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취업 내 일(Job) 출근합니다

‘야전의 열기’를 ‘예술의 온기’로 바꾸다...공병장교의 ‘늦은 시작’ 아닌 ‘값진 도전’

입력 2025. 05. 12   16:40
업데이트 2025. 05. 1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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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공동연재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기 - ‘내 일(Job) 출근합니다’ 
19. 한정연 예비역 육군대위

군 생활서 전공 녹여내며 체득한 판단력·문제해결 능력
아파트 관리기사로 전기·누수 관리 등 실무 경험도 쌓아
건축시설 관리 업무 새롭지만 ‘딱 맞는 옷’ 입은 듯 익숙
나이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일 있다면 지금 도전하길

9년 6개월, 군에서 공병장교로 묵묵히 현장을 지켜 온 한정연 예비역 육군대위. 한씨는 전역 후 또 다른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예술의 온기가 흐르는 곳, 대구예술발전소다. 시민과 예술가를 잇는 ‘건축시설 관리자’로,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간을 책임지는 그의 이야기는 후배들에게 ‘늦은 시작’이 아닌 ‘의미 있는 전환’으로 다가온다. 정리=임채무 기자/자료=국가보훈부 제공

대구예술발전소 내 시설을 확인 중인 한정연 씨.
대구예술발전소 내 시설을 확인 중인 한정연 씨.



문화예술공간을 지키는 조용한 일꾼

대구시 중구 수창동. 한때 담배공장이던 붉은 벽돌 건물은 이제 전시와 공연, 창작의 열기로 가득하다. 연간 7만 명 이상이 찾는 대구예술발전소에서 한씨는 건물의 뼈대를 지키며 예술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는 올해 2월 17일부터 이곳에 출근했다. 처음엔 ‘이 일이 나에게 맞을까’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이제는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익숙해졌다.

“처음엔 예술공간이라는 낯선 환경이 부담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군에서 쌓은 경험이 이곳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은 이 공간이 제게 주어진 새로운 사명처럼 느껴집니다.”

국가보훈부 제대군인지원센터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찾던 그는 지방 공공기관 정규직 채용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도전했다. 면접장에 들어선 순간 ‘지금껏 버텨 온 나를 믿어 보자’는 마음으로 군에서 갈고닦은 경험과 기술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그의 진심은 면접관의 마음을 움직였고, 마침내 대구예술발전소 시설관리자로 합격의 기쁨을 안았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그동안의 고민과 불안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설?어요.”


땀으로 쌓은 군 시절, 그리고 전역

2009년 계명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한씨는 학군사관후보생(ROTC)으로 임관해 육군8보병사단 공병대대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야전에서 다리를 놓고 지뢰를 설치하며, 전공을 실전 속에 녹여 냈다. 이어 73보병사단, 국방시설본부 강원시설단까지 다양한 부대를 거치며 군이라는 거친 땅에 묵묵히 뿌리를 내렸다.

“군 생활은 힘들었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현장 일이 재미있었고,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데 자신 있었죠. 무엇보다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며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장기복무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몇 차례 탈락의 쓴맛을 봤고, 결국 전역을 결심했다.

“특별히 두드러진 점이 없는 저로선 실적 싸움에서 밀렸던 것 같아요. 전역 후의 삶도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군에서 배운 것들이 언젠가 다른 곳에서 빛을 발할 거라고 믿었죠.”



한정연(예비역 육군대위) 씨는 9년 6개월간 군 복무를 한 뒤 현재는 '건축시설 관리자'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왼쪽 사진은 대구 예술발전소 내 시설을 확인 중인 한정연씨.
한정연(예비역 육군대위) 씨는 9년 6개월간 군 복무를 한 뒤 현재는 '건축시설 관리자'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왼쪽 사진은 대구 예술발전소 내 시설을 확인 중인 한정연씨.



전역 후 방황과 도전 사이에서

전역 후의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군무원 시험 준비로 학원 문을 두드렸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5년 이상 복무한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에게 최대 150만 원까지 지원하는 직업능력개발교육비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시험의 벽은 높았고, 다시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시험에 여러 번 도전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어요.”

어린 시절 책을 읽고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한씨는 ‘3D 모델링’에 끌렸다. 오랜만에 맛본 공부의 재미는 그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대구에서 왕복 6시간을 들여 서울의 유명 학원에 다니며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 갔지만, 현실은 또 한 번 장벽이 됐다. 업체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 있었고, 병환 중이던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 없었다.

“대구에 남아야 했기에 기회가 적었죠.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해 본 그 경험이 지금을 더 소중하게 만들었어요. 가능성을 시험해 본 값진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그는 아파트 관리기사로 9개월을 보내며 전기작업, 누수 보수, 안전점검 등 실무를 익힐 수 있었다.

한씨는 “이때의 경험이 지금 중요하게 쓰일지 몰랐다”고 설명했다.


도전이 삶의 힘으로

출근하면 1층 전시장 조명부터 옥상정원까지 건물 구석구석을 살핀다. 작은 고장은 직접 손보고, 큰 공사는 시공업체와 협력하며 꼼꼼히 기록한다. ‘보이지 않는 완벽함’이 그의 일이고 책임이다.

“군에서 공사 감독을 하며 다진 판단력과 관리 능력이 지금도 큰 힘이 돼요. 위기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군에서 체득한 가장 큰 자산입니다.”

그에게 공간을 ‘안전하게’ ‘제대로’ 지키는 일은 자부심이 됐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설관리·전기기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다. 더 안전하고, 더 제대로 일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끝으로 한씨는 후배 제대군인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했다. “나이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 도전하세요. 도전이 삶의 힘이 됩니다. 진심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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