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구속 사유와 ‘피해자 위해 가능성’

입력 2025. 06. 16   15:39
업데이트 2025. 06. 1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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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언철 법무법인 대화 변호사
심언철 법무법인 대화 변호사

 


최근 대구에서 경찰에 보호조치를 요청했던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불과 한 달 전, 이 여성을 흉기로 협박한 혐의(스토킹범죄처벌법 위반 등)로 수사 중이었으나 법원은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참극 이후 “구속만 했더라면”이라는 탄식이 쏟아졌다.

문제는 같은 패턴의 보복 살해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서울, 2022년 수원, 2023년 부산 등에서도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 신고 뒤 수사기관에서 수사받은 직후 분노해 살인을 저지르거나 살인을 시도했다. 스토킹범죄 특성상 수사 단계부터 피해자 위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여러 차례 입증돼 왔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구속수사가 이뤄졌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범죄’였다는 데 있다. 법원이 주거부정·도주우려·증거인멸 여부만을 중심으로 판단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의 생명에 실질적 위협이 있었음에도 현행 법체계에선 그것이 구속 사유로서 명시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70조 제1항은 구속 요건으로 △주거부정 △증거인멸 우려 △도망 또는 도망의 염려 등을 들고 있다. 이와 별도로 제2항은 “법원은 제1항의 구속 사유를 심사함에 있어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 위해 우려가 명시돼 있긴 하나 이는 ‘독립된 구속 사유’가 아니라 ‘기존 구속 사유 인정 여부를 심사할 때의 고려사항’이다.

다시 말해 피의자의 도주 가능성이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으면 피해자 위해 가능성만으로는 피의자를 구속하기 어려운 구조다.

최근 늘어나는 보복범죄로 인해 피해자 위해 가능성을 구속 사유로 명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스토킹·성폭력·가정폭력 범죄와 같이 ‘피해자에 대한 추가 범행 가능성’이 가장 큰 위협으로 존재하는 경우 고려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원도 이런 문제를 구속 심사 시 고려하는 추세다. 최근 한 재판부는 전 연인을 스토킹하다가 살해한 남성에게 “보복범행 가능성만으로도 구속 사유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재판부는 가정폭력 신고 후 접근금지 명령을 어긴 남편에게 “명백한 피해자 위해 우려”를 들어 영장을 발부했다. 이처럼 구속 판단이 재판부마다 달라지는 상황은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한계를 보인다. 피해자 위해 가능성을 구속 사유로 고려하느냐의 개별 판단에 따라 결과는 정반대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피해자 위해 가능성’을 구속의 독립된 요건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제70조 제1항에 “피해자에 대한 위해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를 구속 사유로 명시하자는 것이다.

피의자의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더라도 피해자의 신변이 위험한 경우 법원이 정당하게 구속을 선택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구속은 피의자의 신체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조치인 만큼 신중함도 필요하다.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따라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이 피의자의 기본권 제한보다 명백히 우선해야 하며, 위해 가능성의 객관적 판단 기준도 뒷받침돼야 한다.

아무리 피의자의 인권이 소중하다고 해도 피해자의 생명보다 앞설 순 없다. 법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거기에는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도 포함돼야 한다. “구속만 했더라면”이라는 뒤늦은 후회가 더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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