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하는 단어, 바로 ‘국방의 의무’다. 하지만 내게는 조금 먼 이야기였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6학년 때 국제학교에 진학하고, 미국 시민권과 대학 생활을 목표로 준비했다. 그렇게 훗날 미국 생활이 자연스럽게 여겨졌고, 오랜 노력 끝에 시민권을 취득했다.
하지만 21세가 된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은 군대였다. 미국에서 계속 일할 생각이었고, 병역이행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가 빨간명찰이 부착된 군복을 입고 있는 사진을 봤다. 사진 뒤에는 “군인이 있기에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기에 미래가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사진 한 장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시민권을 택하면 군 복무는 피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이 옳은 것인지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미국에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나를 키워준 이 땅에 대한 책임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조들이 없었다면 내가 존재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짓밟히던 땅 위에서 이름도, 얼굴도 남기지 않은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독립을 외쳤다. 폐허 속에서도 총을 들고 끝까지 버티며 싸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없었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이 자유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
나는 그 역사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의 희생이 만든 땅 위에서 숨 쉬고, 자라고, 꿈을 꿨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이 말렸다. 하지만 나는 해병대를 선택했다. 선조들의 희생에 대한 감사, 그 덕분에 살아가는 나의 의무를 외면할 수 없었다.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가 계신 덕분에 나 또한 1년6개월이라는 시간을 감사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두렵고 외로운 길이지만 진심이 담긴 선택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해병대의 일원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 지금 내 가슴에는 빨간명찰이 부착돼 있다. 이는 소속을 나타내는 표식이 아니다. 이 나라를 지켜온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헌신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나는 그들이 지킨 나라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오늘, 나도 지키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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