의 뒤를 따라야지’라며 마음을 다독이곤 한다. 실무생활도 형에게 도움을 받고자 한다. 언젠가는 듬직한 선임이 돼 후임들에게 큰 힘이 되고, 주어진 임무를 이상 없이 완수하는 멋진 해병이 되고 싶다.

형이 해병이 되고, 이어 내가 해병대에 입대했을 때 가장 기뻐했던 분은 할머니셨다. 생명의 은인이었던 ‘해병’이 이제 당신의 손자들이란 사실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다고 눈물을 훔치셨다. 수료식이 기다려진다. 사랑하는 손자가 할머니 기억 속의 그 멋진 해병이 됐노라고 힘차게 신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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