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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5주년] 그들을 조국 품에 모시는 시간과의 싸움…찾는다

입력 2025. 06. 24   16:49
업데이트 2025. 06. 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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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찾는 영웅들

발굴지역 선정부터 시료 채취 홍보까지 연일 구슬땀
유전자 정보 모으려 지역축제·시장 다니며 발로 뛰어
선배 전우 한 분이라도 더 찾도록, 더 많이 움직일 것
20대 땐 동료 전우 찾는 마음, 지금은 부모의 심정… 
친구와 자식 그리워하는 절실함으로 매일 산야 누벼
시간 지날수록 유해 훼손 심각해져, 국민 제보 절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은 6·25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70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국군 전사자는 12만 명이 넘는다. 지난해까지 수습된 국군 유해는 총 1만1469위. 올해도 유해발굴은 전국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다. 선배 전우의 헌신에 보답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유해발굴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최인건·정종하 유해발굴팀장을 유해발굴사업 25주년을 맞아 만나 봤다. 글=이원준/사진=양동욱·조종원 기자

 

육군11기동사단 정종하 유해발굴팀장이 국립서울현충원 6·25 전사자 묘역에서 거수경례하고 있다.
육군11기동사단 정종하 유해발굴팀장이 국립서울현충원 6·25 전사자 묘역에서 거수경례하고 있다.


육군11기동사단 정종하 유해발굴팀장

“유해발굴사업의 슬로건은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입니다. 유해발굴작전은 전국 각지에서 진행 중입니다. 유해발굴에 나선 모든 장병의 정성과 노력, 땀방울이 모여 더 많은 호국영웅들이 가족과 조국 품으로 돌아가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정종하(상사) 유해발굴팀장을 비롯한 육군11기동사단 장병들은 지난 3월 31일부터 5월 9일까지 강원 홍천군 금물산 일대에서 유해발굴작전을 완수했다. 작전 결과 유해 11구와 유품 601점을 수습하는 성과를 거뒀다.

정 팀장은 2014년 특전부사관으로 임관해 2020년부터 사단에서 임무를 맡고 있다. 평범한 군인이었던 그가 유해발굴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23년 소속 부대가 유해발굴작전 부대로 선정되면서다. 정 팀장은 처음엔 유해발굴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고 회상했다.

“처음엔 6주간 작전에 투입된다는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다양한 작전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 뿐 유해발굴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임무 투입 전 교육을 받으면서 유해발굴은 단순히 유해를 찾는 게 아닌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배 전우의 이름을 되찾는 데 목적이 있다는 설명을 듣고 머리를 망치에 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유해발굴 임무를 수행하면서는 희로애락을 느꼈습니다. 유해를 발견해 기뻤고, 70년 넘게 잠들어 계셨다고 생각하니 슬펐으며, 선배 전우가 목숨 바쳐 싸운 전투현장이란 사실에 존경심과 애국심이 차올랐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호국영웅들을 모시고 싶어 사단 유해발굴팀장 직책에 지원, 2024년 2월부터 임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단 유해발굴팀장은 책임감이 무거운 자리다. 사전 탐문·탐사로 발굴지역을 선정하고, 전사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유전자 시료 채취 홍보활동도 해야 한다. 막중한 임무이다 보니 처음엔 매우 부담스러웠다고 정 팀장은 말했다.

“첫 현장 탐사 때는 경험이 부족해 금속탐지기로 유품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조금씩 숙련도가 쌓이면서 하나둘 유품을 발견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또 국유단이 주최하는 집체교육을 받으면서 전문지식을 익혔습니다.”

전반기 유해발굴이 끝난 현재, 정 팀장은 발굴지역 탐문·탐사와 유전자 시료 채취 홍보활동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탐문·탐사는 유해발굴지역을 선정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유가족의 유전자 정보가 있어야 발굴 유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올해 사단 유해발굴작전지역인 금물산 일대도 정 팀장이 발로 뛰며 물색한 장소였다.

“금물산 일대는 1951년 홍천 포위공격과 유엔군 2차 반격작전 당시 국군이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전장입니다. 과거 5차례 유해발굴작전에서 60여 구의 유해를 수습한 바 있습니다. 지형이 험한 데다 날도 더워 탐사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아군 유품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이에 올해 발굴지역으로 선정했습니다.”

정 팀장은 유전자 시료 채취 홍보활동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유전자 시료 채취는 전사자의 친·외가 8촌까지 가능하다. 더 많은 유전자 정보를 모으기 위해 그는 홍천·원주지역 시장과 축제현장을 돌며 시료 채취의 중요성을 알렸다. 최근엔 홍보 영역을 온라인 공간으로도 확장했다.

“매번 기동홍보만 하다가 올해부터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동을 확장했습니다. 아파트 입주자 카페, 자전거동호회 카페, 지역 카페 등에 시료 채취 홍보글을 올렸는데, 많은 응원 댓글이 달렸습니다. 실제 유전자 시료 채취까지 이어진 사례도 있어 뿌듯합니다.”

새내기 유해발굴팀장인 그가 이토록 유해발굴사업에 열정을 쏟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정 팀장은 산야에 잠들어 있던 호국영웅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현장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이야기했다.

“지난해 합동영결식에 참석했을 때 울컥했습니다. 시료 채취를 홍보할 때 울먹이며 가족을 꼭 찾아 달라는 어르신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때마다 더 많이 움직이고 노력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정 팀장은 유해발굴 임무를 마무리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선배 전우가 목숨으로 수호한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키겠다는 각오로 인터뷰를 마쳤다.

“75년 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이여, 이제 편히 영면하소서. 지금부터는 우리 후배들이 그토록 수호하고 싶어 했던 대한민국을 지켜 나가겠습니다.”

 

 

유해발굴현장을 찾은 미군들에게 발굴된 유품에 관해 설명하는 최인건 유해발굴팀장.
유해발굴현장을 찾은 미군들에게 발굴된 유품에 관해 설명하는 최인건 유해발굴팀장.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최인건 유해발굴팀장이 본인이 발굴에 참여한 고(故) 조응성 하사 유해 디오라마 앞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최인건 유해발굴팀장이 본인이 발굴에 참여한 고(故) 조응성 하사 유해 디오라마 앞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최인건 유해발굴팀장

“유해발굴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가족과 국가를 위해 바친 호국영웅들이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 계십니다. 하루빨리 이분들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찾아 드리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게 모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의 책무입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최인건(전문군무경력관 나군) 유해발굴팀장의 이야기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병부대에서 견인포병으로 복무하던 중 육군본부 발굴병으로 선발됐다는 연락을 받은 게 인생의 변곡점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최 팀장은 이듬해 11월까지 발굴병 임무를 맡으며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대학 졸업 후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그는 2009~2010년 국유단 감식담당으로 유해발굴에 복귀했다. 유해발굴은 크게 △조사·탐사 △발굴 △감식(신원확인)으로 나뉜다.

“2010년 이후 유해발굴과는 거리를 뒀다가 2019년 다시 국유단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남북 공동유해발굴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유해발굴팀장을 민간에서 선발했는데, 그동안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공부한 발굴기법이 전사자 유해발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최초로 진행되는 비무장지대(DMZ) 유해발굴에 참여하고자 지원했습니다.”

유해발굴팀장으로 새롭게 출발한 그는 DMZ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에서 발굴 임무를 수행하며 다수의 국군·유엔군 전사자를 수습했다. 특히 백마고지에서 발굴·수습한 유해 중 4명의 호국영웅 신원이 확인된 것이 가장 뜻깊었다고 했다. 고(故) 김용일 이등중사와 편귀만·김일수·조응성 하사가 그 주인공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형태의 유해가 많이 발굴됐습니다. 고 김용일 이등중사님과 편귀만 하사님은 백마고지 일대 참호에 나란히 잠들어 계셨고, 김일수 하사님은 작은 뼛조각을 단서로 확장 발굴한 끝에 추가 유해와 유품을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고 조응성 하사님은 개인호 바닥에 엎드린 자세였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사격하셨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 손으로 수습한 네 분의 호국영웅이 이름을 되찾아 정말 뜻깊었습니다.”

발굴병부터 감식담당, 유해발굴팀장까지. 최 팀장은 유해발굴사업의 산증인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해발굴에 임하는 감정도 조금씩 달라졌다. 20대 때는 유해가 전우처럼 느껴졌고, 30대 감식담당 땐 아내와 자녀를 둔 가장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아빠·남편을 찾아 드려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지금 40대 입장에선 자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임무에 임하고 있다고.

“6·25전쟁에 참전한 모든 호국영웅의 피땀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은 영원히 기억돼야 하며, 가족을 잃은 유가족분들의 아픔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호국영웅의 잊힌 이름을 찾고,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알리며, 유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게 유해발굴사업입니다.”

최 팀장은 과거와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유해발굴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발굴 유해·유품의 훼손 정도가 심해지고, 국토 발전과 도시화로 전투현장이 훼손되면서 호국영웅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 6·25를 겪은 세대의 고령화로 전사자 관련 자료가 부족해지고, 국민적 관심도 줄어드는 실정도 안타깝다고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유해의 잔존상태가 좋지 않고, 유전자 확인도 어렵습니다. 얼마 전 경기 가평지역에서 유해 한 구를 수습했는데, 유해 일부가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흔적만 남아 있었습니다. ‘조금만 빨리 찾았다면 온전한 모습으로 모실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최 팀장은 지금껏 수습한 유해·유품이 셀 수 없이 많지만, 매번 유해를 찾을 때마다 항상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유해발굴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유해를 목격하거나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신 분들의 제보가 유해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전쟁이 발발한 지 75년이 흘렀습니다. 정말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유해발굴사업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쪽잠 자다 깨어나

홀린 듯 호미로 판 자리
위팔뼈 유해 나와
하늘이 진심 알아주신 듯


특별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산에서 쪽잠을 자던 중 꿈에 사람 형체가 보였다. 갑자기 눈이 떠진 정 팀장은 뭔가에 홀린 듯 앉아 있던 자리를 호미로 팠다. 흙 속에서 위팔뼈로 추정되는 유해가 나왔다. 전사자 한 분이라도 더 찾겠다는 정 팀장의 진심 어린 마음과 열정이 하늘에 닿은 것이다. 정종하 유해발굴팀장


고꾸라진 유해,
50년 전 내 모습은
아니었을까…


처음 발굴한 유해는 경사면에 고꾸라진 형태였습니다. 그때 느낀 감정은 충격과 참혹함이었습니다. 한편으론 발굴한 유해가 ‘50년 전의 내 모습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슷한 또래 친구를 찾는 마음으로 매일 발굴지역에 올랐습니다. 당시엔 유해발굴이 제 직업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최인건 유해발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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