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사랑, 참 맞추기 어렵다

입력 2025. 06. 04   16:41
업데이트 2025. 06. 0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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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4가지 조건, 요즘 연애가 힘든 이유

나를 성장시키는가
최상급을 만났는가
소모적이진 않은가
현실에 부합하는가

대학생 넷 중 하나 “연애 안 해봤다”
관심 있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공부처럼 ‘잘’ 하고 싶은 마음 더 커
취향·관심사 비슷한 상대 없을 땐
예능 프로그램 보며 대리연애로 만족
경제적 부담·실용성 중시 ‘노웨딩’도

 

실용 성향이 강한 2030세대는 결혼문화도 바꾸고 있으며, 큰 비용이 드는 결혼식을 아예 생략하는 ‘노웨딩(no wedding)’ 커플도 많아졌다. 웨딩박람회에 전시된 드레스. 연합뉴스
실용 성향이 강한 2030세대는 결혼문화도 바꾸고 있으며, 큰 비용이 드는 결혼식을 아예 생략하는 ‘노웨딩(no wedding)’ 커플도 많아졌다. 웨딩박람회에 전시된 드레스. 연합뉴스



2024년 5월 연세대 학보에는 재학생 51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실렸다.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를 안 한다’는 이야기처럼 응답자 4명 중 1명은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고(26.7%), 10명 중 6명은 ‘지금 연애하고 있지 않다’(61.7%)고 했다. 최근 데이트 코스로 커플이 많이 찾던 영화관이나 번화가 상점들은 커플 손님이 줄어 영업이 어렵다고 토로할 정도다.

젊은 층이 연애 자체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설문에서 ‘연애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66.2%였다. 온갖 연애 관련 프로그램이 꾸준히 인기를 얻는 현상을 보더라도 사랑에 관한 관심은 여전하다. 조사업체 엠브레인에 따르면 2030세대의 50% 이상은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애 감정을 대리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왜 2030세대는 직접 연애하는 것 대신 ‘대리연애’에 만족하게 됐을까? 연애는 나아가 결혼, 출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요즘 시대에 사랑이 어려운 이유를 4가지로 정리해 보자.

첫 번째 이유는 사랑에도 ‘성장’이 필요해서다. 미래의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성장을 필수로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은 산책하거나 영화를 보는 등 여가를 함께 보내는 데이트만큼이나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데이트를 선호한다. 예를 들어 함께 운동하거나 바쁠 때는 만나는 대신 줌을 켜 놓고 같이 공부하는 등 이른바 성장형 연애를 지향한다. 선호하는 이성상 역시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이다. 외모 관리를 넘어 서로에게 발전적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랑이 어려워진 두 번째 이유는 연애를 ‘잘’하고 싶어서다. 일례로 연애를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공부 대상에는 이성을 어떻게 대할지 행동이나 대화법뿐만 아니라 호감을 주는 패션이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인스타그램 계정을 전략적으로 꾸미는 법 등 이성에게 소구될 수 있는 모든 게 포함된다. 기사에서 한 대학생은 “연애가 학생부종합전형 같다”고 표현했다. 시험 점수만 잘 받으면 되는 게 아니라 봉사활동, 수행평가 등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듯 연애를 위해 관리할 것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본인의 수준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를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인터뷰에서 한 30대 초반 여성은 “고를 수 있는 조건에서 ‘최상급’을 만나고 싶다”고 표현했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요즘 사람들은 자기객관화에 철저하다. 본인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만큼 자신이 손해 보지 않는 최선의 상대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최상급일까? ‘육각형 인간’이 되기 위한 여러 조건이 있지만, 최근엔 성향과 취향이 잘 맞는지도 중요한 고려요소다. 최근 결혼정보업체에서는 프로필 정보에 MBTI를 포함했다. 소개받을 때 상대의 MBTI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져서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의 설문에 따르면 ‘이성을 만날 때 MBTI를 고려한다’고 답한 이는 24.7%였다(2022년 기준).

SNS에서 화제를 모았던 ‘MZ식 소개팅’ 영상에서는 처음 만난 남녀가 “인스타 뭐 뜨는지 공유할까요?”라는 장면이 나온다. 인스타그램에서 돋보기 탭을 누르면 평소 관심사에 맞춰 게시물이 추천된다. 이를 보고 취향이 같은지, 혹시라도 조심해야 할 사람이 아닌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2023년 틴더 보고서에 따르면 이상적인 연애 중 ‘취향 및 관심사가 비슷한 관계를 가장 선호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절반이 넘는 58.3%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처럼 기준이 까다로워지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연애하면 감정 소모가 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만큼 굳이 잘되지 않을 사람과 연애를 경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많이 만나 보라’는 조언은 옛말이고, SNS상에는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형의 구체적인 모습을 적은 ‘이상형 리스트’가 대세다. 자신만의 기준이 분명해야 이상형에 가까운 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랑이 어려워진 이유는 ‘낭만’보다 ‘현실’이 우선이 된 시대 환경에 있다. 20대 여성들과의 좌담회에서 “일과 연애 어떤 게 더 중요한가?” 물었더니 전원이 “일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까닭을 묻자 “돈이 없는데, 연애를 어떻게 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질적인 어려움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요즘 2030세대에게 연애는 곧 지출이자 비용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연애 상대를 고를 때 둘 중 하나가 혼자 사는지를 고려하기도 한다. 집 데이트를 할 수 있으면 외식 대신 집에서 밥을 해결할 수 있고, 영화관에 가는 대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청으로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에서다.

결혼 단계에선 경제적 부담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 한화손해보험에서 25~39세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결혼 의향이 있으나 결혼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남녀 모두 ‘경제적 여유 부족’을 가장 많이 꼽았다(남성 71.7%, 여성 63.2%).

이에 따라 실용적 성향이 강한 2030세대는 결혼문화도 바꾸고 있다. 결혼식 하루에만 차 한 대 값이 들어가는 만큼 결혼식을 생략하는 ‘노웨딩(no wedding)’을 선택하는 커플도 많아졌다. 경제미디어 ‘어피티’가 밀레니얼세대 124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절반을 넘는 63.6%로 나타났다. 대신 ‘결혼알림장’이 생겼다. 주변 사람들에게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다는 안내와 함께 앞으로 잘 살겠다는 다짐을 담아 결혼 사실을 공표하는 것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은 늘 존재해 왔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에서 ‘정답’과 ‘성공’을 찾고 이별은 ‘낭비’ ‘실패’로 여기는 생각이 사랑조차 어렵게 만든 게 아닐까? 다행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절반에도 못 미쳤던 2030세대 여성들의 결혼 의향이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단지 ‘의향’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마음 편히 연애하고 결혼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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