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김준희의 클래식 읽기

음악적 유산, 오래도록 이어져온 ... 음악적 자산, 오래도록 이어나갈 위대한 계보

입력 2025. 05. 15   17:08
업데이트 2025. 05. 15   17:31
0 댓글

김준희의 마이클(마음으로 이어주는 클래식)
스승의 날에 떠올리는 베토벤·체르니·리스트 

작곡가 베토벤, 체르니, 리스트의 그림. 사진=클래시컬 뮤직 닷컴
작곡가 베토벤, 체르니, 리스트의 그림. 사진=클래시컬 뮤직 닷컴

 


음악의 세계에서는 유독 사제 관계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지식이나 기법을 전수하는 것 이상으로, 예술적 세계관과 정신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그 관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에 걸쳐 작곡가들이 사상과 미학을 계승하고, 때로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탈피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살펴보면 스승과 제자 사이에 형성된 유대감은 교육의 범주를 훨씬 넘어섭니다. 

음악사에서도 눈에 띄는 사제 관계가 있습니다. 바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카를 체르니(1791~1857), 프란츠 리스트(1811~1886)로 이어지는 계보입니다. 이 세 인물은 서로 다른 세대에 속하면서도 음악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으며, 각자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연대기적인 스승과 제자의 구도로만 설명되기보다 음악적 전통과 변화를 한 몸에 품은 유기적인 흐름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베토벤
베토벤


베토벤
형식 중심 시대에 개성 불어넣어
청력 잃은 상황서도 인간의 고통·고독
내면의 심오함 파고들어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재능에 버금가는 음악 신동으로 주목받았고, 훗날 빈에서 하이든을 사사했습니다. 고전주의 완성자답게 그의 작품은 하이든과 모차르트로 대표되는 형식적 균형감 위에 격정적인 감정과 개인의 의지를 얹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냈습니다. 고전주의 시대 형식을 완벽하게 계승하면서도 낭만주의적 주체성과 표현력의 확장 가능성을 남겨둔 것이죠.

베토벤이 음악사에 남긴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는 그가 인간의 내면, 특히 고통과 고독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입니다. 청력을 잃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침묵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심오한 세계로 다가갔습니다. 9개의 교향곡을 비롯해 피아노 소나타, 현악 사중주, 장엄미사 등의 작품은 음악의 구조적·철학적 깊이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베토벤은 많은 제자를 두지 않았는데, 체르니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뛰어난 연주력을 지닌 학생이었을 뿐만 아니라 베토벤의 음악적 사고를 이해하고 충실히 전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베토벤의 소나타와 협주곡을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베토벤은 체르니의 빠른 이해력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하고 신뢰했기 때문에 조카 카를의 피아노 지도를 맡겼고,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체르니
체르니


체르니
구조적·논리적 접근 추구
베토벤 작품 깊이 이해하고 충실히 전수하는 데 몰두

체르니는 베토벤 작품을 연주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고, 이를 분석하고 가르치는 데 몰두했습니다. 훗날 체르니는 교육에 주력했고, 오늘날 전 세계 피아노 입문자와 어느 정도 기술이 숙련된 학습자들이 접하는 연습곡들을 남겼습니다. 특히 ‘메커니즘 학습 작품 849(체르니 30번)’ ‘빠르기 학습 작품 299(체르니 40)’ 등은 기교를 연마하고 음악적 표현을 향상할 수 있는, 피아노 연주의 기반을 다지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체르니는 엄격하고 철저한 스승이었고, 동시에 자신이 베토벤에게서 배운 방식대로 철저하고 논리적인 접근을 추구했습니다. 제자들이 음악을 감정의 발산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경계했고, 구조적 분석과 악보 해석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체르니가 배출한 수많은 제자에게 깊은 영향을 줬고, 그중 가장 뛰어난 제자는 리스트였습니다.


리스트
리스트


리스트
체르니 기술 완벽한 연주로 승화
피아노 기술적 한계 넘나드는 탁월한 연주자로 성장

리스트는 아마추어 첼리스트인 아버지의 소개로 체르니에게 배우기 시작했고, 매우 짧은 시간 안에 피아노의 기술적 한계를 넘나드는 연주자가 됐습니다. 체르니는 리스트의 기교를 갈고닦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리스트는 기술뿐만 아니라 음악의 극적 표현과 청중과의 소통을 추구했고, 그의 연주는 그저 ‘잘 연주하는’ 것을 넘어 무대 위에서 하나의 사건과도 같았습니다.

리스트는 피아노 음악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곡가였습니다. ‘헝가리 광시곡’ ‘초절기교 연습곡’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 연습곡’ ‘순례의 해’와 같은 작품은 그의 독창성과 연주 기법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기술적 과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정, 특히 종교적 열정, 철학적 사유, 민족적 정체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연주·작곡과 더불어 리스트는 교육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그는 말년에 바이마르·로마·부다페스트에서 마스터클래스(공개레슨)를 열었고, 자신이 경험한 예술의 본질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리스트식 해석과 연주법은 20세기 피아노 음악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러한 영향력은 리스트 개인의 천재성과 더불어 그가 베토벤과 체르니로부터 전해 받은 전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계승한 데서 기인합니다. 이는 단절 없는 예술적 흐름의 대표적 예시로 꼽힙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사제 관계가 왜 중요한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예술가를 독립된 개인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적 창조는 이전 세대 유산과의 연결을 통해 이뤄집니다. 베토벤?체르니?리스트로 이어지는 관계는 예술이 어떻게 전해지고, 변화하며,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형식’을 중심이 된 시대에 ‘개성’을 불어넣었고, 체르니는 그 개성을 ‘기술’로 정제했으며, 리스트는 그것을 하나의 완성된 ‘무대 위의 연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예술이, 음악이 축적과 확장의 과정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리스트의 제자 중 한 명인 한스 폰 뷜로, 그와 관련된 클라라 슈만·브람스 등으로, 다시 20세기 초 연주자들·이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곧 현대음악 교육의 밑바탕이 됐습니다.

이러한 계보는 음악의 흐름을 관통하는 역사적·철학적 축으로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자체로 예술의 유산이며, 우리가 음악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역사와도 같습니다. 이 위대한 사제 관계는 오늘날에도 클래식 음악을 배우는 이들에게 ‘스승이란 어떤 존재인가’란 질문을 던지며, 삶의 태도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전하는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필자 김준희는 연주와 강연으로 ‘대중의 클래식화’를 꿈꾸는 피아니스트다. 저서로 『클래식 음악 수업』 『클래식, 경계를 넘어』가 있으며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필자 김준희는 연주와 강연으로 ‘대중의 클래식화’를 꿈꾸는 피아니스트다. 저서로 『클래식 음악 수업』 『클래식, 경계를 넘어』가 있으며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