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스파이, 그들이 온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친구’ 속은 모른다

입력 2025. 06. 29   09:20
업데이트 2025. 06. 29   13:40
0 댓글

스파이, 그들이 온다 - 밀월관계 중·러의 치열한 상호 첩보전

러 정보기관 내부 문건 암시장서 발견

은밀한 정보 온라인 거래도 놀랍지만
중·러 간 상호 해킹·첩보활동 등 활발
우방국 치열한 그림자 전쟁 민낯 드러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 정보기관의 특급 기밀 유출


지난 7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의 심층부에서 유출된 특급 비밀정보를 공개했다. FSB 내부 방첩부서의 극비문건을 ‘아레스 리크스(Ares Leaks)’라는 사이버범죄그룹으로부터 입수했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이 문건이 아레스 리크스가 지난해 11월 인스타그램에 자신들이 입수한 러시아 정보기관의 내부문건을 팔겠다고 광고한 뒤 접근해 온 고객(?)에게 무상 제공한 샘플이라는 것이다.

암호화폐로 12만 달러를 지불하면 러시아 정보기관의 문건을 모두 살 수 있고 인도네시아 정보기관 보고서의 경우 5000달러, 대만 외교 전문은 1만 달러, 이란 스파이 신원자료는 3000달러 등 다양한 상품(?)이 준비돼 있다고 한다.

이번 문건의 주요 내용은 중국이 러시아를 상대로 △첨단 기술 유출 및 중요 인물 포섭 △주요 기관과 산업체 해킹 △북극항로 정보 수집과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 회복을 위한 영향력 공작 등 공세적인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FSB가 이를 저지하려고 강력한 방첩 활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뉴욕타임스는 문건을 서방 6개 정보기관에 제공해 모두로부터 진본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 문건은 2023년 말에서 2024년 초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이 문건에 주목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연합, 미국에 대응해 온 러시아와 중국의 진짜 관계를 들여다볼 아주 드문 기회여서다. 러시아 정보기관이 중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상세히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문서엔 두 우방국의 그림자 정보전쟁이 “긴장 속에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표현돼 있다. FSB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사흘 전 ‘동맹4’라는 방첩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러시아가 러·중 국경에서 4000마일(약 6437㎞) 떨어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군사·정보자원을 쏟아붓는 혼란기를 중국이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서에 따르면 실제로 중국 정보기관은 이 시기 러시아의 영향력 있는 관료·과학자·기자·기업인 포섭을 강화했다고 한다. FSB는 이러한 위협에 대응해 중요 전략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중국의 포섭 대상자를 만나 중국의 의도를 알리는 등 인적 방첩 활동과 동시에 중국의 메시지 앱인 위챗에 접근해 전화 해킹, 특수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분석 등 기술적 방첩 활동을 전개해 왔다.


러 FSB, 중국을 ‘적’이라 표현 

지난 5월 9일 러시아 전승절 80주년 기념식에 나란히 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은 양국관계의 밀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양국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되며 글로벌 파워게임에 새로운 균형을 가져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도움이 컸다. 중국은 러시아 석유의 최대 고객이다. 경제제재로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를 떠날 때 중국 기업들이 필수 컴퓨터 칩, 소프트웨어, 군수품 등을 공급했다. 푸틴이 말한 대로 전략적 군사·경제협력이 최고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정보기관인 FSB 심층부의 비밀방첩조직에서는 중국을 ‘적’으로 표현하며, 러시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이 스파이들을 보내 러시아 군사기술을 빼내고 과학자들을 포섭하고 있다는 것이다.

DKRO로 알려진 FSB 방첩공작부서의 1급 비밀문건엔 점점 강해지는 중국을 향한 러시아의 고민이 담겨 있다. 1979년 베트남과의 전쟁 이후 실전 경험이 없는 중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서방 국가들의 무기와 전술에 관해 학습하려 한다. 가장 큰 관심 분야로는 드론을 이용한 전투, 소프트웨어 현대화, 새로운 타입의 서방 무기 대응 등이다.

FSB는 중국 스파이들이 러시아의 북극 개발상황, 관련 연구소와 채굴회사 정보 등 북극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확신한다. 기후 변화로 북극항로 이용이 가능해지면 아시아와 유럽 간 항해시간을 줄여 중국 물품의 유럽 수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는 오랫동안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자신들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을까 걱정해 왔는데, 최근 중국 민족주의자들은 19세기 러시아가 현재의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상당한 영토를 복속시킨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또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우호적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중국 민족의 흔적을 찾고 있다며 FSB는 관련된 활동을 색출하라며 “러시아인이 개입하지 않게 차단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은 입국을 금지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중국 대상 방첩이 대폭 강화됐다. 문건에 따르면 러시아 정보기관은 중국 스파이 혐의자들의 위챗을 모니터링하고 특수 프로그램을 활용, 분석해 왔다고 한다. 여기엔 접촉자 리스트, 대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위챗은 가입자 14억 명의 세계 최대 디지털 플랫폼의 하나로 중국인에게는 단순한 통신수단이 아니라 모바일페이, 사회관계망, 행정서비스 등 모든 생활에 활용된다. 러시아 정보기관이 이를 뚫었다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도 러시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옛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는 러시아를 따랐으나 지금은 중국이 소프트파워를 키우고 있어서다. 이런 모든 상황에서도 FSB는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위태롭게 하면 안 된다면서 공개적으로는 중국을 적으로 부르지 말 것과 민감한 행동엔 반드시 상부 허가를 받도록 지시했다.

중국도 러시아를 경계하기는 마찬가지다. 2만여 명의 중국 내 러시아 유학생 감시를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결혼한 러시아인을 스파이로 포섭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밀월관계 같은 겉보기와 달리 양국 간 물밑 첩보전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우방은 있어도 우호적인 정보기관은 없다” 

이번 뉴욕타임스의 문건 공개는 잘 알려진 “우방은 있어도 우호적인 정보기관은 없다”는 격언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푸틴과 시진핑이 최고의 관계를 공언한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오히려 중국은 러시아 군사정보 입수를 위한 해킹을 강화했다. 대만 보안업체 ‘팀T5’는 전쟁 발발 직후 중국 국가안전부 연계 해킹그룹 ‘머스탱 판다’가 러시아 정부기관 대상 수집을 강화했고, 또 다른 그룹인 ‘산요’는 2023년 러시아 핵잠수함 정보 수집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말에는 북한 노동당 군수공업부가 중국 선양에 파견한 정보기술(IT) 기술자가 공안에 체포됐는데, 그의 노트북에서 중국 군사기술을 해킹한 증거가 쏟아졌다. 혈맹이라도 정보 수집에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사례에서 첩보 입수 경로가 범죄집단이라는 점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해킹해 입수한 개인정보 등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일은 흔했으나 최고로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강대국 정보기관의 내부문건을 그런 곳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정보기관도 내부자 위협 대응을 강화하고, 시장에 접근해 첩보를 입수하거나 우리나라에서 빠져나간 정보가 거래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새로운 형태의 방첩 활동이 필요해 보인다. 정보전의 현장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