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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군사통역사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까

입력 2025. 06. 09   16:26
업데이트 2025. 06. 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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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찬 소령 해군사관학교 영어학과 교수
박기찬 소령 해군사관학교 영어학과 교수

 


육군사관학교 유정화 교수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트뤼그베 할브단 리 초대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의 운명은 정치가들에게 달려 있고, 두 번째는 통역사에게 달려 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또 6·25전쟁에 참전했던 한 통역장교는 한미 장교 간 의사소통 때 잘못된 통역은 수십·수백 명의 목숨을 잃게 할 수 있기에 정확한 통역이 필요했음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례는 통역이 국가와 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한미 연합훈련 및 다국적 훈련에 수시로 참가하는 우리 군은 다수의 유능한 통역요원을 필요로 하나 청년 인구 감소로 유능한 통역요원의 모병이 어려워졌다. 통역요원 부족으로 임무 수행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자주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주목받는 인공지능(AI)이 군사통역에 활용될 수 있다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AI를 이용해 대화하는 게 어색하므로 번역은 몰라도 통역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상황에 따라 소비자들이 점원을 통해 물품을 사는 것보다 키오스크를 선호할 때도 있는 것처럼 AI 통역을 자주 활용하다 보면 인간 통역사보다 AI 통역에 의존하는 게 더 편해질지도 모른다. 더구나 생성형 AI의 통번역 능력을 분석한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이미 몇몇 분야에서 AI의 통번역 결과물은 전문 통번역사들이 공들여 만든 결과물과 구분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한다.

군사통역에 AI를 사용할 때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은 있다. 첫째, 보안 문제다. 챗GPT와 같은 상용 생성형 AI 시스템은 입력되는 모든 명령어를 데이터센터의 서버에 자동 저장하므로 군사정보 유출 위험이 있다. 대부분의 연합훈련은 스마트폰과 같은 상용 정보통신장비 반입이 통제되거나 물리적으로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전장환경에서 시행되기에 현재 기술로는 훈련 중 신뢰성 있는 AI 시스템에 접근하는 게 제한되기도 한다.

둘째, AI는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 관해 인간 통역사보다 이해력이 부족하다. 인간은 종종 암시나 은어를 활용하고,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상대방이 처한 문화적 맥락이나 미묘한 정치상황의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AI는 아직 복잡한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매우 급한 작전상황에선 완전한 문장보다 많은 단어가 생략된 짧은 문장을 쓰는데,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현장 판단력을 갖추지 못한 AI는 발화의 올바른 의도 파악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

이 같은 AI의 제한점을 고려했을 때 우리 군은 우수한 통역요원의 모병과 양성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먼 훗날 보안성이 강화되고, 전장환경에서도 접근이 가능한 군 전용 고성능 AI가 개발되는 날이 온다고 해도 통번역을 위해 AI를 사용하는 장병들은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확인하고, 오류가 있을 때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수많은 이의 목숨이 달린 연합작전에서 순전히 AI의 통번역에만 의존하는 건 살상무기의 사용 여부를 AI 판단에 맡기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다. 기술이 발전한 미래에도 장병들이 갖춘 어학 능력의 중요성은 크게 낮아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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