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고 김진수 대위 금성화랑무공훈장 전수
인사명령·거주표 등 분석 신원 확인
아들, 순직 사실만 알고 묘 위치 몰라
뒤늦게 빛나는 전공 알고 회한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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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제야 인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못 뵌 만큼 앞으로 더 자주 찾아올게요.”
군 복무 중 돌아가셨다는 사실만 알 뿐 묘소조차 몰랐던 아버지가 화랑무공훈장과 함께 돌아왔다. 66년 만에 아버지 묘역의 존재와 빛나는 전공을 알게 된 아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육군인사사령부(인사사)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은 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전쟁에 참전한 고(故) 김진수 대위의 금성화랑무공훈장을 유가족에게 전도 수여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6·25전쟁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의 결실로 마련된 행사에는 고인의 아들인 김영철 씨를 비롯한 유가족과 황인수(준장) 인사사 인사행정처장, 이철성(대령) 조사단장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황 처장은 이날 66년 만에 아버지와 마주한 김씨에게 무공훈장을 전달하며 고인의 숭고한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1949년 7월 20일 입대한 고인은 6·25 발발 직후 국군 6사단 사령부 본부중대에서 병으로 복무 중 전투 공적을 인정받아 훈장 수여 대상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긴박한 전장상황 때문에 무공훈장을 받지 못했다. 이후 1951년 2월 17일 장교로 임관한 고인은 국군 7사단 8연대 소대장으로 여러 전투에 참전, 2개의 화랑무공훈장을 추가로 받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호국영웅의 기억은 대(代)를 잇지 못하고 사라졌다. 1958년생인 김씨는 자신이 갓난아기였던 1959년 아버지가 군 복무 중 순직했다는 사실만 알 뿐 아버지 없이 성장했다. 뒤늦게 아버지의 행방을 찾았지만, 부친의 공적은 물론 정확한 안장 위치도 알지 못한 채 수십 년이 흘렀다.
김씨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되찾아준 건 조사단이었다.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고인의 자료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단은 병사에서 장교로 신분을 전환한 고인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인사 명령, 빛바랜 거주표, 보훈부 등록사항 등을 자세히 분석했다. 그 결과 병사와 장교, 2명의 ‘김진수’가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김씨는 처음에 조사단 측 연락을 보이스피싱으로 여겨 무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실까지 찾아와준 조사단원들의 정성 덕분에 아버지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 계시다는 것과 3개의 무공훈장을 받은 영웅이란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김씨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군인으로서 국립묘지에 계시다는 것을 66년 만에 알게 돼 기쁘면서도 눈물이 난다”며 “아버지의 존재를 되찾아준 조사단 측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2019년 조사단 출범 이후 원래 주인에게 전달된 무공훈장은 3만4000여 개에 달한다. 황 처장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무공훈장을 전해 드리게 돼 죄송하면서도 영광스럽다”며 “많은 난관이 있지만, 한 분의 공로자도 빠짐없이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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