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K-pop 스타를 만나다

군복 벗고 아미 곁으로…다시, 보라

입력 2025. 06. 16   16:06
업데이트 2025. 06. 1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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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스타를 만나다

아미로부터 아미로…방탄소년단의 귀환

현역 군 복무 멤버들 최근 전원 전역
데뷔 12주년 맞물리며 폭발적 관심
‘BTS 페스타’ 팬 6만 명 몰리며 자축
단체 활동계획·전망 기대도 더 커져

 

지난 13~14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BTS 페스타’에는 6만여 명의 팬이 방문했다. 연합뉴스
지난 13~14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BTS 페스타’에는 6만여 명의 팬이 방문했다. 연합뉴스



아미(ARMY)를 떠나 아미(A.R.M.Y.)의 품으로 돌아왔다. 2022년 12월 13일 진의 입대로 시작된 방탄소년단(BTS)의 군 복무가 마무리돼 간다. 지난 10일에는 강원 춘천시 신북읍 체육공원에서 RM과 뷔가, 11일엔 경기 연천군 연천공설운동장에서 지민과 정국이 전역을 신고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24년 6월 13일 육군5보병사단 신병교육대 위병소에서 색소폰을 불며 진의 전역을 축하했던 RM은 이제 자신의 사회 복귀를 자축하며 소회를 밝혔다. “‘우리가 사회에서 우리 거 재미있게 할 동안 누군가는 여기서 이렇게 하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생각해 보지 못한 걸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해 10월 돌아온 제이홉과 함께 방탄소년단은 오는 21일 사회복무요원 소집 해제를 앞둔 슈가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상당한 예고는 있었지만, 아미들에게 방탄소년단의 군 복무기간은 대표곡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을 시작하는 노랫말처럼 진공의 시간이었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소우주 안에서 희로애락을 나누고, 삶의 의미를 찾던 열성 지지자들에게 유기적인 순환의 멈춤은 각오하더라도 감수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입대 직전 방탄소년단의 위상은 드높았다. 2022년 4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음악 시상식 ‘제64회 그래미 어워드’에 2년 연속 후보로 올라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경쾌한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버터(Butter)’로 코로나19 팬데믹의 우울한 시대를 치유했던 그룹이 다시금 마스크를 벗고 세상에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2021년부터 열린 특별공연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PERMISSION TO DANCE ON STAGE)’가 그 청사진이었다. 서울에서의 온라인 공연으로 몸을 푼 그룹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라스베이거스에 새로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경기장에서 수십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미 시장에서 비영어권 아티스트가 세운 대부분의 기록을 경신했다. 방탄소년단의 공백은 쉽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모두가 방탄소년단의 끊임없는 질주를 원했다. ‘다이너마이트’ ‘버터’ ‘퍼미션 투 댄스’의 연이은 성공과 콘서트, 그래미 어워드 공연,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공연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기에 더욱 놓칠 수 없는 사회에서의 방탄소년단이었다. 2022년 6월 10일 데뷔 9주년을 맞아 발표한 앤솔러지 작품 ‘프루프(Proof)’에서 “계속 달려야 해. 달려라 방탄”이라고 박차를 가했던 수록곡 ‘달려라 방탄’까지 그룹의 의지도 굳건해 보였다. 14일 자체 콘텐츠에서 단체 활동 마무리를 선언하기 전까지 말이다. 이날 방탄소년단은 멈춰 있던 세상의 채찍질에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고 행복과 웃음을 전해야 했던 지난날,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 혼란을 털어놨다. “우리가 어떤 팀인지 모르겠더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K팝도 그렇고 아이돌이란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방탄소년단은 진공과 침묵의 고요한 시간이 절실했다. 그룹은 오래전부터 “국가의 부름이 있으면 응하겠다”는 입장에 충실했다. 수많은 이가 방탄소년단의 입대 여부와 시기를 추측하며 그룹을 논란에 끌어들였지만, 이는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멤버 진의 회고대로 상기 라이브방송은 사실상의 입대 선언이었다. 다양한 부름과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마음을 다잡은 것이지 결심에 흔들림은 없었다. 수많은 대한민국 청년이 그러하듯이 방탄소년단도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오른쪽 가슴에 새겨진 이름 세 글자만 지닌 채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의 군 복무가 시작됐다.

‘군백기’의 체감은 크지 않았다. 그룹 활동 종료와 함께 시작한 멤버들의 개인 활동 덕이다. 각자 다른 재능과 취향을 가진 일곱 구성원의 새로운 도전이 본격화하며 방탄소년단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첫 솔로 주자로 힙합과 댄스 중심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미국 롤라팔루자 페스티벌 첫 K팝 헤드라이너 무대를 장식한 제이홉을 필두로 진은 밴드 콜드플레이와 함께 ‘디 애스트로넛(The Astronaut)’을 발표했고, RM은 첫 정규앨범 ‘인디고(Indigo)’로 어린 시절 음악영웅들과 함께 꿈을 이뤘다. 지민은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곡 ‘라이크 크레이지(Like Crazy)’로 홀로서기에 성공했고, 슈가는 기존 믹스테이프 발표작을 바탕으로 정규앨범 ‘디데이(D-DAY)’를 공개했다. 사뭇 다른 음악적 변신을 시도한 뷔와 세계를 호령하는 솔로 팝스타로 자신을 새롭게 정의한 정국의 활약까지 쉴 틈이 없었다. 순차적인 입대 과정에서 방탄소년단이란 이름의 언급은 줄어들었을지라도 개인을 향한 주목도는 더욱 높아졌다. 멤버들이 낯선 군 생활에 적응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동안 세상도 방탄소년단의 속도에 맞춰 숨을 골랐다.

“뒤늦은 나이에 가서 괴롭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간 많은 분이 나라를 지켜 주셔서 저희가 마음 편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깨달음과 함께 방탄소년단이 돌아왔다. 해외 매체는 그들의 전역을 두고 1958년 현역병으로 입대해 군 복무를 마친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역사를 소환한다. 입대 전 로큰롤 음악으로 국가적 인기를 누리던 프레슬리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특혜를 거부하고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서독에서 성실히 복무하며 그를 경계하던 기성세대의 지지를 확보하고 국민가수로 거듭났다.

관심은 폭발적이다. 하이브는 멤버들의 전역을 축하하며 ‘우리가 돌아왔다’는 문구와 공식 로고를 사옥에 장식했다. 데뷔 12주년을 축하하는 ‘BTS 페스타’에는 6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 전역 전부터 수없이 받았던 방탄소년단의 단체 활동계획·전망과 관련해 기대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자연스럽게 3년 전 입대를 앞둔 멤버들의 ‘찐 방탄회식’ 영상이 떠오른다. 셀 수 없는 재촉과 무거운 압박이 벌써 쏟아지고 있다. 재충전한 창의력과 늘어난 체력을 토대로 오롯이 창작에만 몰두하길 바란다. 방탄소년단은 세상을 따를 필요가 없다. 세상이 방탄소년단을 따르고 있으니까.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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