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상 세계의 여행자
온종일 핸드폰 속에서 산다
입을 잃어버린 세상의 말들은
비눗방울처럼 화면 속을 떠돌고
들꽃들 향기로 아우성치는 창밖
사과 익는 내음에 분주하던 벌들을 놓치고
딸기스무디 레시피를 따라가다
영상으로 만나기를 즐긴다
실재하는 세계를 유기당한 채
뇌 속에 저장되던 기억을
유심칩에 맡겨두는 블랙홀에 빠지고
잠 못 이룬 밤의 늪에서
새벽을 열어준 너는
장마가 시작된 지구 밖의 염문과
녹고 있는 빙하를 보여주고 있다
만일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면
너부터 구원했을까
핸드폰과 나
분리불안을 앓는 아이
너는 나를 분석 중이다
핸드폰 해체하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시 감상>
오늘날 핸드폰은 단순한 이동통신기기가 아니다. 그것은 컴퓨터·인터넷·인공지능과 같은 성능을 갖춘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면서 시·공간의 제약을 단숨에 헐어 버리고, 디지털 기술문명 사회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됐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1위(98%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이제 ‘호모 모빌리스’라는 말은 더 이상 신조어가 아니다.
시인은 핸드폰이 일상의 주체로 떠오른 우리 삶의 일면을 보여 준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말(言·청각)이 영상(비눗방울·시각)으로 대체된 모습. “뇌 속에 저장되던 기억을 /유심칩에 맡겨”둔 것처럼 사람이 삶의 주체에서 밀려나고, 급기야 핸드폰과 “분리불안을 앓는 아이”처럼 종속된 듯한 세계다. 사람이 삶의 주체에서 소외된 그 세계를 향해 시인은 묻는다. “만일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면 /너부터 구원했을까” “핸드폰 해체하면 나를 찾을 수 있을까”라고.
이 물음은 ‘누가 삶의 주체가 돼야 하는가’라는 당위성과 기술문명 활용의 편의성 사이에서 균형적 성찰의 메시지로 들린다. 만물에 빛과 어둠은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핸드폰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문명 또한 그러하다. 그것에 빛의 순기능이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몫이라고.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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