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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나와 열차 타고…‘자대’로 가는 날 두려움보다 설렘으로…노래 부릅니다!

입력 2025. 05. 19   16:46
업데이트 2025. 05. 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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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수송사, 자대 배치 신병 위한 버스킹

막 ‘이병’ 계급장 단 3400여 명 싣고, 신탄진역 출발한 열차
아이유 ‘너의 의미’ 공연 시작되자 떼창…힘찬 함성 넘쳐흘러
軍생활 첫 장, 웃음으로 장식…긴장 덜어낸 자리 응원과 위로

 

지난달 8일 입대해 막 이병 계급장을 단 신병들이 이달 15일 자대 이동열차에서 국군수송사령부가 마련한 '호송열차 안 버스킹' 공연을 즐기고 있다.
지난달 8일 입대해 막 이병 계급장을 단 신병들이 이달 15일 자대 이동열차에서 국군수송사령부가 마련한 '호송열차 안 버스킹' 공연을 즐기고 있다.



기차는 천천히 북상했다. 레일을 덜컹대며 지나갈 때마다 바닥에서 전해 오는 진동은 신병들의 떨리는 심장 소리를 대신하는 듯했다. 객차 안 신병들의 어깨 위엔 전투배낭과 함께 긴장감이 내려앉아 있었다.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공간 속에 노래가 울려 퍼졌다. 국군수송사령부(수송사)가 신병들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기 위해 마련한 작은 공연이다.
글=김해령/사진=양동욱 기자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대전시 대덕구 신탄진역은 분주해진다. 막 ‘이병’ 계급장을 단 신병들이 자대로 향하는 날이어서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이 역은 수많은 신병이 거치는 ‘자대 호송 허브(HUB)’ 역할을 한다.

비가 내리던 지난 15일에도 3400여 명의 신병이 자대로 이동했다. 이날 열차에 탑승한 신병들은 육군훈련소에서 5주간의 기초군사훈련과 병과 교육을 마치고, 전날 수료식에서 이병 계급장을 달았다. 군복이 아직은 어색하고 표정엔 걱정이 가득했지만, 짐칸에 ‘칼각’으로 정돈된 전투배낭은 그들이 이미 군인으로 탈바꿈했음을 보여 줬다.

습기를 머금은 흐릿한 창밖 풍경은 신병들의 초조함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이때 누군가 마이크를 들고 적막을 깼다. 문화예술법인 카스텔로716 소속 바리톤 장동일 씨였다. 장씨는 지난해 초부터 매주 목요일 수송사, 복지단체 2HM과 함께 ‘자대 호송열차 안 버스킹’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만난 신병은 약 10만 명에 이른다.

장씨는 열차 제일 앞 칸을 무대 삼아 낮은 음성으로 첫 소절을 뱉었다. 첫 곡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투우사의 노래’였다. 열차 칸 사이 임시로 설치된 스피커에서 오페라 선율이 흘러나오자 신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로 향했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씩 내려갔다. 노래가 절정에 이르자 장씨의 유도에 따라 신병들은 “올레!”라고 외치며 호응했다.

이어진 무대는 소프라노 장은수 씨가 맡았다. 그는 “이사 가는 날 비가 오면 잘 산다는 말처럼, 오늘 흐린 날씨가 여러분 앞날엔 맑음으로 바뀌길 바란다”며 “훈련받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인사를 전한 뒤 정환호의 가곡 ‘꽃피는 날’을 불렀다.

마지막 곡은 가수 아이유(IU)의 ‘너의 의미’였다. 장은수 씨는 대중적인 곡인 만큼 함께 부르자고 권유했다. 이내 신병들은 양손을 흔들며 하나 된 목소리로 ‘떼창’을 했다. 공연이 끝나자 열차 안은 박수로 가득 찼다. 공연 후에는 군 복무에 필요한 정보와 국군장병라운지(TMO) 이용법 등이 안내됐다. 소박한 간식과 커피도 제공됐다.

수송사는 지난해 신병 심리 안정과 정서적 적응을 지원하고자 민간 예술단체, 복지기관과 협력해 ‘자대 호송 문화지원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행정적 절차에 그치던 과거의 신병 수송체계를 탈피하고, 문화적 요소를 접목해 군 복무의 첫 관문을 부드럽게 넘게 하려는 시도다.


신병들이 신탄진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모습
신병들이 신탄진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모습

 

신병들에게 커피를 나눠 주는 복지단체 2HM 관계자.
신병들에게 커피를 나눠 주는 복지단체 2HM 관계자.



이날 열차 안에선 영상편지를 남기는 이벤트도 병행됐다. 경기 포천시 육군5포병여단에서 복무를 시작하는 강민석 이병은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를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전역까지 함께 기다려 줄 여자친구가 걱정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열차가 주요 역을 지날 때마다 신병들이 내렸다. 누군가는 강원도 전방 부대로, 누군가는 수도권이나 충청도 지역으로 향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연은 신병들에게 위안이 됐다. 강원 철원군 육군6보병사단 예하 부대로 향하는 윤준서 이병은 “마음이 복잡했는데, 공연을 듣는 동안 그런 걱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신병들은 이날 군 생활의 첫 페이지를 웃음으로 장식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열차는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창밖에 흐르던 빗방울은 여전히 유리창을 타고 미끄러졌다. 평범한 자대 호송열차에서 울려 퍼진 노래가 신병들의 긴장을 덮고, 응원과 위로가 됐다.

수송사는 앞으로도 신병들이 안전하게 자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박문수(육군중령) 수송사 철도과장은 “군 생활이 헛되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누군가는 신병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며 “이들이 군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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