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K-pop 스타를 만나다

하나이자 스물넷…함께하기에 더 강해지는 소리

입력 2025. 05. 19   16:23
업데이트 2025. 05. 1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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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스타를 만나다
절대 죽지 않는 소녀들의 합창, 트리플에스가 꾸는 꿈

과열된 경쟁·잔혹한 현실 속에서 
청춘의 절규 대변해온 멤버 24명
연대 내세운 신곡 ‘깨어’로 컴백
12인조 ‘이달의 소녀’ 키운 뚝심 
특별한 소수보다 보편의 다수 지향
트리플에스만의 이야기 만들어 내

 

트리플에스. 사진=모드하우스
트리플에스. 사진=모드하우스



“살아 있어(Are You Alive)?” 소녀가 물속에 머리를 밀어 넣는다. 다른 소녀는 상처투성이 손으로 총을 만들어 관자놀이를 겨누고 있다. 이불 속의 소녀는 힘겹게 가쁜 숨을 몰아쉰다. 불안한 표정으로 무릎을 감싸 쥔 소녀, 어두운 반지하 저택의 창문을 올려다보는 소녀, 거대한 대교 아래 인적이 드문 그늘에서 위태로운 자세로 버티고 선 소녀가 있다. 

소녀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한강공원에서 무인 공공자전거를 타고 패스트푸드점에서 간식을 먹으며 소소한 시간을 만끽하는 익숙한 일상의 풍경이다. 동시에 그들은 언제든 사라질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가녀린 삶을 이어 나가는 것조차 벅차 숨을 몰아쉰다.

대한민국 서울의 소녀들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야 한다. 견고한 요새 같은 아파트 대단지 아래서 늦은 시간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주변을 돌며 춤을 춘다. 수십 명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힘껏 똑같은 노래를 똑같은 음정으로 합창한다. 지쳐 쓰러져 잠들 때까지 서로를 물 밖으로 끄집어내고 무장을 해제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어두운 청춘은 지독한 투쟁 끝에 희망의 민들레 씨앗을 통째로 집어삼키며 지독한 악몽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새로운 꿈을 꾼다.

‘트리플에스(tripleS)’는 독특한 팀이다. 24개월의 시간을 투자해 24명의 멤버를 모아 완전체로 활동하는 뚝심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K팝의 매력이 그룹 활동이라고 해도 24인조 그룹은 25인조 NCT를 제외하면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국내 걸그룹에서는 사례가 전무하다.

강렬한 형식은 실질을 담는 그릇이다. ‘소셜(Social)’ ‘소녀’ ‘서울’ 세 주제에 충실한 트리플에스는 다인원 구성으로 특별한 소수보다 보편의 다수를 지향한다. 하나이자 스물넷이란 그룹의 모토답게 개성 넘치는 멤버가 단체 그룹 활동에서는 거대한 유기체의 세포처럼 기능한다. 누구나 트리플에스가 될 수 있다고, 개인적 노력과 근면의 서사 대신 모두를 아우르는 격려와 공감으로 나아갈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초기 그룹의 일상을 가감 없이 공유했던 유튜브 콘텐츠와 현재까지 이어지는 팬 투표를 통한 타이틀곡 선정 과정에서의 동시성으로 증명된다.

트리플에스의 음악을 상징하는 ‘라라라’ 합창도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복잡한 화음 대신 모두 같은 음으로 노래하는 후렴부에서 그룹은 함께라는 공동의 의식을 고양한다. 그 배경은 지독하게도 서울이다. K팝에서 ‘K’를 떼어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등장하던 시기부터 트리플에스는 대한주택공사 시절 지어진 아파트 단지와 대중교통, 낡은 공간대여 지하실을 무대로 삼았다. K팝은 분명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에 기초한 판타지의 최면술은 강력했다. ‘라이징(Rising)’으로 일어난 그룹이 ‘걸스 네버 다이(Girls Never Die)’를 거쳐 불멸의 소녀들로 거듭나며 ‘깨어’로 세대를 고양할 수 있는 비결이다.

‘깨어’는 지난 12일 트리플에스가 발표한 2번째 정규앨범 ‘어셈블25(ASSEMBLE25)’의 타이틀곡이다. 상술한 대로 이 노래는 도발적이다. 민감한 주제를 피하고 복잡한 논쟁을 싫어하는 K팝에 가장 K팝다운 방식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완전체 트리플에스는 태어날 때부터 K팝을 듣고 자란 한국의 10대와 20대가 살아가는 오늘날 사회를 무대로 연극을 펼친다.

K팝은 그 자체로 희극이자 비극이다. 아이돌그룹으로 거듭나기 위한 고진감래의 감동과 작은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사라져 간 수많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는 비정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공존한다. 이 문제의 가장 명쾌한 해답은 개개인의 초인화다. 안정된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재능을 타고난 어린아이가 만인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를 활보하는 팝스타로 거듭나는 것이다.

트리플에스는 이 같은 과열된 경쟁 가운데 숨 막혀 죽어 가는 청춘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는다. 다양한 취미와 배경을 가진 소녀들이 피고 지는 잔혹한 현실을 가리지 않았던 ‘걸스 네버 다이’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묘사를 피하지 않는 ‘깨어’로 연대는 더욱 강하고 단단해진다. 전작이 공감과 지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합창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멜로디를 더욱 간결하게 다듬은 최근 곡은 참여와 도전을 독려한다는 점이 다르다.

트리플에스의 기획은 소속사 모드하우스 정병기 대표이사의 작품이다. 대한민국 A&R 1세대로 수많은 경력을 쌓아 온 그는 12인조 걸그룹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의 아쉬움을 트리플에스와 모드하우스의 다양한 프로젝트로 풀어내고 있다. 트리플에스가 반드시 24명이어야 했던 이유도, 그들이 모듈처럼 자유롭게 유닛을 결성해 활동할 수 있는 바탕도, 트리플에스가 다 함께 꾸는 꿈이 한국 대중에게 소외되지 않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능력도 정 대표이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회사 단위의 프로듀싱 대신 능력 있는 개별 기획자가 더욱 주목받는 오늘날 가요계에서 그는 강력한 뚝심으로 굳이 가도 되지 않는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완전체 트리플에스의 타이틀만 놓고 봤을 때 그의 꿈은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K팝의 아이러니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처럼 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획자가 추구하는 앨범 방향과 타이틀곡의 주제의식은 정규앨범에 수록된 과하게 밝은 노래들과 배치된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노래와 인간의 매력을 판매하는 목적에 충실한 노래의 대립이 이어지고, 일일이 세기 어려운 유닛 활동은 메시지를 혼잡하게 만든다. 최근 트리플에스가 타이틀곡으로 비춘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로 주목받았는지, 혹은 24인조 다인원 걸그룹의 왁자지껄한 버라이어티로 주목받았는지 선뜻 답하기 어렵다. 형식이 실질을 좌우한다지만, 형식이 실질을 압도해서는 곤란하다.

‘어셈블25’의 쇼케이스를 초대받아 가는 길에 앨범을 다 들었다. 지나치게 밝은 노래 가운데 ‘깨어’만이 어두웠다. 현장에서는 교복을 입은 24명의 소녀가 무대를 선보이며 컴백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선명한 명암 대비 가운데 마지막 노랫말이 맴돌았다. “내일 눈을 뜨면 모든 게 꿈에 닿기를. 꿈에서 깨면.”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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