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스파이, 그들이 온다

인생 2막 열었을 뿐인데…인생 막 내릴 수도…

입력 2025. 06. 15   16:59
업데이트 2025. 06. 1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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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그들이 온다 - 퇴직 군인·공무원을 포섭하라

中, 컨설팅·싱크탱크 위장한 업체 채용광고
은밀한 포섭 대신 직접 찾아오게 해 ‘올가미’
미 CIA도 중·러에 스파이 공개 모집 동영상
포섭·정보수집 외 내부 분열 심리전 효과도

지난달 미 중앙정보국(CIA)이 유튜브 계정에 중국어로 올린 영상의 한 장면. 사진=CIA 유튜브 캡처
지난달 미 중앙정보국(CIA)이 유튜브 계정에 중국어로 올린 영상의 한 장면. 사진=CIA 유튜브 캡처



중국, 위장업체 내세워 퇴직 공무원 유혹


로이터통신은 지난 3월 26일 미국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 맥스 레서의 말을 인용해 중국이 정보수집 목적으로 위장업체들을 내세워 미국의 퇴직 공무원을 채용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채용 광고를 올린 위장 업체들은 전직 공무원을 노린 가짜 컨설팅, 헤드헌팅 회사들이라고 한다.

로이터가 채용 광고를 낸 ‘스미아오 인텔리전스’ 등 4개 회사를 추적한 결과 같은 웹 사이트와 서버를 쓰고 있어 단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었고, 전화와 이메일은 차단됐으며, 채용 사이트인 링크드인에 낸 광고도 이미 삭제됐다고 한다.

소재지로 기재돼 있던 미국, 일본, 싱가포르의 주소도 가짜였다. 이들 중 하나인 ‘리버머지 스트래티지’는 링크드인에 ‘정부기관, 국제기구, 다국적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지정학 컨설팅 전문가 모집’이라는 광고를 냈다. 또 다른 회사는 ‘싱크탱크, 학술기관 인재 풀에 접근 가능한 정책, 컨설팅 분야 채용 전문가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웨이브맥스 이노베이션’이라는 회사는 아예 ‘최근 퇴직한 미국 정부 공무원에게 취업 기회 제공’이라는 문구를 내세우기도 했다.

레서 연구원에 따르면 가짜 회사를 세워 스파이를 물색하는 것은 과거에도 중국이 정보수집 공작으로 활용했던 수법이지만 이번 사례가 심각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대량 해고돼 재정적 취약 상태에 놓인 연방 공무원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번 이들과 접촉하면 돈의 유혹으로 민감한 정보를 제공하게 될 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을 먹잇감으로 제공할 위험성도 크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국의 방첩 업무를 총괄하는 국가방첩보안센터(NCSC)는 연방수사국(FBI), 국방방첩보안국(DCSA)과 합동으로 비밀취급인가 공직자는 퇴직 후에도 비밀유지의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온라인 포섭 경고문을 공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외국 정보기관은 전직 관료들을 포섭하기 위해 컨설팅회사, 싱크탱크, 헤드헌터 등으로 위장해 단순 연구용역을 의뢰하는 것으로 관계를 시작한 후 민감한 정보수집 단계로 심화시켜 간다는 것이다.

중국은 과거에도 이런 수법을 활용했다. 2020년 7월 싱가포르 국적의 야오 준웨이가 미국 연방법원에서 스파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2015년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돼 가짜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링크드인에 광고를 낸 후 군인과 공무원들을 물색해 국제정치, 외교, 통상 등에 대한 리포트 작성을 의뢰하는 형식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이력서를 낸 사람은 400명이 넘었고, 90%는 군인과 공무원이었다.


CIA는 중국 공무원 대상 스파이 공개모집

중국의 미국 공무원 대상 스파이 포섭 활동을 비난하는 미국도 중국 공무원을 포섭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CIA는 지난 5월 중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스파이를 공개 모집하는 중국어 동영상을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올렸다. 하위 공무원에게는 미래가 암울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고위 공무원에게는 언제 숙청될지 모르는 불안함에서 벗어나 CIA에 연락해 미래를 보장받으라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스파이 포섭뿐 아니라 내부 분열을 위한 심리전까지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CIA는 금세기 최고의 러시아 스파이 포섭 기회라며 러시아어로 제작된 동영상을 통해 직접 스파이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러시아 상황과 암울한 미래를 벗어나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CIA에 연락하라는 내용이었다.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스파이 공개모집 이후 효과가 없었다면 이를 확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한 윌리엄 번스 전 CIA 국장은 러시아에서 상당한 소득(?)이 있었음을 암시하며, 사업 확대를 시사했다. 전통적 스파이 포섭은 정보를 가진 인물을 찾아내고 의도적으로 접근해 친분과 신뢰를 확보한 다음 돈이나 협박 등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통해 정보활동에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으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제는 은밀하게 진행되던 스파이 포섭이 인터넷을 통한 직접모집 광고로까지 변모한 것이다. 누가 정보를 가졌는지, 그가 조국을 배신할 의사가 있는지 알아내는 물색 과정이 필요 없다.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 수 있으며, 직접 접촉의 위험성을 배제하고 정보와 돈을 거래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다크웹을 통해 암호화된 통신 수단으로 연락하고 암호화폐로 대가를 지급하는 등 안전성도 강화됐으며, 대면 접촉에 따른 심리적 부담감도 줄었다. 바야흐로 과학기술과 사회 변화에 따라 스파이 전장에 큰 변화가 일고 있으며, 일찍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예상한 것처럼 전문 스파이 대신 수많은 일반인 스파이가 활약하는 정보전의 미래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전·현직 군인, 공무원 대상 방첩 대책 시급


정보기관이 상대국에서 스파이를 물색할 때 정보요원, 군인, 정치인, 공무원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당연하다. 필요한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방첩첩보 수집을 위해서는 정보요원이, 군사정보를 위해서는 군인들이, 영향력 공작을 위해서는 정치인이 우선순위에 있지만 상대국 정부의 주요 정책을 예측하고 각종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공무원이 포섭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각 부서의 의사결정 구조와 영향력, 주요 인물 정보와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미래 사업 방향의 예측도 가능하다. 퇴직한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이런 정보에 대한 경험이 축적돼 있으며, 취업을 미끼로 이들의 이력서만 수집하더라도 상당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자기소개서 및 그동안의 경력과 프로젝트 수행 경험 등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내용은 해당국 정부의 주요 정책과 업무 프로세스 및 향후 계획까지 예측할 수 있게 해주고, 물색하고 포섭해야 하는 가치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정보목표 분석에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최근 평균수명 연장으로 정년퇴직 후에도 많은 공무원이 취업을 원하지만 이들을 필요로 하는 좋은 일자리는 많지 않다. 그만큼 상대국 정보기관에 포섭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봐야 한다. 미국에서는 전직 CIA 요원들이 외국 정보기관에 포섭되는 사례가 늘어나자 모든 전직 직원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서신이 발송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전직 군 정보기관 간부가 외국에 정보를 파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군인, 경찰관, 국정원 직원에게 적용되는 계급정년은 안보기관 종사자들의 조기퇴직을 구조화해 방첩 차원에서 또 다른 위협이 되고 있다. 큰 틀에서의 제도 개선이 중요하지만 우선 모든 군인·공무원과 퇴직자에 대한 방첩교육 강화와 위협정보 공유 등 경각심을 제고하는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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