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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연결되는 곳…가장 멕시코스러운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

입력 2025. 06. 19   16:24
업데이트 2025. 06. 1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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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멕시코스러운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

걷다… ‘사색’의 계단을 
닿다… 깨어있는 ‘나’에

원주민 가장 많고 가난한 도시
기독교 성인·인권운동가 합성어
‘명상으로 우주와 연결’ 믿음에…
전 세계 명상가들 많이 찾아와
골목 누비는 구형 ‘딱정벌레 차’
생기 넘치는 수공예시장
가성비 숙소에 날씨도 완벽
바로크 양식 성당 바라보며
그렇게, 멕시코에 맞닿다

북미의 캐나다와 미국을 관통하면 멕시코가 길쭉하게 중미로 향하고 있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치아파스주가 나온다.
치아파스주는 멕시코에서도 원주민 비율이 가장 높다.
빈곤율 역시 높은 편이다. 
가장 멕시코스러우면서 가장 가난한 치아파스주에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이하 산크리스토발)’라는 매혹적인 도시가 있다.

 


도시로 분류되지만, 변변한 고층건물 하나 없는 ‘마을’에 가깝다. 바닥은 커다란 자갈로 울퉁불퉁하고,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딱정벌레 모양의 하얀색 폭스바겐이 골목골목을 질주한다. 다른 지역이 폭염으로 불타고 있을 때도 이곳만큼은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도시를 감싼다. 

멕시코는 큰 땅을 가진 나라답게 가 볼 곳도 참 많다. “어디가 제일 좋나?”라는 질문엔 답이 갈리겠지만, 가장 멕시코다운 데를 원한다면 이곳으로 와야 한다. 원주민들의 화려한 전통 복장과 그들만의 언어가 낮게 깔리는 산크리스토발의 아침 골목을 반드시 걸어 봐야 한다.


외우기 힘든 긴 이름의 도시

남의 나라 지명에 불만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예의 없는 거지만, 이름이 길어도 너무 길다.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과 라스카사스(las casas), 두 단어의 합성어다. 산크리스토발은 기독교의 성인 중 한 명으로, 여행자와 운전자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라스카사스는 스페인의 성직자이자 초기 신대륙 원주민 인권운동가인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원주민 학대 문제를 고발하고, 원주민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평생을 바쳤던 이다.

인구의 78%가 가톨릭을 믿는 건 스페인 식민통치 영향이겠으나 조상인 마야인의 토착종교와도 뒤섞여 있다. 산크리스토발에서 10㎞ 떨어진 곳에 ‘산후안 차물라’라는 곳이 있다. 그곳의 교회엔 수많은 촛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은 바닥에 깔린 솔잎 위에 앉아 기도드린다. 살아 있는 닭이나 달걀, 콜라, 멕시코 전통주 ‘폭스’ 등으로 의식을 행한다. 살아 있는 닭을 죽이기도 한다. 질병이 죽은 닭으로 옮겨 가거나 에너지가 정화된다고 믿는다.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한때는 위험했지만, 지금은 명상가들의 성지

산크리스토발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년 전 이곳에 왔던 이유는 과테말라를 가기 위해서였다. 기억 속 산크리스토발은 가난하고 위험한 도시였다. 반군이 정부와 대립하며, 1994년 산크리스토발을 일시적으로 점령하기도 했다.

산크리스토발이 속한 치아파스는 멕시코에서도 가장 빈곤한 주인 데다 대부분 자급자족식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멕시코가 서명하면서 가난한 치아파스인들의 반발은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NAFTA가 발효되면 농업 보조금이 중단되고, 값싼 수입 농산물이 유입돼 원주민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

격앙된 분노로 멕시코 정부와 대치하며 치아파스주는 여행자들이 피해야 하는 위태로운 곳으로 간주됐다. 재밌는 건 복면을 쓴 반군이 관광상품화돼 복면 인형 열쇠고리, 복면 인형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는 거였다. 지금은 무장 반군들도 평화로운 방식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며 안정화됐다.

저렴한 물가, 과테말라로 가는 길목, 마야문명 등 산크리스토발은 여행의 흥행요소가 많다. 배낭여행자들과 원주민이 함께 만들어 내는 분위기는 단연 독보적이다. 명상가들도 산크리스토발을 많이 찾는다. 명상으로 우주와 연결된다고 믿는 이들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그들의 사고와 관점이 평화롭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산토도밍고성당.
산토도밍고성당.


입도, 눈도 심심하지 않은 도시

산크리스토발에 왔다면 ‘산토도밍고 수공예시장’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새벽 햇살이 골목 끝에서 퍼질 즈음 시장은 이미 생기로 가득하다. 천막 아래 손수 수놓은 자수옷들이 나부끼고, 구불구불한 골목 곳곳에선 지글지글 기름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투투아’로 불리는 치아파스식 토르티야 간식에 오르차타(쌀을 주재료로 한 달콤한 음료) 한 잔이면 아침이 든든하고, 노란 옥수수 속에 치즈와 고추를 넣어 구운 ‘에스퀴테’는 손에 들고 천천히 시장을 돌기에 딱 좋다.

옥수수 반죽에 고기나 콩을 넣어 바나나잎이나 옥수수잎에 싸서 쪄낸 ‘타말레스’는 겉보기엔 시시하지만 한입 베어 물면 꽉 찬 내용물에 절로 웃음이 난다. 수공예품을 파는 상인들은 고운 색실을 손에 감고 있고, 그 틈 사이로 아이를 업은 여인이 옥수수빵을 나른다. 그 모든 풍경의 중심엔 ‘산토도밍고성당’이 있다. 16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정교한 외벽 장식만으로도 한참을 바라보게 만든다.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 거리.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 거리.


저렴한 숙소, 장기 여행자의 천국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연 숙소다. 산크리스토발에선 ‘라아부엘리타’라는 호스텔에 묵었는데, 개인적으로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은 숙소였다. 가격은 1박에 1만 원이 채 되지 않으며, 청소 상태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보통 도미토리에서 자면 침대 시트를 정리해 주는 법이 없는데, 여기는 매일 판판하게 펴 주고 먼지를 털어 말끔하게 정리해 놓는다. 여행 좀 했다 하는 여행 도사들은 가성비를 찾는 데 귀신이다. 내가 묵었던 곳엔 길게는 6개월을 숙박하는 이도 있었다.

숙소만 좋아도 여행자들은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한다. 게다가 산크리스토발은 날씨까지 완벽하다. 다른 멕시코 도시들이 더위에 시름시름할 때도 선선하다 못해 추울 지경이었다. 비가 퍼부울 땐 30분 만에 길이 침수되기도 하지만, 재난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같은 방에서 지냈던 네덜란드에서 온 60대 남자는 ‘파델(Padel)’ 라켓을 늘 들고 다닌다고 한다. 파델은 테니스와 스쿼시 사이에 있는 라켓 경기로, 유럽과 남미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주로 복식으로 하는 경기인데, 이 라켓 하나만 있으면 현지인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다.

여행은 현지 친구를 많이 사귈수록 그 질이 달라진다. 언젠가 꼭 파델을 배울 것이라고 결심했다. 피부색이 다른 이들과 어울려 흠뻑 땀을 흘리고, 맥주를 마시는 순간을 상상하니 심장이 뛴다. 한 번뿐인 삶이다. 더 재미난 삶이 있다면, 그 삶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툭스틀라 거리.
툭스틀라 거리.


또 다른 재미, 툭스틀라 

툭스틀라구트헤레스(이하 툭스틀라)에 잠시 다녀왔다. 산크리스토발에서 미니버스로 한 시간이면 간다. 툭스틀라는 치아파스주에서 가장 큰 도시다. 원체 도시를 좋아하는 데다 여행자들이 하나같이 볼 게 없다고 무시하니 더 가고 싶어졌다. 예상대로 툭스틀라는 완전 내 취향이었다.

툭스틀라는 치아파스의 주도이며, 10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를 자랑한다. 무엇보다 물가가 저렴했다. 산크리스토발도 다른 멕시코 지역과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지만, 인기가 많은 탓에 관광지 물가로 변질됐다. 현지인에게는 비싸고, 관광객에겐 그럭저럭 납득이 가는 수준이었다.

툭스틀라는 현지인에겐 납득이 가는 물가, 여행자에게는 무척이나 저렴한 물가여서 돈 쓰는 재미가 쏠쏠했다. 재벌이 된 것처럼 펑펑 쓰는데도 도대체 돈이 줄지 않았다. 모처럼 재래시장에서 여러 벌의 셔츠와 바지를 구입했고, 일본 식당에서 초밥도 사 먹었다.

여행은 자신의 취향을 찾고, 그 취향을 집요하게 공략하는 행위다. 다른 여행자들이 무시하는 곳에서 마냥 행복했다. 나의 여행 취향은 사람과 도시, 현지인의 오래된 맛집이다. 툭스틀라는 그런 의미에서 ‘로또복권’이었다.

개인적으로 멕시코라는 나라를 참 좋아한다. 친절하며, 맛있고, 원색의 화려함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산크리스토발이 그랬고, 툭스틀라가 그랬다. 우리나라엔 여전히 저평가된 국가가 멕시코다. 세상 사람들이 멕시코의 매력에 한 번쯤은 꼭 빠졌으면 한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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