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와삶

그 시작에서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입력 2025. 06. 02   16:03
업데이트 2025. 06. 0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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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관 소령 해군잠수함사령부 목사
임명관 소령 해군잠수함사령부 목사



입대 후 처음 부임한 부대에서 평생 잊지 못할 새벽을 맞았었다. 자살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고, 그와 의무실에서 마주했다. 그의 마지막 눈빛엔 외로움과 깊은 고독이 담겨 있었다. 그의 옆에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히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외로움과 절망이 깊어질수록 삶의 출구는 사라지고,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여서다. 이를 ‘터널 시야’라고 한다. 자살은 더 이상 살아갈 방법이 보이지 않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심리학자 토머스 E. 조이너의 대인관계 자살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좌절된 소속감’과 ‘인지된 부담감’을 동시에 느낄 때 자살충동에 빠진다.

‘좌절된 소속감’은 주변과 관계가 완전히 끊긴 듯한 고립감을 의미하고, ‘인지된 부담감’은 자신이 타인에게 짐이 된다고 느끼는 자기비하의 감정이다. 두 감정이 겹칠 때 “내가 사라지는 게 모두에게 낫다”는 착각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을 막기 위해선 누군가의 개입이 절실하다. 삶의 이유를 함께 찾아주고, 곁을 지키는 이가 반드시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의 심리부검에 따르면 자살자의 96.6%가 생전에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죽고 싶다”는 말, 감정 기복, 갑작스러운 행동 변화, 업무 부적응, 소중한 물건을 정리하는 행동 등은 모두 절박한 구조 요청이다. 하지만 신호를 제대로 알아차린 경우는 단 23.8%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 신호를 일찍 알아차리고 적절히 반응한다면 자살은 충분히 예방될 수 있다. 우리는 전우의 행동 변화, 감정 기복, 과도한 침묵, “죽고 싶다”는 말처럼 보이는 신호에 민감해야 한다. 그 신호를 마주했을 때는 먼저 용기를 내 물어봐야 한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어?” 그다음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다. “그렇게 힘들었구나!” 이 공감의 한마디와 함께 왜 살아야 하는지를 찾아가는 대화는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행동이 된다. 이 과정에서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국방헬프콜 1308과 같은 24시간 운영되는 전문기관에 연결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자살예방 교관교육 중 권유받아 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는 셋째 아이를 잃고 삶을 포기할 만큼 무너졌던 애순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애순에게는 아이의 유품을 정리해 주는 시어머니, 어릴 적 엄마가 들려준 따뜻한 말,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녀는 그 기억과 돌봄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훗날 애순은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유채꽃이 혼자 피나? 꼭 떼로 피지. 혼자였으면 골백번 꺾였어.”

유채꽃은 늘 무리 지어 핀다. 바람에 쓰러져도 서로 기대 다시 일어난다. 우리도 그렇다. 벼랑 끝에 선 전우를 되돌려 세우는 힘은 오늘 당신이 보인 작은 관심, 경청과 공감의 자세에서 나온다.

성경엔 이런 말씀이 나온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우는 자의 곁에 있으려면, 그 눈물의 신호를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신호를 보내는 이가 없는지 숨겨진 외침을 듣기 위해 현장을 찾는다. 고통의 끝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가 아니라 그 시작에서 손을 내미는 이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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