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김준희의 클래식 읽기

문명의 껍질 들추고 격동하는 본능을 보라

입력 2025. 06. 12   16:11
업데이트 2025. 06. 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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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희의 마이클(마음으로 이어주는 클래식) -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불새’ 

폭력적이기까지 한 불규칙한 리듬
화성 충돌·극단적으로 절제된 선율
20세기 음악 근본 뒤흔든 혁신적 곡
원시주의 극대화한 긴장감과 야성성
안무·무대연출 등 기존 예술관습 전복
공연 당일 객석에서 폭동 일어나기도

러시아의 디자이너 레옹 박스트가 1910년에 그린 ‘불새’ 의상 스케치.
러시아의 디자이너 레옹 박스트가 1910년에 그린 ‘불새’ 의상 스케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는 20세기 음악의 방향을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작곡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작품은 우선 음악적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 버렸습니다. 또한 예술이 사회와 문명을 반영하고, 때로는 그것을 전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증명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고전 형식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음향과 리듬을 탐구했습니다. 특히 ‘불새’(1910)와 ‘봄의 제전’(1913)은 그가 추구한 원시주의의 미학과 실험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그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아버지는 러시아제국 오페라의 유명한 베이스 가수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는 음악적인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법학을 전공했고, 여느 러시아 모범생처럼 정부기관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그는 림스키코르사코프를 사사하며 본격적인 작곡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러시아제국 시기로, 러시아 민속 음악과 신화를 바탕으로 ‘불새’ ‘페트루슈카’ ‘봄의 제전’과 같은 발레 음악을 썼습니다. 두 번째는 신고전주의 시기로, 스트라빈스키는 고전주의 형식과 질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실내악과 종교 음악을 주로 작곡했습니다. 마지막 시기에는 쇤베르크의 영향을 받아 ‘12음 기법’을 탐구하며 아방가르드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어느 특별한 양식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작곡가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원시주의(Primitivism)는 스트라빈스키의 가장 급진적인 음악적 실험을 대변합니다. 원시주의는 문명화되기 이전의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인간의 감정과 자연의 힘을 예술로 재현하고자 하는 사조입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원시적 에너지와 미학을 소리로 구현하고자 했고, 그 의지가 응축된 작품이 바로 ‘봄의 제전’입니다.

1913년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된 이 발레는 음악뿐만 아니라 안무, 무대 연출 등 전반에 걸쳐 기존의 예술 관습을 완전히 뒤엎었습니다. 폭력적이기까지 한 불규칙한 리듬, 화성적 충돌, 극단적으로 절제된 선율은 청중에게 상당한 충격을 줬습니다. 공연 당일 객석에서는 실제로 폭동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고대 부족 사회의 봄맞이 제의를 주제로 한 ‘봄의 제전’은 젊은 처녀가 땅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제물로 선택돼 죽음을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내용 자체가 원시적이지만, 무엇보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야성성이 그 원시주의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불규칙한 박자와 예측할 수 없는 리듬의 변화, 격렬한 타악기의 사용으로 음악이 인간 본성의 심연을 건드리는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을 통해 ‘문명의 껍질 아래 숨겨진 인간의 본능’을 나타냈습니다.

 

 



‘봄의 제전’의 초연은 20세기 음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혁명적인 사건이었고, 공연 예술 전체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이 발레는 고대 슬라브 민족의 봄맞이 제사를 모티프 삼아 한 젊은 처녀가 자연의 순환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곡은 기존의 선율 중심 구조에서 탈피해 리듬과 음색을 바탕으로 음악은 원초적인 리듬과 함께 텍스처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바순의 고음 솔로 부분은 전례 없는 실험적 도입부로 손꼽힙니다. 각각 ‘봄의 예고’와 ‘희생의 춤’으로 구성된 두 부분은 계속해서 진행되는 독특한 음향이 매우 특징적이며, 철학적이고 상징적인 예술 작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예술적 혁신뿐만 아니라 개인사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2011)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1913년 ‘봄의 제전’ 초연 당시 코코 샤넬은 관객석에 있었고, 그의 작품에 감명받아 스트라빈스키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합니다.

영화는 두 사람이 후에 샤넬의 별장에서 예술적 교감을 나눈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영화 속에서 샤넬은 스트라빈스키가 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작곡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합니다. 이 시기에 그녀는 자신의 대표 향수 ‘샤넬 No.5’를 완성했고,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을 재정비합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또 하나의 대표작인 ‘불새’는 다소 서정적이고 구조화된 작품입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러시아 민속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잘 드러난 곡이기도 하죠. 러시아 전설에 등장하는 신비한 ‘불새’는 악마로부터 인간을 구원합니다. 이 작품은 리듬보다 선율과 조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다양한 악기 조합을 통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 작품은 그가 파리의 러시아발레단을 위해 만든 첫 번째 대형 발레곡입니다. 러시아 민담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불새와 사악한 마법사 카시체이, 그리고 용감한 왕자 이반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스트라빈스키 특유의 화려하고 극적인 스타일은 물론 대담한 리듬과 밝은 음색, 생생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기존의 발레 음악과는 차별화됩니다. 특히 불새의 주제는 목관악기와 하프, 현악기군의 환상적인 조화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작품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며, 서정적인 선율과 강렬한 리듬의 대비를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단독 콘서트용 모음곡으로 자주 연주되며, 현대 관현악 기법의 교과서로도 평가받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민속적 요소와 현대적 작곡 기법의 결합을 통해 ‘러시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을 완벽하게 융합해냈고, ‘불새’는 러시아 전통을 서구 무대에 성공적으로 이식한 사례로 꼽힙니다.

동시에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상징적 구도 속에서 인간 내면의 갈등과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어 스트라빈스키가 집중했던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질문들과 연결됩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고유의 신화를 국제적인 음악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습니다. 동시에 차세대 작곡가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됩니다.

스트라빈스키는 1971년 뉴욕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음악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변화했고, 그 변화 속에서 늘 새로운 길을 개척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청중에게 던집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필자 김준희는 연주와 강연으로 ‘대중의 클래식화’를 꿈꾸는 피아니스트다. 저서로 『클래식 음악 수업』 『클래식, 경계를 넘어』가 있으며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필자 김준희는 연주와 강연으로 ‘대중의 클래식화’를 꿈꾸는 피아니스트다. 저서로 『클래식 음악 수업』 『클래식, 경계를 넘어』가 있으며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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