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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을 마주하며

입력 2025. 06. 04   15:33
업데이트 2025. 06. 0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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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인 상병 육군11기동사단 진격대대
이태인 상병 육군11기동사단 진격대대

 


우리 부대는 전반기 집중정신전력교육 활동의 하나로 해군2함대를 방문했다. 비록 육군으로 복무하고 있지만, 평소 해군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견학이 기다려졌다.

처음 천안함을 마주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두 동강 난 선체, 끊어진 와이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부서진 장치들. 그날의 참혹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승조원 104명 중 58명은 구조됐지만, 나머지 46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중 6명은 산화자 처리됐는데, ‘산화’란 단어에는 ‘꽃이 시들어 떠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름답고 빛나던 꽃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들의 꽃잎을 무참하게 떨어뜨린 북한군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가슴을 다시 울렸던 건, 멈춰 버린 시계였다. 2010년 3월 26일 밤 9시22분, 피격된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 순간만큼은 잊지 말라는 듯했다. 전시관에는 천안함 내부가 재현돼 있었다. 일상을 보내던 공간이 비극의 공간이 됐다고 생각하니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전사자들의 사진과 유품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도 꿈 많던 청년이고, 전역 후의 삶을 그리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이후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시청했다.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가 성금 1억 원을 기탁하며 “조국의 영해를 지켜 달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출동 명령이 없어도 그 차가운 심연 속으로 본인을 던졌던 고 한주호 준위의 이야기 역시 가슴을 울렸다.

이후 유가족들은 더 이상의 희생을 원치 않는다며 유해 수습을 중지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남의 자식도 소중히 여긴 그 마음이 너무나 애달팠다.

천안함 피격 당시 초등학생이었다. 그땐 ‘안타까운 일’이라고 여겼지만, 이젠 다르다. 국가안보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군인이 된 지금! 그 희생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들을 기억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고,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그들이 지켜 준 과거와 현재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우리가 안전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그 사명을 후대가 이어가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을 더 강하게 하는 길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부여된 임무를 완수해 굳건히 나라를 지킬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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