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목소리는 남았지만, 이름은 지워졌던 가수들

입력 2025. 05. 30   15:43
업데이트 2025. 06. 0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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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언철 법무법인 대화 변호사
심언철 법무법인 대화 변호사



1970년대 초 미국 디트로이트의 싱어송라이터 식스토 로드리게스는 2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음악계를 떠났다. 미국에선 그의 음반이 단 6장만 팔릴 정도로 철저히 외면받았지만,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서는 혁명과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밥 딜런이나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인기 있었고, 수백만 장의 음반이 판매됐다고 한다.

‘서칭 포 슈가맨’은 전설 속 가수 로드리게스의 삶을 추적하는 두 남아공 팬의 여정을 기록한 영화다. 그들은 음반 수익의 행방을 추적하다가 미국의 음반 제작자를 만나 뜻밖의 진실을 듣게 된다. 로드리게스는 살아 있었고, 자신이 남아공에서 슈퍼스타라는 사실을 모른 채 건물 철거와 복구 같은 육체노동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영화는 그가 남아공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지만,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그는 왜 자신의 음악이 그렇게 큰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을 평생 알지 못했을까?” “만약 알았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질문은 한국의 또 다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서칭 포 슈가맨’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음악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에 소개된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사건이다.

“마음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1994년 발매된 마로니에 3집 수록곡 ‘칵테일 사랑’은 산뜻한 멜로디와 독특한 보컬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음반은 100만 장 넘게 팔려 그해 레코드 판매 1위를 기록했고, 방송 횟수도 1~2위를 다퉜다.

그러나 당시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의 이름은 음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음반 제작자는 ‘칵테일 사랑’이 예상 밖으로 큰 인기를 얻자 신윤미 등 원곡을 부른 객원가수들이 아닌 다른 가수를 급히 섭외해 ‘마로니에’라는 이름으로 방송에 출연시켰다. 노래는 ‘립싱크’를 하게 했다.

다만 로드리게스와 달리 신윤미는 적극적으로 법적 권리를 주장했다. 미국에 체류 중이던 원곡 가수 신윤미는 제작사에 자신이 ‘칵테일 사랑’의 가수임을 밝혀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자 소송에 나섰다. 그는 코러스 편곡자로도 참여했기에 실연자·편곡 저작권자로서 권리를 주장했고, 법정에서 노래를 불러 자신이 원곡 가수라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유명한 ‘칵테일 사랑’ 판결인데, 국내에서 가수의 성명표시권 등 저작인접권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판결문에는 이렇게 기재돼 있다.

“가수는 음악저작물을 음성으로 표현해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실제로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이름을 표시하는 게 음반업계의 관행이라고 할 것이다. 특히 대중가요에 있어서는 일반 대중이 어떤 노래를 그 가수의 이름과 함께 기억하는 게 현실이므로 피신청인이 위 세 곡이 수록된 음반을 출반할 경우에는 다른 약정이 없는 한 가수인 신청인의 성명을 표시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인 작사·작곡자 외에 음악을 실제로 노래하고 연주하는 가수와 연주자도 ‘실연자’로서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들에게 인정되는 권리를 저작인접권이라고 부르는데, 주요 내용은 성명표시권(저작권법 제66조), 동일성유지권(제67조), 복제·배포·대여·공연·방송·전송권(제68-74조), 보상청구권(제76조의 2) 등이다.

저작인접권은 실연자에게 단순한 ‘보조자’가 아니라 음악의 공동창작자로서 지위를 부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로드리게스와 신윤미는 “이 노래는 내가 불렀다”는 말을 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저작인접권은 그 한마디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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