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정덕현의 페르소나

하늘이 뒤집혔건만… 절대 善함, 반전이 없네

입력 2025. 06. 04   16:08
업데이트 2025. 06. 0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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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페르소나 -  ‘당신의 맛’이든 ‘야당’이든, 결국 좋은 사람 강하늘 

‘동백꽃 필 무렵’ 순박청년 용식이 가고…
‘야당’선 브로커를, ‘당신의 맛’ 차도남 열연
독하고 야비하지만 결국은 인간미 폴폴
악역도 설득시키는 선함, 뭘 해도 빛이 난다

 

드라마 ‘당신의 맛’에서 한범우 역을 맡은 배우 강하늘.
드라마 ‘당신의 맛’에서 한범우 역을 맡은 배우 강하늘.



“좋은 연기자 전에 좋은 사람부터 되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제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동백꽃 필 무렵’으로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강하늘은 이 말로 소감을 마무리했다. 수상소감에서도 후보로 함께 올랐던 남궁민, 현빈, 주지훈, 박서준을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내내 그들의 작품을 보며 자랐다는 걸 강조했던 강하늘이었다.

당시 그가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연기했던 황용식이란 캐릭터는 ‘좋은 사람’ 그 자체였다. 타지에서 들어와 지역주민들의 편견 어린 시선에 잔뜩 주눅 들어 있던 미혼모 동백(공효진)을 끝없이 응원해 점점 멋지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황용식이었다. 동백이라는 꽃이 활짝 피게 만든 사람. 그 캐릭터를 강하늘은 제 옷 입듯 착 달라붙게 연기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써 가며 어딘가 촌티를 풀풀 풍기지만, 우직하고 순박하며 정의롭기까지 해 보는 이들을 어느새 매력의 늪에 빠뜨리는 그런 인물을 폼 잡지 않는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구현했다. 그 연기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했던 걸까. 아니면 본래부터 강하늘이란 배우는 뭘 해도 ‘좋은 사람’의 면모가 가려지지 않는 걸까. 그 후에도 그의 이미지는 여러 역할 속에서도 바로 그 ‘좋은 사람’의 느낌을 잃지 않았다.

그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미생’ 같은 작품에서 강하늘이 맡은 장백기 캐릭터는 원작과 달리 주인공 장그래(임시완)를 무시하는 듯한 스펙남의 얄미움이 있었지만, 역시 그의 이미지는 영화 ‘동주’의 윤동주 역할처럼 바른 인물 속에서 더 진중하게 빛나는 면이 있다. ‘청년경찰’에서 건강해 보이는 강희열 같은 역할도 그렇고, ‘커튼콜’에서의 올곧은 무명배우 유재헌 역도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이 바른 이미지를 오히려 깨고 싶은 욕망이 유독 강했던 듯하다. 최근에 강하늘이 연기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2’와 영화 ‘야당’을 보면 그의 다른 선택이 눈에 띈다.

‘오징어 게임2’에서 그가 맡은 강대호는 해병대 출신이라는 걸 떠벌리며 강한 남성성을 과시하지만, 실상은 유약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다. 반란이 일어났을 때 잘 싸울 것처럼 나서지만, 총격전이 벌어지자 숨어 버림으로써 반란 실패에 일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 ‘야당’에서는 마약세계의 정보를 수사기관에 몰래 제공하면서 부를 축적하는 내부자 이강수 역할을 연기한다. 마약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일을 하는 것이지만, 배신이나 권력과의 결탁이 기본인지라 결코 좋은 인물이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작품을 계속 보다 보면 이들 인물이 본래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게 드러난다. 즉 ‘오징어 게임2’의 강대호는 그 유약함을 애써 숨겨야만 이 지독한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강한 척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나쁜 면모가 나오는 인물이다. 강대호가 나쁜 게 아니라 그를 그렇게 만드는 생존게임 시스템이 나쁘다는 걸 잘 드러내는 캐릭터다. ‘야당’의 경우에도 그런 배신과 결탁을 밥 먹듯 하게 된 데는 억울하게 마약사범이 된 뒤 감형을 미끼로 그 일을 하게 만든 부패한 검사가 있었다. 결국 그 검사에게도 배신당한 이강수가 그를 상대로 복수하는 이야기가 ‘야당’이다. 그러니 시작은 어딘가 껄렁대고 야비해 보이지만, 그 끝은 선량한 사람들의 편에 서는 그런 인물인 셈이다.


드라마 ‘당신의 맛’에서 한범우 역을 맡은 배우 강하늘.
드라마 ‘당신의 맛’에서 한범우 역을 맡은 배우 강하늘.



강하늘은 확실히 ‘동백꽃 필 무렵’의 순박하고 좋기만 한 캐릭터에서는 벗어났다. 때로는 다소 경박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비틀려 보이기도 하는 그런 인물을 연기한다. 그것은 분명 연기 변신이고,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하나하나 넓혀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연기 변신 속에서도 강하늘 본연의 ‘좋은 이미지’는 그만의 색깔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요소다. 애써 나쁜 사람처럼 엇나간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그 이면에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이 배우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감정이다.

요리와 로맨스라는 두 요소를 잘 버무려 낸 드라마 ‘당신의 맛’은 이러한 강하늘의 장점이 잘 드러난다. 그가 맡은 한범우라는 인물은 어머니가 대표인 대기업 한상푸드의 이사다. 어떻게든 별 3개 받는 식당을 만들어 기업의 후계자가 되려는 게 그의 목표다. 이를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타인의 레시피를 사거나 훔치는 일도 마다치 않는다. 하지만 이 인물이 변화를 맞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라이벌인 형의 계략에 휘말려 모든 걸 잃은 채 전북 전주로 내려오게 된 그는 천재 셰프 모연주(고민시)의 식당 ‘정제’의 레시피를 훔치려다가 그녀의 제안에 뜻밖의 동업을 하게 된다. 요리에 진심을 다하는 연주에게 점점 빠져들면서 범우는 조금씩 잊고 있던 자신의 진심을 되찾기 시작한다. 그 변화는 연주를 향한 범우의 마음이 커지면서 점점 드러난다. “너, 좋아한다고 내가 너!”라고 결국 속마음을 꺼내 놓으며 연주에게 다가가는 범우는 기업 후계자를 위해 어떤 방법이라도 쓰던 그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인다.

누가 봐도 완벽한 ‘차도남’처럼 비치던 인물이 전주로 내려와 그곳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고, 오로지 돈과 후계구도만이 목표로 보였던 인물이 한 사람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꺼내 놓는 이 ‘변신의 단차’에서 ‘당신의 맛’이란 드라마의 맛이 나온다. 어딘가 나쁘게 보였던 인물이 사실은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건 그만큼 우리에게 세상이 각박하지만은 않다는 걸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각박한 건 세상이고 현실일 뿐 우리의 본바탕은 결국 좋은 사람이라 믿고 싶은 것이고, 강하늘은 어쩌면 그런 면모를 작품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내는 배우가 아닐까 싶다. “좋은 연기자 전에 좋은 사람부터 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그래서 우리에게 거꾸로도 들린다. 좋은 사람이기에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건 연기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게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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