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도파민 자극은 그만 지금은 ‘청·후·촉각’ 시대
시각·미각의 경험 포화상태
SNS 등 디지털 일상 속
듣고 맡고 닿는
오프라인상 감각 체험 부상
아이유 ‘콜렉트콜’ 이벤트 인기
‘향기’ 제품 시장 연 10% 성장
Z세대 ‘손글씨’ 열풍
차별화된 경험, 삶 풍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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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단지에서 봤을 법한 컬렉트콜 광고가 2025년 다시 등장했다. 가수 아이유가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셋’을 선보이며 특별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 위 번호로 전화를 걸면 아이유 음성으로 수록곡 일부를 들을 수 있는 이벤트였는데, 약 12시간 만에 10만 통이 걸려 왔을 만큼 인기가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ARS 이벤트는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최근 tvN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역시 드라마 속 병원 홈페이지를 만들고, 하단에 실제 병원처럼 전화번호를 써놓았다.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면 실제로 연결돼 작품 속 캐릭터들의 응원 멘트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새로운 방식의 체험이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제까지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것은 가장 즉각적으로 도파민을 자극하는 시각과 미각 위주였다. 하지만 시각과 미각에 대해서는 경험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상대적으로 간과된 청각·후각·촉각을 통한 감각적 체험이 부상했다. 특히 디지털 세상으로 일상이 옮겨가면서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오감 체험이 상대적 희소성을 갖는다. 오감이 어떻게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면면을 살펴보자.
첫 번째로 떠오르는 감각은 청각이다. 영상의 시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청각도 중요한 감각이 됐는데, ‘ASMR’과 같이 청각 자체를 자극하는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가 등장한 것만 봐도 그렇다. 최근에는 화면을 제공하지만 듣는 것에 초점을 두는, 팟캐스트형 영상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편집을 최소화하고 출연자들의 언어를 담아내는 것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대화에 몰입할 수 있으면서도 화면에 집중할 때 느꼈던 피로도를 적게 느낀다. 호흡이 길어 그만큼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대화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SNS상에서는 꾸미기 트렌드가 청각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다. ‘폰꾸(휴대폰 꾸미기)’가 시각적으로 취향에 맞게 외형을 꾸미는 것이라면 키보드를 누를 때 나는 효과음을 입맛대로 바꾸는 ‘타이핑 커스텀’도 등장했다. 엑스(X·옛 트위터)에서는 한 유저가 타이핑 효과음을 게임 ‘동물의 숲’에서 나오는 효과음으로 만든 영상을 게시했는데, 3만 개 이상의 리트윗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정 확장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숫자 키를 누를 때 음계 소리를 낼 수 있어 이를 활용해 곡을 연주하는 영상도 인기를 얻었다.
두 번째로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후각이다.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향초, 디퓨저 등 국내 향기 제품 시장 규모는 2조5000억 원에 달하며 매년 약 10%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또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향수 시장은 2025년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향수의 경우 트렌드 변화가 뚜렷하다. 과거 ‘샤넬 No.5’라는 제품명이 대중적으로 알려졌을 만큼 럭셔리 브랜드 중심으로 소비됐으나 최근에는 독특하고 희소성 있는 향을 특징으로 하는 ‘니치 향수’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향 또한 자기만의 스토리와 라이프 스타일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일종의 자기관리로서 향을 관리하는 현상도 등장했다. SNS상에서는 외모를 가꾸듯이 자신의 향을 가꾸는 루틴을 공유한다. ‘Smellmaxxing’이라고도 부르는데, 온종일 좋은 향기가 나도록 나의 ‘체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보디샤워부터 보디로션, 향수, 헤어퍼퓸에 이르기까지 향 제품을 유사한 계열의 제품으로 여러 차례 덧입히는 ‘향 레이어링(Fragrance Layering)’ 방법을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놓쳐서는 안 될 감각이 촉각이다. 특히 ‘손’의 감각이 중요해졌다. 필사 인기에 더불어 ‘손글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엠브레인 트렌드 모니터가 전국 만 13~69세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손글씨는 단순한 기록 수단이 아니라 힙한 문화’라는 내용에 과반수가 동의했다(55.8%). 손글씨를 쓰게 된 사람들은 ‘좋아하는 책·문장 등을 직접 써보고 싶어서’(35.5%), ‘마음의 안정을 주는 취미이기 때문에’(31.0%, 중복응답) 등을 이유로 꼽았다. 촉각 또한 사람들에게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고급 문구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지난 4월 개최된 문구페어 ‘인벤타리오’는 프리미엄 문구 편집숍인 ‘포인트 오브 뷰’와 온라인 플랫폼 ‘29㎝’가 공동 개최했는데, 5일 동안 약 2만5000명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좋은 필기 경험을 찾는 젊은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만년필·잉크·종이와 같은 아날로그적인 문구용품도 새로 조명되고 있다. 실제로 29㎝에서는 올해 초 기준 문구·사무용품 거래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75% 증가했다.
브랜드들은 소비자에게 인상에 남을 만한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마케팅에 오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고차 거래 플랫폼 ‘헤이딜러’는 차 안에서 향이 중요한 경험이라는 점에 착안해 아모레퍼시픽과의 협업으로 ‘내차조향소 자판기’를 만들고 게릴라 형식으로 전국 순회 이벤트를 진행했다. 본인의 차량번호를 넣으면 AI가 자동으로 차종과 연식을 인식하고, 해당 차량과 어울리는 향으로 카디퓨저를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차별화된 경험을 추구하는 요즘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인간은 오감의 존재다. 『경험의 멸종』의 저자 크리스틴 로젠 박사는 디지털 기술로 인해 인간이 여러 종류의 경험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스마트폰 덕분에 간접 경험의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가짜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감을 갈구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의식적으로 감각 하나에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오감을 깨우는 경험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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