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미국·중국·러시아의 삼각관계

입력 2025. 05. 08   17:04
업데이트 2025. 05. 0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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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국제정치학 박사
박승준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국제정치학 박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 러시아를 방문한다. 시 주석은 9일 러시아 붉은광장에서 열리는 승전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10년 전인 2015년 러시아 승전 70주년 기념일에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러시아가 말하는 ‘승전(勝戰)’이란 1945년 나치 독일이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제2차 세계대전 항복협상을 제의한 날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에선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이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일어났다. 아시아의 경우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이끄는 6척의 항모전단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일요일 새벽에 기습 공격함으로써 시작됐다.

나치 독일은 1944년 6월 6일 미국·영국을 주축으로 하는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상륙에 성공함으로써 패망의 길을 걸었다. 일본은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자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히로히토 일왕이 항복을 선언했고, 9월 2일 일본 도쿄만에 정박한 미 전함 미주리 함상에서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이 일왕을 대신해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군부가 주도하는 일본과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주축이 돼 도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러시아·중국은 한편이 돼 독일·이탈리아·일본이 주축이 된 파시스트 국가들과 싸웠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체제가 강화되고, 중국에서도 공산당이 전쟁 직후인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소련·중국이 중심이 된 사회주의 국가와 미국·영국·프랑스가 중심이 된 자유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국가, 두 진영으로 나뉜 동서 냉전체제가 구축됐다.

미국·러시아·중국 3개국이 한쪽 중심이던 냉전체제는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과 화해함으로써 미국·중국이 한편이 돼 소련과 대치하는 형세를 만들었다. 이때 닉슨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구사한 전략이 중국 전통의 전략인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 중국이라는 적대국을 활용해 소련이라는 더 큰 적대국을 공략하는 전략이었다.

미국이 중국을 한편으로 해 소련을 공격하던 이이제이 전략은 마오쩌둥 다음의 중국공산당 지도자 덩샤오핑 시대와 장쩌민·후진타오 두 총서기 시대에는 잘 유지됐다.

그러나 2012년 시진핑이 총서기가 돼 중국공산당을 장악하고,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이 돼 러시아 연방을 장악한 이후엔 중국·러시아가 한편이 되고, 미국이 다른 한편이 된 형세가 됐다.

올 1월 미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접근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새로운 이이제이 전략을 구사해 보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말싸움을 벌인 이유도 러시아를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전술이었다.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이제이 구상은 7일 시 주석이 러시아 승전 기념식에 참석해 붉은광장에서 푸틴과 우의를 과시함으로써 어려움에 빠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의 러시아와 시진핑의 중국 두 나라를 모두 적으로 하는 국제형세를 헤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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