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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취임]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었다

입력 2025. 06. 04   16:24
업데이트 2025. 06. 0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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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본 이재명 대통령이 걸어온 길

초등학교 졸업 사진.
초등학교 졸업 사진.


소년공에서
1964 경북 안동 출생 (12월 22일생) 
1976 안동 삼계초 졸업/성남공단 노동자 취업
1978 고입 검정고시 합격 
1980 대입 검정고시 합격 

 

 

인권변호사 시절.
인권변호사 시절.


인권 변호사로…

1986 중앙대 법대 졸업/ 제28회 사법시험 합격
1989 민변 국제연대위원 
1990 이천노동상담소 소장 
1994 성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촛불집회서 연설하는 모습.
촛불집회서 연설하는 모습.


변방 정치인에서
2010 민선 5기 성남시장 당선
2014 민선 6기 성남시장 당선 
2018 민선 7기 경기도지사(더불어민주당) 


제21대 대통령 당선.
제21대 대통령 당선.


대통령으로…
2022 제20대 대통령 낙선/ 제21대 국회의원 당선 (인천 계양을 보궐)/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당선
2024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연임 
2025 제21대 대통령 당선



이재명 대통령의 삶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파란만장하다. 1964년 경북 안동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 대통령은 중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13세 때부터 ‘이름 없는 소년공’으로 6년을 보냈다. 그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공장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검정고시를 거쳐 법대에 진학했고, 23세에 사법고시 합격이란 꿈을 이뤘다.

하지만 그는 ‘거리의 이재명들’을 외면하지 않고 40대 중반까지 노동 인권 변호사와 시민 운동가로 살았다. 그 후 시민운동의 한계를 느끼자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짐을 갖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2010·2014년 성남시장을 연임한 그는 2018년 경기도지사를 거쳐 2022년 국회의원에 첫 당선됐다. 2022년·2024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최초로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임에 성공했다. 그리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제21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을 이끌게 되면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기초단체장·광역단체장·국회의원·당대표를 모두 경험한 첫 번째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대통령은 경북 안동시 예안면 산골 마을에서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1976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기 성남시의 빈민촌으로 이사한 이 대통령은 중학교 대신 공장을 선택했다. 남의 이름을 빌려 소년공이 된 그는 6년 동안 열악한 노동현장을 견디며 돈을 벌었다.

거친 공장일로 수많은 흉터가 남았지만, 야구글러브 공장에서 입은 왼팔의 상처는 치명적었다. 프레스기에 왼팔 손목 관절이 눌린 그는 손목이 뒤틀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다. 지독한 가난과 차별 속에서 끝없이 싸워야 했던 유년기는 ‘누구도 탈락하지 않는 삶’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사회’라는 정치적 소신의 밑거름이 됐다.

처절한 환경을 탈출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공부였다. 처음엔 공장 관리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꿈에 그리던 중·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얻었지만 삶은 그대로였다. 결국 낮에는 공장일을 하고 밤에는 학원을 다니며 대학 진학을 꿈꿨다. 하루 두 시간만 자며 공부에 몰두한 끝에 학력고사에서 고득점에 성공, 1982년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혜택을 받으며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이 대통령은 대학에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경험한다.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접한 것. 소년공 시절만 해도 5·18을 ‘폭도에 의한 반란’으로 알고 있던 그는 대학에서 진실을 접하고,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1986년 제2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판·검사 대신 노동 인권 변호사를 선택했다. 1989년 성남시에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그는 도시정비 사업으로 쫓겨 온 철거민, 도시 빈민, 공장 노동자들의 입이 돼 줬다.

그는 1995년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발을 내디뎠다. 특히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 등을 고발하며 기득권과의 험난한 싸움을 거듭했다.

2004년에는 성남시 구시가지 내 대형 병원들이 계속 문을 닫자 공공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주민 발의 조례를 만들었지만 시 의회에서 47초 만에 부결됐다. 현실 정치의 힘을 절실히 느낀 후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갖고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정치 입문 초기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 이어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하지만 마침내 2010년 민선 5기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열린시정’을 표방하며 시민들과 소통에 나섰다.

특히 지방정부 최초로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하며 크게 주목받았다. 65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던 성남시는 3년 만에 재정 정상화에 성공했다. 이 기간 이 대통령은 복지 예산 비중을 늘리면서도 부채 상환을 성공적으로 해내 ‘복지는 돈 문제가 아닌 철학과 신념의 문제’라는 것을 입증했다.

‘변방의 정치인’이었던 이 대통령을 순식간에 중앙 무대로 올린 것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었다. 그는 정치인 최초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며 ‘촛불혁명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이라는 기조 아래 ‘공정-평화-복지’가 선순환하는 도정을 펼쳤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한 뒤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으로 제21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나서 승리한 그는 2022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77.77%란 압도적인 득표율로 대표에 취임했다.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중앙당사 지하에 있던 청소노동자와 관리직원들의 휴게실을 지상으로 옮기고 공간을 넓힌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 분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선 시계가 빨라졌고, 89.77%, 압도적인 1위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됐다. 과거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했던 그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한층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어떤 사상과 이념도 시대 변화를 막을 수 없다” “이념과 사상, 진영에 얽매여 분열과 갈등을 반복할 시간이 없다”는 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정부의 방향성을 읽어볼 수 있다. 맹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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