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여행

불의 도시, 화산 여전히 살아 있는… 꽃의 도시, 즐거움 활짝 피어나는…

입력 2025. 05. 15   16:35
업데이트 2025. 05. 15   16:46
0 댓글

화산 도시 과테말라 안티과 

예쁘지만 가난에 찌든 모습 대신
맛집·쇼핑·액티비티로 새 단장
클래식한 옛 매력은 그대로
걷고 걸어도 질리지 않는 그곳

 

과테말라는 중미에서 가장 북쪽에 있다. 위로는 멕시코, 아래로는 온두라스·엘살바도르와 접해 있다. 과테말라는 우리나라보다 약간 더 크고, 대부분 열대기후다. 하지만 중요 도시는 고지대에 있어 쾌적하고 온화하다. 날씨만 보면 이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마야문명의 중심지였고, 마야문명을 대표하는 유적 티칼은 피라미드 꼭대기만 뾰족뾰족 밀림을 뚫고 솟아 있다. 안티과의 커피는 고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산미로 유명하다. 자, 이제 과테말라에 관해 대략적인 예습을 했으니 안티과로 떠나 보자. 과테말라에서도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도시는 단연 안티과로, 중미의 보석으로 불린다. 화산의 땅, 불의 땅으로도 부른다. 봄이면 보랏빛 자카란다나무가 거리를 물들이고, 부겐빌레아의 분홍꽃도 만발해 꽃의 도시라고도 한다. 모든 여행자에게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안티과를 탐험해 보도록 하자.

안티과는 클래식 혹은 고전이란 뜻이다.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젊고 화려해진 안티과는 누구라도 동공이 확장되는 도시다.
안티과는 클래식 혹은 고전이란 뜻이다.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젊고 화려해진 안티과는 누구라도 동공이 확장되는 도시다.


멕시코·과테말라 국경은 도떼기시장

멕시코에서 과테말라로 넘어가는 육로 국경은 시장과 사람들로 붐비는 그야말로 도떼기시장. 이런 곳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과테말라와 멕시코는 국력 차가 크게 난다. 과테말라로 넘어왔더니 버스가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는 하루에 한 대 정도, 대부분은 치킨버스란 걸 이용한다. 치킨버스는 미국의 스쿨버스를 개조한 과테말라의 대표적인 운송수단이다. 2인석으로 보이는 자리엔 3명도 좋고, 4명도 좋다. 현지인들은 짐이 유독 많은데, 살아 있는 닭도 엄연한 승객이다. 닭이 타니까 치킨버스인 건가?

승객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버스 안은 숨 쉴 틈 없이 빼곡해지고, 버스 안이나 닭장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닭장 안의 닭 신세가 완전히 이해되는 치킨버스에서 비명을 삼켜 가며 손잡이를 꼭 붙든다. 무사히 도착하는 게 불가능한 꿈처럼 아득해진다. 스피커에서 찢어져라 흘러나오는 라틴음악에 귀가 다 멍멍하다. 무섭고, 시끄럽고, 엉덩이가 아픈 이 치킨버스가 과테말라에선 아주 자랑스러운 관광상품이다. 사서 고생하라. 왜 재미없어? 사람 괴롭히는 게 취미인 관광상품, 과테말라의 치킨버스다.


과테말라 인기 1위, 안티과

안티과는 과테말라시티에서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식민도시다. 화산의 도시, 불의 도시로도 불리는데 인근에 활화산인 푸에고 화산이 자리하고 있다. 도시 인구는 약 4만6000명이며,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연중 온화한 기후와 비교적 안정된 치안으로 외국인 여행자뿐만 아니라 현지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 도시를 찾는다.

1543년 과테말라왕국의 수도로 지정됐는데, 당시 과테말라는 오늘날 멕시코 남부부터 코스타리카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지역이었다. 가톨릭교회의 중남미 선교활동 본거지였으며, 그런 이유로 많은 수도원과 성당이 지어졌다.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도 당시 지어진 아름다운 교회와 수도원 건물들 덕이다. 게다가 중미 최초로 대학(산카를로스대)이 설립된 도시이자 문화, 예술, 철학 등이 번성한 도시였다. 유럽식 교육과 문화가 전파되는 중요한 거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1773년 대지진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면서 수도가 지금의 과테말라시티로 옮겨졌다. 2층 이상 건물이 없는 나지막한 집들이 가지런히 배치돼 있고, 바닥은 온통 자갈밭이다. 과테말라 영산 아구아산이 마을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비롭다. 각각의 주택은 ‘ㅁ’자 구조의 정원이 특징인데, 아름답게 꾸며져 카페나 호텔 로비로 활용된다.

 

 

꽃으로 장식된 구시가지 거리.
꽃으로 장식된 구시가지 거리.


20년의 세월, 새롭게 다가오는 풍경 

안티과는 2005년 방문하고 20년 만이다. 익숙한 장면은 그래서 반갑고, 달라진 모습은 신선하고 흥미롭다. 내가 기억하는 안티과는 예쁘긴 하지만, 가난에 찌든 모습도 더러 섞여 있었다. 이젠 신분 상승한 귀족처럼 우아하고 귀티가 난다. 1박에 150케찰, 약 2만7000원 숙소에 묵었는데 도미토리가 2만7000원이면 과테말라 물가로는 꽤 비싼 가격이다. 침대마다 설치된 미니 선풍기, 누구나 쓸 수 있는 올리브유(보통은 콩기름도 감지덕지인데 말이다), 요리할 때 사용하라고 갖춰진 수십 가지 양념통과 향신료, 게다가 직접 빵을 만들어 먹으라고 제빵기까지 있다.

100개가 넘는 호스텔에서 자 봤지만 이렇게 완벽한 호스텔(바바라스 부티크 호스텔)은 또 처음이었다. 아일랜드형 수납장을 도미토리 가운데 설치해 귀중품이나 짐을 보관하게 한 것도 손뼉 쳐 주고 싶은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비싼 숙소인데, 수건 한 장을 주지 않는 건 야박하게 느껴졌다. 수건 빌리는 가격만 20케찰(3700원)에 보증금은 60케찰(1만 원). 수건 하나에 1만4000원이란 거금을 쓰라는 소리다.

보증금이야 수건을 반납할 때 돌려받는다고 쳐도 당장 목돈이 나가는 건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샤워 후엔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미국·독일·프랑스 등에서 온 여행자 그 누구도 수건을 빌리지 않는 걸 보면, 액수가 나만 충격적인 건 아닌 듯했다. 그럼에도 완벽한 청결, 인테리어 잡지에서 갓 나온 듯한 주방과 정원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안티과에 다시 온다면 이 숙소 역시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십자가 언덕에서 본 푸에고 화산.
십자가 언덕에서 본 푸에고 화산.


십자가 언덕, 넋 놓고 보게 되는 풍경

안티과에서 가장 인기 많은 투어는 화산 트레킹이다. 하룻밤을 보내며 캠핑하고, 푸에고 화산의 분화를 눈앞에서 감상하는 프로그램이다. 안티과는 커피가 또 유명하다. 고지대에서 자란 안티과 커피를 수확·가공하는 과정을 보고, 직접 맛을 체험하는 것도 인기다. 식민지 시대 건축물을 하나씩 돌아보거나 카푸친수녀원, 식민미술박물관 등에서 스페인 통치시기의 생활상을 엿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바닥이 온통 울퉁불퉁 자갈밭인데, 버기카를 타고 골목골목 안티과를 누비는 것 역시 특별한 경험이 된다. 시내에서 30분 정도만 걸으면 십자가 언덕을 오를 수 있다. 말 그대로 십자가가 있는 언덕이다. 십자가가 엄청 거대하거나 특별한 건 아니지만, 언덕에 오르면 안티과 마을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30분을 투자해 보는 풍경 중엔 전 세계 1등이라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

별다른 노력 없이 큰 상을 받은 것 같아 이게 진짜 가성비 여행이지, 괜히 흐뭇해지는 곳이다. 화려하고 높은 빌딩들이 서로 경쟁하는 대도시와 비교하면 참 단순하고 욕심 없는 건물뿐이다. 그런 건물들이 자신만의 존재감을 뿜으며 일렬로 배치된 안티과는 전 세계 여행자를 매혹시킨다. 더 높고, 더 화려해야만 한다. 그런 강박감이 대도시들을 비슷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더 높지 않아도, 더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내게도 주는 교훈 같아 괜히 뭉클해진다.


안티과 거리 풍경.
안티과 거리 풍경.

 

덩굴과 벽화가 인상적인 스타벅스.
덩굴과 벽화가 인상적인 스타벅스.


동공 확장, 질리지 않는 산책의 즐거움

아름다움은 뭘까? 나이 서른에 본 풍경을 쉰에 보니 왜 이리 다르게 느껴질까?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움이 이제는 보인다. 인기가 많아지면 물가도 비싸진다.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들에게 안티과는 그래서 좀 서운한 도시가 됐다. 아름다움엔 비용을 지불하는 게 마땅하다.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안티과를 걸었다.

이곳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도 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태국 방콕에서, 한국 부산에서 저마다 최고라고 주장하는 스타벅스를 봤다. 안티과의 스타벅스는 벽을 가득 채운 덩굴과 마야문명의 특징을 잘 살린 벽화가 인상적이었다. 완벽한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해 다소 경건하기까지 했다. 박물관과 성당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관광 포인트’일 때가 있었다. 지금은 맛집, 쇼핑, 카페, 액티비티 등이 그 지분을 나누고 있다.

달라진 여행자를 위해 여행지도 적극적으로 변신을 꾀하고, 같은 여행지도 한 해 한 해 다른 모습으로 새 단장을 한다. 나는 늙는데, 여행지는 되레 젊어지는 서글픔도 느끼곤 한다. 안티과는 클래식 혹은 고전이란 뜻이다. 옛날의 향취는 고스란히 간직한 채 젊고 화려해진 안티과는 누구라도 동공이 확장되는 어엿한 도시다. 나도 안티과에 섞여 거저 아름다워지는 듯한 착각을 즐기며 걷고 또 걸었다. 같은 곳을 걷고 또 걸어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 그런 도시, 안티과였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