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삶의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 있다. 우리 마음은 새로운 시작 앞에서 설렘으로 채워진다. 나 역시 새로운 직책을 맡으면서 하루하루가 도전이자 기대의 연속이지만, 문득 그리워지는 게 있다. 두 번의 중대장을 거치며 다듬어지고 성장했던 날들이다.
2024년 여름,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곳은 없는지 순찰을 나가려다 끝없이 내리는 빗줄기에 잠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스쳤다. 내 임무는 155마일(약 249㎞) 휴전선 서북단 GOP대대의 축선에서 완전작전을 완수하는 것인 만큼 그럴 수 없었다.
소초를 떠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전투복과 방탄복이 흠뻑 젖어 버렸다. 몇 걸음 더 내디디자 발목을 넘는 깊이의 물웅덩이가 나타났다. 우회한다면 시간이 지체될 게 분명했다. ‘푹!’ 소리가 났지만 주저 없이 발을 내디뎠다. 전투화가 젖는 축축하고 질퍽한 느낌과 함께 빗물이 이마를 타고 흘러 눈도 제대로 뜨기 어려웠지만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자유롭고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나아가야 할 목표가 있다는 확신이 불편한 감정을 사라지게 한 것이다.
중대장으로서 담당구역의 완전작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물론 있었다. 서부전선 최전방에서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이어지면서 유실 우려구간을 점검하고, 중대원들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경계작전을 펴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또한 병력 투입이 예정된 위험구간을 재평가하고, 구조적으로 취약한 경계초소는 조정한 결과 단 한 건의 피해 없이 완전작전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 여름날의 기억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알려 줬다.
2025년의 목표는 주어진 임무를 피하거나 우회하는 게 아니라 야성, 낭만, 의리 등 나를 이루는 가치를 잃지 않은 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그 길이 잠시 불편할지라도 결국 평안으로 이어질 것을 알고 있다. 고통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필연적인 시험이다. 그것을 두려워하지도 피하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그 과정을 즐기게 되고, 어느새 원하는 목표에 다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 줄 알기 때문이다.
중대장 직책을 수행하며 느낀 점이 있다. 도전과 위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책임감을 갖고 소통하는 자세로 임하는 게 진정한 군인이라는 것이다.
군 생활이 언제, 어디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조국이 허락하는 한 어떤 임무든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할 생각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간간이 찾아오는 위기에도 흔들림 없이 진정한 군인의 자세로 나 자신을 단단히 다듬어 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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