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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에 한 번 열린 신선의 연회…왕의 병풍에 담긴 ‘만수무강의 꿈’

입력 2025. 06. 26   16:27
업데이트 2025. 06. 2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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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옛 그림 속 숨은 이야기 ⑦ 요지연도

전설 속 여신 서왕모가 사는 ‘요지’
그곳에서 3000년마다 열리는 복숭아
환대받는 서주 시대 목왕 그려넣어
신선들의 세계 갈망하던 현실 반영
요지연, 통일신라 이후 문집에 언급 
정조는 시험문제 내고 친히 채점도
순조는 침전용상 뒤에 병풍 두르기도

 

‘요지연도’ 병풍, 19세기, 가로 156㎝×세로 504㎝,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요지연도’ 병풍, 19세기, 가로 156㎝×세로 504㎝,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전설로만 듣던 화려한 연회가 열렸다. 화면 가운데 난간이 있는 월대 위에 병풍 두 개가 놓였다. 왼쪽 병풍 앞에 왕이 쓰는 사각형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남성이, 오른쪽에는 머리에 봉황 장식이 있는 구불구불한 오량관(五梁冠)을 쓰고 있는 여성이 앉아 있다. 그 주변에는 시종들이 모여 있는데, 옆에서 쟁반에 큰 복숭아를 담아 바치고 있는 시종도 있다. 그들 앞에는 새 두 마리가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춤추고 있다. 태평천하에 나타난다는 전설의 새 ‘봉황’이다.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으로 부른다. 주변에는 기괴한 암석과 소나무, 오동나무, 매화나무, 모란 등이 보이고, 구불구불한 가지에 큰 복숭아가 탐스럽게 열렸다. 

오른쪽 아래에는 시종들이 팔준마가 끄는 마차와 함께 월대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시선을 돌려 반대쪽을 보면 그림 왼편에는 사람들이 유유히 물 위를 건너거나 길 위로 동물을 타고 오거나, 하늘 위로 구름과 새를 타고 온다. 월대 안 잔치에 참석하려고 온 사람들인데, 용모가 범상치 않다. 각자 손에 무언가 들고 있는데, 이것도 제각각이다.

이 그림은 신선의 연회를 그린 ‘요지연도’다. ‘요지에서 베푸는 연회를 그린 그림’이란 뜻이다. 그림 속 공간은 요지(瑤池)로, 전설에 따르면 곤륜산에 있으며 서왕모(西王母)라는 여신이 사는 곳이다. 위엄을 갖춘 왕은 중국 서주(西周·BC 1046~771년) 시대 목왕이다. 목왕이 여행하던 중 곤륜산에 들러 여신 서왕모의 환대를 받는 신화와 역사 인물의 내용이 섞인 장면을 그린 것이다. 주변을 둘러싼 복숭아나무를 보자. 복숭아가 유독 크고 가지가 구불거려 눈길을 끈다.

입에서 입으로, 책에서 책으로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요지에서 자라는 복숭아나무는 3000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운다. 다시 열매가 열리기까지 30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복숭아를 신선의 복숭아란 뜻으로 ‘선도(仙桃)’, 복숭아를 먹으면 오래 산다는 뜻으로 ‘수도(壽桃)’, 구불구불한 가지에서 나왔다는 의미로 ‘반도(蟠桃)’라고 불렀다.

복숭아가 익으면 서왕모는 신선들을 초대했다. 신선들만 올 수 있던 공간에 몰래 숨어서 복숭아를 훔쳐 먹고 불로장생을 얻은 속세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동방삭(東方朔)’이다. 예전 만담에 부모가 아이가 오래 살길 바라며 이름을 지어,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이라고 불러 웃음을 자아냈는데, 여기에서 유래했다. 삼천갑자는 3000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갑자(60년)를 3000번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요지의 복숭아 수명 효능은 아주 뛰어났다.

이처럼 신선들의 세계를 다룬 이야기는 대개 중국 전국시대에 유행했던 신선(神仙) 사상에 바탕을 둔 도교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도교는 무술과 방술, 금기, 신화와 전설, 민속신앙 등이 결합해 ‘수련을 통해 속세를 초탈해 불로장생하고, 신선이 되는 것’이 목표다.

오늘날 우리가 SF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영역의 이야기에서 “저게 가능해?”라고 반문하며 흥미롭게 보듯 옛사람들에게 도교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줬다. 선단, 불로초, 신비한 의약, 도술, 선계 등 환상적인 요소들이 당시 전쟁과 신분제, 굶는 일로 얼룩졌던 현실의 고된 일상을 위로했다.

우리나라에서 ‘요지연’에 관한 언급은 통일신라 시대 최치원(857~?)의 문집에서부터 고려, 조선 문인들까지 쭉 이어진다. 조선 후기 이덕무(1741~1793)가 기록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고려 시대 음력 1월 7일 서왕모의 상을 만들어 머리에 이는 풍습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또 한치윤(1765~1814)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정월 7일에 집마다 서왕모의 초상을 그려 받들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숙종 임금이 서왕모의 연회를 그린 요지연도 계열의 그림을 보고 시를 짓기도 했다. 궁중연향(宴享)에서 진찬을 올리거나, 장수를 기원할 때 ‘서왕모’와 ‘요지’를 인용한 글이 많이 전한다. 궁중연향의 정재(呈才·춤과노래)에는 ‘헌선도(獻仙桃)’가 포함돼 왕에게 장수를 기원하며 ‘선계의 복숭아’를 올리는 의식이 포함된다. 정조 임금은 ‘요지연도에 나오는 복숭아 진상’을 수원에 있는 유생들에게 시험문제를 낼 정도로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던 옛이야기였다.

정조 14년 경술(1790) 12월 11일의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한 무제와 주 목왕 때 서왕모가 3000년 만에 열린 복숭아 5개를 진상하는 것으로 의작하라(擬漢周西王母進三千年結子桃五枚)”로 표제를 삼고, “어찌하면 넓은 집 천만 칸을 얻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들을 크게 감싸주어 모두 다 기쁜 얼굴을 하게 하리(安得廣廈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로 부제(賦題)를 삼아 수원부의 유생에게 시험 보이고 해당 부사 조심태는 시권을 거둬 올려보내라고 명하고 친히 채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지연도를 어디에 사용했을까? 기록에 따르면 1802년 당시 순조의 침전용상 뒤에 요지연도 병풍을 둘렀다고 한다. 유득공(1748~1807)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는 당시 사대부가의 혼례에 요지연도 병풍이 사용됐다고 기록한다. 1847년 헌종과 경빈김씨의 가례에도 요지연도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돼 장수와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그림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옛사람들이 요지의 연회 이야기를 전하고 그린 것은 ‘장수와 만수무강’만큼 인생에 좋은 건 없다고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을 본 이들의 오늘 하루가 무탈하길, 그리고 잠시 신선들처럼 자유로워지기를.


필자 한세현은 서울디자인재단 DDP 전시팀에서 전시 기획 및 교육 운영을 담당했다. 현재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으며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필자 한세현은 서울디자인재단 DDP 전시팀에서 전시 기획 및 교육 운영을 담당했다. 현재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으며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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