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서 맞은 김밥 데이
따뜻한 전우애 확인하는 계기 돼
제1연평해전 승전 요인도
무기체계만큼 강한 전우애 영향 커
누구나 한 번쯤 어떤 음식을 먹다가 시간을 거슬러 오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음식을 ‘소울푸드’라고 부른다. 내게 미각의 즐거움과 포만감 이상의 행복을 주는 ‘소울푸드’는 김밥이다.
어릴 때 소풍 가는 날이면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싸 주셨다. 고소한 참기름 향이 잠을 깨우면 소풍날의 설렘에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 부드러운 달걀지단에 색색이 선명한 시금치와 당근, 묵직한 햄과 맛살이 하얀 밥 가운데 자리 잡은 김밥은 예쁘고 맛도 좋았다.
도시락 뚜껑을 열 때부터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김밥을 맛본 친구들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지금도 김밥을 먹으면 그 시절 엄마의 사랑과 추억이 떠올라 행복해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김밥의 행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중위 때 지휘통제실에 근무했는데, 그 당시 김밥은 긴급상황에서 끼니를 때우는 음식이었다. 김밥은 더 이상 행복의 음식이 아닌 긴장의 식량이었고, 밖에서도 김밥을 찾지 않게 됐다. 그 이후 김밥을 한동안 먹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여기, 북방한계선(NLL) 사수의 최전방 2함대에서 출전임무 수행 중 김밥이 다시 소울푸드 자리를 되찾았다.
바다 위에서 맞은 어느 날 점심, 승조원들이 직접 김밥을 싸 먹는 ‘김밥 데이(Day)’가 열린 것이다. 당직근무의 피로와 허기에 지쳐 사관실 문을 열었을 때였다. 뽀얀 김이 피어오르는 사이로 선배 장교들이 진지한 얼굴로 김밥을 말고 있었다.
접시에 오른 김밥은 2차 식사를 하는 장교들을 엉망진창인 모양으로 한 번 웃게 만들고, 감동적인 맛으로 두 번 웃게 해 줬다. 모양과 재료가 제각각인 김밥은 신기하게도 모두의 입맛에 맞았다. 채소를 좋아하는 내게는 채소를 듬뿍 넣은 김밥을, 치즈를 싫어하는 갑판사관에게는 치즈를 뺀 김밥을 싸 준 것이다.
다른 승조원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햄과 단무지만 들어 있는 김밥, 옆구리가 터진 김밥 등 각자의 김밥을 만들고 나눠 먹으면서 말이다. 이날이 아니었다면 전우들의 손맛도, 김밥 취향도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뜻한 전우애와 맛있는 음식 덕분에 긴장된 접적 해역에서도 우리 함정은 온기가 가득한 곳이 됐고, 딱 붙어 있는 김과 밥처럼 하나로 뭉쳐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6월엔 결코 잊을 수 없는 제1연평해전 승전일이 있다. 연평해전의 승전 요인은 강한 무기체계와 실전적 교육훈련도 있었지만, 생사를 결정짓는 순간 한배를 탄 전우들을 신뢰하며 전우애와 팀워크를 발휘했기에 가능했다. 전우애는 군인정신의 요소 중 하나인 ‘단결’의 초석이고, 승리를 확신하는 키(Key)여서다. ‘소울푸드’를 되찾아 준 경기함 전우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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