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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전투현장의 기억 그리고 유해발굴

입력 2025. 06. 24   15:35
업데이트 2025. 06. 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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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미루 대위 육군5기갑여단
김한미루 대위 육군5기갑여단



우리는 6·25전쟁의 치열했던 격전지, 진명산 290고지에서 유해발굴작전을 수행하며 숭고한 임무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곳은 1951년 10월 6·25 당시 우리 국군과 미 1기병사단을 비롯한 수많은 유엔군, 수천 명의 카투사와 노무자가 함께 전개한 ‘코만도(Commando)’ 작전의 전투현장이었다. 

이 작전에서 아군은 중공군의 경계 진지선까지 진출하기 위해 험준한 산악지형을 뚫고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다. 그 결과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방어선을 돌파해 전선의 주도권을 되찾았다. 하지만 많은 이가 끝내 귀환하지 못했고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유해들은 그때의 처절한 현실을 고스란히 말해 주고 있었다.

3월 31일부터 5월 9일까지 약 6주간의 발굴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발굴지역의 험준한 산악지형과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만큼의 경사,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중공군의 동굴 진지, 언제·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다수의 폭발물 등. 여러 가지 위험성을 안고 세월의 흔적이 깊게 남은 전투현장을 샅샅이, 깊이 파 내려갔다. 그 결과 지금까지 총 16구의 유해를 발굴하는 값진 성과를 거뒀다. 유해와 같이 발견된 전투화, 탄약류, 생활용품 등 4000점 이상의 유품 하나하나에는 선배 전우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유해와 유품이 발견될 때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수습해 약식제례와 봉안식을 하며 그 숭고한 희생과 우리의 사명감을 체감했다.

이러한 성과를 거둔 뒤 현장에서 추가 유해의 존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우리는 자체적으로 유해발굴 기간 연장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공식 요청했다. 현장에서 함께 땀 흘린 장병들의 ‘우리가 전투현장을 더 잘 알기에 더 많은 이를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다’는 굳건한 의지와 철저한 군인정신이 연장 결정의 바탕이 됐다. 이에 따라 우리는 기존의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더욱 체계적이고 정밀한 탐색을 이어 가고 있으며, 추가 발굴 기간이 종료되는 그 순간까지 사명감으로 무장한 채 임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해발굴을 하면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역사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곳에서 같이 싸운 미 1기병사단의 존재는 굳건한 한미동맹의 초석으로서 오늘날 우리 안보의 든든한 뒷받침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명산 290고지 정상에서 땀 흘린 약 12주라는 기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의미 있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한 점의 유품, 한 구의 유해까지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우리 불사조대대 장병들은 그 치열했던 전투현장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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