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돋보기 - 2025년 샹그릴라 대화와 미·중 외교 디커플링
중, 역대 가장 낮은 지위의 대표단 참가
자국 주최 안보회의 향산포럼 주력 의도
역내 미국 영향력 확대에 불편함 드러내
아세안은 관세 등 미 중심축에 반발 자제
미, 유럽 상황 거론하며 국방비 증액 촉구
호주·한국·뉴질랜드 등과 파트너십 언급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아시아지부는 2002년부터 싱가포르 정부의 후원으로 아시아안보회의, 즉 개최 호텔의 이름을 딴 ‘샹그릴라 대화’를 연례적으로 열어 왔다. 이는 역내 안보이슈를 논하는 장관급 행사로, 다자간 대화를 주도하면서 자국의 현실주의와 포용성을 홍보하기 위한 싱가포르 정부의 전략사업이다.
싱가포르는 국방부 관료뿐만 아니라 방산기업, 연구자, 매년 별도로 선발하는 차세대 연구진 간 소통의 장을 제공한다. 싱가포르 국방부와 국제 전문가들의 교류를 독려해 정보도 적극 수집한다. 현장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양자 및 소다자 회의가 국방부 실무자들에게는 더 중요하다. 올해 샹그릴라 대화는 미·중 경쟁에서의 승리를 국가 목표로 공언한 미국의 국방안보전략에 관한 궁금증이 증폭되는 시점에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현지시간)까지 열렸다.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 연계에 기반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기조연설에 이어 6개 본회의 세션과 특별세션으로 구성됐다. 본회의는 ①미국의 인·태 지역 안보에 대한 새로운 야망 ②경쟁적 세계에서 안정 보장 ③아시아·태평양 지역 확산 위험의 관리 ④사이버·해저·우주 영역에서의 국방 도전 ⑤지역 간 안보 연계 ⑥안정적 아·태 지역에서의 안보협력 증진을 논의했다. 특별세션은 ①미래 도전을 위한 국방혁신 솔루션 ②지역 위기관리 메커니즘 ③아·태 지역의 협력적 해양안보를 토론했다.
배경 : 미·중 경쟁 심화
행사 개최 직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중국정책을 담당했던 일라이 래트너와 인·태 전략을 주도했던 커트 캠벨이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이 공개됐다. 전자는 인·태 지역에서 미국·일본·호주·필리핀 4개국이 군사동맹을 결성할 조건이 충족됐다고 역설했고, 후자는 동맹과 파트너 간 네트워크적 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중국 위협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래트너는 인·태 지역 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같은 군사동맹의 확장·정착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샹그릴라 대화 개회식 직전 워싱턴DC에서 지난달 미국과 중국이 관세전쟁을 90일간 휴전하기로 한 제네바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약속을 안 지킨다는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합의를 전적으로 위반했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참석국은 다양해도 샹그릴라 대화는 사실상 규칙 기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중시하는 서방세력의 관점이 조명되는 국제회의로 인식된다. 그런데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방부장이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었다. 남중국해나 대만해협 인근 군사활동 관련 질문도 공개석상에서 제기됐지만, 미국과 소통을 이어갈 수 있고 미·중 간 균형을 추구하는 역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대안적인 중국의 리더십을 홍보하기에 유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국제안보 역할을 강조하고자 2022년 글로벌안보구상(GSI)을 발표한 바 있으나 올해는 2007년 이래 가장 낮은 지위로 구성된 국방 대표단을 파견했다. 지난 4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앙주변공작회의를 12년 만에 주재하면서 중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가 미국에서 주변국으로 변경됐음을 강조했다. 이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면 서방세력이 주도하는 샹그릴라 대화에 더 이상 공을 들이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다. 중국이 주최하는 안보회의인 향산포럼에 주력해 본토에서의 주변국 외교를 강화하겠다는 심산으로, 향후 지속될 미·중 간 외교적 디커플링의 전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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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태 지역 전략
샹그릴라 대화에서 늘 미 국방장관 연설이 본회의 첫 세션에 배치돼 크게 주목받는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연설은 동맹 협력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어조로 시작해 미국 우선주의가 결코 미국 유일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마무리됐다. 요지는 미국의 경우 태평양 국가이고, 이 지역의 자유와 번영에 의존하는 나라로서 인·태 지역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므로 밀어내려는 시도를 중단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는 중국 국방부장의 부재를 언급하며 본인은 벌써 이 지역에 2번째 방문했고, 앞으로도 계속 올 것이라고 밝혔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미군의 전쟁 수행력, 치명적 역량 개발과 방위산업 기반 강화, 억제의 회복을 역설했다. 미국의 1조 달러 국방예산을 강조하면서 더 강하고 민첩한 군대 건설을 공표했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기조는 분명하고 포괄적이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기댄 역내 여러 국가의 지정학적 사정은 이해하지만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역내 공세적 행태가 본격화돼 이제는 그럴 여유가 없다고 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방력을 빠르게 성장시킨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국들은 중국 의존도를 대폭 줄여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또한 유럽 국가들이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국방비 예산을 늘리는 상황에서 인·태 지역 국가들도 분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역내 평화와 안정이라는 공공재 제공에 비용과 역할 부담 관련 동맹 간 불편한 대화가 이어질 수 있음을 예고했다.
군사적으로는 미국의 전진군사태세, 역내 국가들의 국방 역량 강화, 동맹 및 파트너국 간 방위산업 기반 통합을 언급했다. 필리핀에 신규 배치한 대함미사일 네메시스, 주일미군사령부의 격상, 해외에선 처음으로 호주에서 시험발사하는 미 육군의 중거리 공격 역량을 소개했고 골든돔 구축을 통한 본토 방어도 강조했다.
특히 인·태 지역 산업 회복탄력성 파트너십(PIPER)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며 P-8 레이다 정비는 호주가, 항공기 정비는 한국과 뉴질랜드가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역별 정비거점 구축정책(RSF) 차원에서 동맹국과의 조선업 협력 가능성도 언급했다. 미국의 글로벌 패권 유지 의지는 강하지만, 예외주의적 국가가 아닌 보통국가화된 셈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역내 국가 반응과 전망
중국 대표단은 역내 미국의 소다자 안보협의체 구축이 아세안 중심성과 양립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등 역내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세안 참석자들이 미국발 무차별적 관세에 소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아 미국 중심축이 쉽게 약해질 것 같진 않다. 특별연설을 맡은 아세안의 의장국 말레이시아 총리는 미국 보복관세는 없을 거라며 유연성을 과시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미·중 모두에 의존도를 줄이고, 원칙과 규범에 기반해 유럽 및 인·태 지역을 잇는 새로운 연합 형성을 촉구한 대로 역내 질서가 재편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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