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 그때 저는 한 학급의 담임이었습니다. 아이들 틈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늘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듬직한 아이였고, 또래보다 책임감이 강한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제자가 지금 육군중령으로 서울 강북구의 지역방위를 책임지는 강북대대장이 돼 돌아왔습니다. 더 놀라운 건, 저 역시 강북구의 수송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2024년 겨울, 전투복을 입고 학교로 찾아온 그는 큰절을 올렸습니다. “선생님, 저 일남이입니다.” 순간, 지금까지 가르쳤던 아이 하나하나의 이름과 얼굴이 떠오르며 그동안 교사로 살아온 시간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자가 멋진 군인이 돼 제 앞에 선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찼습니다. 이제는 내가 살고,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 강북구를 지켜주는 사람이 바로 제자라니, 이보다 더 든든하고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요? 김일남 중령은 학창 시절 책임감이 강하고 친구들을 도우며,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아이가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길을 걸어, 이제는 지역방위 최전선에서 강북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으니 더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요즘 학교는 예전보다 훨씬 복잡한 환경 속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교사들은 그만큼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한 사람의 교사로서 늘 마음에 품는 것이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기대입니다. 그 기대가 결실을 보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오늘 같은 날이겠죠. 강북의 산과 들, 골목 하나하나, 그리고 수송초등학교 교정 너머 하늘까지 그 모든 일상이 지켜지는 건 강북대대장과 같은 장병들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투복을 입고 외출·외박을 나온 장병들을 보거나 강북구 어딘가에서 훈련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러면서도 벌써 불혹(不惑)이 넘은 제자가 다치지 않고 훈련을 마쳤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늘 학생의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는 선생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스승의 날은 교사에게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제게는 제자를 통해 이 직업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대대장을 비롯한 우리 소중한 국군 장병들이 지켜주는 일상을 만끽하며, 저는 오늘도 학교로 향합니다. 언젠가 또 다른 김일남을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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