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Fe)은 생명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죽음의 도구가 돼 온, 인류 문명과 가장 깊은 연을 맺은 금속이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우리 몸속에서 매 순간 산소를 나르는 일을 하며 생명의 엔진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금속은 전쟁터에선 칼날과 탄환이 돼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갔다. 이른바 인류 문명사의 양극단을 관통해 온 존재가 바로 철이다.
철의 생물학적 여정은 약 20억 년 전 ‘대산화사건(Great Oxidation Event)’ 이후 시작됐다. 대기 중 산소가 급증하면서 생물들은 철 이온을 활용해 산소를 운반하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켰다. 척추동물의 혈액 속 헤모글로빈은 철 이온을 중심으로 산소 분자와 결합해 온몸에 산소를 공급한다. 산소를 실은 적혈구는 폐에서 세포로, 다시 이산화탄소를 싣고 폐로 돌아오기를 쉼 없이 반복한다. 이 생명 유지의 순환 중심에는 철이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토록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금속이 인간의 손에 의해 가장 파괴적인 도구의 재료로 변모해 왔다는 점이다. 기원전 1200년경, 히타이트 문명에서 시작된 철기시대는 인류 문명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청동보다 단단하고 풍부하게 매장돼 있던 철은 이전 시대의 무기들을 순식간에 구식으로 만들었다. 값싸고 강력한 철제 무기로 무장한 군대는 주변 부족과 도시국가들을 손쉽게 정복하며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아시리아, 페르시아와 광활한 로마제국 역시 철의 힘을 빌려 역사의 무대에 웅장한 발자취를 남겼다.
중세시대 접어들면서 철은 더욱 정교한 형태로 발전했다. 제철기술의 진보는 견고한 강철을 탄생시켰다. 이는 곧 기사들의 갑옷과 날카로운 장검, 튼튼한 투구로 이어졌다. 기사들은 철갑옷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전장을 누볐으며, 그들의 손에 들린 강철 검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화약의 등장은 철의 역할을 더욱 증폭시켰다. 단단한 철은 강력한 폭발력을 견디는 대포와 총기의 주재료가 됐고, 이는 전쟁 양상을 완전히 뒤바꾸는 혁명적 변화를 불렀다. 이제 개인의 용맹함은 철로 만들어진 화력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산업혁명은 철의 역사를 또 한 번 격변시켰다. 철강 대량생산체제가 구축되면서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대한 전쟁 기계들이 쏟아져 나왔다. 강철로 만들어진 전함은 바다를 지배했고, 기관총과 야포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쇳조각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갔다.
이처럼 철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전쟁의 중심에 늘 존재하며, 시대마다 변신을 거듭하면서 인류 문명사의 큰 전환점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인간의 혈액에 흐르는 철 이온은 아이러니하게 변함없이 산소를 운반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철은 인간의 선택에 따라 생명을 지키는 손이 되기도 하고, 파괴의 힘이 되기도 한다. 철의 연대기는 인류 문명사의 축소판과 유사하다. 앞으로도 철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며 우리의 선택에 따라 때로는 생명을 꽃피우는 도구로, 때로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서 철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인간의 선택에 따른 역사를 써 내려갈 뿐이다.
국가 지도자를 뽑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철의 이중주는 인간의 선택에는 언제나 무거운 책임이 따름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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