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낮 교회 앞을 서성이는 한 젊은 청년을 발견했다. 교회 주변을 둘러보는 청년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어떤 일로 이곳에 왔는지 물었다. 청년은 강원도 전방의 모 부대에서 병 생활을 무사히 마친 뒤 전문하사로 제2의 군 생활을 하고 있는 현역 부사관이었다.
다과를 나누며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역 후 군무원 신분으로 군에 이바지하고 계신 아버지가 과거 육군2공병여단 소속의 장교였고, 부모님과 함께 우리 교회에 수년간 출석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그리움을 좇아 출타 중 교회에 들렀다고 했다.
훌쩍 커 버린 덩치 속 여전한 꼬마의 설렘으로 이곳에서의 지난날을 꺼내 펼쳐 보이는 청년의 기억을 따라 시작된 이야기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어느덧 청년이 부대로 복귀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부대에 복귀하려고 짐을 꾸려 길을 나서는 청년을 배웅하려는 순간 ‘이 청년에게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고민 뒤 청년을 부대까지 차로 태워 주기로 마음먹었다.
청년에게 부대까지 차로 데려다줘도 될지 조심스레 동의를 구했다. 청년은 처음엔 피해를 주지 않을까 사양했지만, 같이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차 안에서도 계속 유쾌한 이야기를 나눴다. 꾸불꾸불한 길을 지나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짧았지만 반짝였던 반가움을 뒤로하고 청년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차를 돌렸다. 오가는 시간이 꽤 많이 걸렸지만, 돌아오는 내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흘러넘쳤다.
우리는 황금률이라고 불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라는 성경 구절을 잘 알고 있다. 대부분 이 구절을 상대방이 내게 하나를 건네면 나도 상대방에게 하나를 건네는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 내용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구절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 스스로 솔직해져야 한다.
우리는 이왕이면 최선의 것을 받고 싶어 하고, 누리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이 말은, 최선의 것을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최선을 다해 대하라는 것이다.
나 역시 최선의 것을 대접받고 싶은 사람이므로 처음 만난 청년에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수 있었다. 이 청년이 이날을 기억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할 모습을 생각하니 심장이 뛰었다.
오늘날 우리는 철저히 조건적인 관계에 기초한 시대를 살고 있다.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최선의 환대와 친절, 섬김이 어색해져 버린 세상이다. 바쁘고 분주한 일상에서 부대와 가정, 생활의 여러 자리에서 마주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최선으로 대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제공한 것에 상응하는 보상이 돌아오지 않으면 분노와 서운함에 속상해하는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서로를 향해 각자 자리에서 대접받고 싶은 만큼 상대방을 최선으로 대해 보자. 그러면 어느새 우리가 속한 부대와 가정, 세상이 서로를 향한 최선으로 감동이 넘치는 아름다운 자리가 되지 않을까? 서로의 자리에서 우리는 황금률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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