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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전우조

입력 2025. 05. 19   14:37
업데이트 2025. 05. 1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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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주 준위 육군5보병사단 전차대대
강헌주 준위 육군5보병사단 전차대대



스무 살 청년이 된 뒤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논산훈련소의 문을 열었다. 그렇게 군 생활은 시작됐고, 자대 배치 후 제복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관을 가진 전사로 거듭났다. 

병 생활을 거쳐 부사관을 지원해 직업군인의 길을 걸으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졌을 무렵, 큰형 부부가 아름다운 한 여인을 소개해 줬다. 바로 지금의 아내다. 둘이라는 행복과 재미를 안겨 준 그녀와 결혼을 결심했고, 결실을 보게 됐다.

신혼 때는 다들 깨소금이 쏟아진다고 했던가? 안타깝게도 그 시간이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불과 일주일 만에 4주 이상 훈련을 가게 됐다.

아무도 모르는 외지에서, 그것도 신혼 초에 혼자 있어야 하는 아내가 마음에 걸렸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자주 있을 거야. 당신이 이해해 줘!”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런 내게 아내는 오히려 “여보, 걱정하지 마. 당신의 전우조는 나야. 항상 같이 있다는 것 알지?”라고 다정하게 답했다. 그 이후로 항상 아내의 말을 가슴에 품고, 어떤 힘든 순간이 와도 이겨 낼 수 있었다.

아내에게 가장 감사한 일은 첫째 아이의 출산 과정이다. 대부분의 아빠는 아내 옆에서 진통을 같이 느끼며 마지막 순간 함께 탯줄을 자름으로써 산모의 아픔과 출산의 기쁨을 나눈다고 하는데, 훈련 중이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산모도, 아이도 건강하다는 전화에 기쁨과 감격이 교차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내는 어느덧 세 아이의 엄마가 됐고, 지금까지도 묵묵히 곁을 지켜 주고 있다.

결혼 전 아내는 미용일을 하면서 이웃을 위해 자원봉사자로 활동했었다.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지만, 실력만큼은 녹슬지 않았다. 우리 가족을 위해 한 번도 쉰 적이 없어서다.

그때 마침 사단에서 이발병들을 교육할 담당자를 찾는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아내의 얼굴이 스쳤다. 아내도 정말 좋은 기회라며 도전장을 냈다. 그렇게 아내는 이발병 교육을 맡아 2박3일의 집체교육을 했다.

교육 마지막 날 아내는 “서툰 솜씨지만 부대에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하다. 여러분을 보며 과거 미용을 처음 시작하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언제든지 부르면 또 오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30년의 군 생활 동안 전우조가 돼 많은 어려움을 참고 헌신한 아내에게 늦었지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과 국토방위를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국가·국민·가족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우리 뒤에는 인생 전우조로서 보이지 않게 헌신하는 가족이 있다.

우리 모두의 가족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여보, 당신은 나의 인생 전우조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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