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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 다시 빛날 기억들] 이번에 내리실 곳은 ‘독립의 길’입니다…내리실 분은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세요

입력 2025. 05. 06   12:18
업데이트 2025. 05. 0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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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 다시 빛날 기억들
독립운동 핫플이 궁금해?! ② 서울 종로·인사동

조선 민중의 민의 대변하던 공간
김상옥 의거 터(종로경찰서 터)
권총 두 자루로 일경 1000명과 맞서

서울 종로·인사동 일대는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와 학생들은 이곳에서 일제 지배에 맞서 독립을 선언했고, 자주독립을 향한 민중의 열망은 곧 전국 방방곡곡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독립운동 핫플(Hot Place)이 궁금해?!’ 두 번째 순서로 종로·인사동을 소개한다. 글=이원준/사진=한재호 기자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 앞을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삼일문은 3·1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탑골공원의 상징적인 출입문이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 앞을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삼일문은 3·1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탑골공원의 상징적인 출입문이다.

 


탑골공원…3·1독립만세운동 점화된 역사적 장소

종로3가역 1번 출구로 나와 금은방 거리를 걷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탑골공원. 어르신들 모임터로 친숙한 탑골공원은 사실 3·1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역사적 장소다. 1919년 3월 1일 수천 명의 학생이 이곳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학생대표가 공원 한가운데 있는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학생들은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공원을 나서 시가행진에 돌입했다. 3·1운동은 이렇게 탑골공원에서 점화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공원 안에는 민족대표 손병희 선생의 동상과 3·1운동 기념 부조가 있다. 탑골공원 정문은 삼일문, 왼쪽 도로는 삼일대로다.



태화관 터(3·1독립선언광장)…민족대표들, 독립선언서 서명·선언식

태화관은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장소다. 민족대표들은 선언식을 마친 뒤 한용운 선생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3·1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태화관 터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할 무렵 이윤용·이완용 형제가 번갈아 차지해 살면서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선 곳이기도 하다. 3·1운동 이후 감리교회에서 구입해 태화여자관으로 사용했고, 현재는 태화빌딩이 들어서 있다. 빌딩 주변으론 3·1독립선언광장이 조성돼 106년 전 그날의 숨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보신각…종로 운집해 보신각종 치며 “독립만세”

보신각은 서울지역 3·1독립만세운동의 중심지였다. 1919년 3월 1일 종로에 운집한 군중은 보신각종을 치며 독립만세를 외쳤고, 학생단 주도로 제2차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3월 5일에도 이곳에서 독립연설회가 열렸다. 보신각은 같은 해 4월 23일 임시정부(한성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시위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3·1독립선언서 배포지·천도교 중앙대교당…독립선언서 보관한 보성사 사장 집터

인사동 문화의 거리를 걷다 보면 3·1운동 당시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운반해 각처로 배포한 역사적 장소를 만날 수 있다. 보성사 사장 이종일의 집터가 그곳이다. 이종일은 1919년 2월 27일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 약 2만 장을 비밀리에 자신의 집으로 운반해 보관했고, 다음 날 천도교·기독교·불교 측에 배포함으로써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발판을 놓았다.

인접한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1921년 2월 준공한 건물로, 종교집회뿐 아니라 조선물산장려회 강연회를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 집회가 열린 공간이다.



중앙YMCA회관 터…조선 민중의 민의 대변하던 공간


중앙YMCA회관은 3·1운동 당시 학생단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신간회 창립대회를 비롯한 각종 민족운동 집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YMCA회관은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민중의 민의를 대변하는 공간으로 각광받았다. 3층짜리 양옥 건물이던 중앙YMCA회관은 1950년 6·25전쟁 때 불타 파손됐다. 현재 이 자리에는 서울YMCA회관 건물이 있다.




김상옥 의거 터(종로경찰서 터)…권총 두 자루로 일경 1000명과 맞서

종각역 3번 출구 앞은 1915년부터 1929년까지 종로경찰서가 입주해 있던 장소다. 의열단원 김상옥 의사는 1923년 1월 12일 오후 8시경 이곳에 폭탄을 던지며 민족의 독립의지를 천명했다. 이후 경찰을 피해 열흘간 은신하던 중 발각되자 권총 두 자루를 들고 일제 경찰 1000여 명과 맞서 싸웠다. 교전 중 탄환이 다하자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자결했다. 김상옥 의사 순국 후 국내외에서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이 전개됐다.




파조교 6·10독립만세 선창지…순종 국장 행렬 통과할 때 격문 배포

단성사 앞 파조교는 1926년 6월 10일 벌어진 6·10독립만세 시작을 알린 장소다. 오전 8시30분경 순종의 국장 행렬이 통과할 때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 30~40명은 이곳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격문 1000여 장을 배포했다.

학생들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드니 부근에 모여 있던 군중도 이에 동조해 만세를 외쳤다. 당시 만세시위로 현장에서 검거된 학생·청년은 전국적으로 1000명에 이르렀다.

개천이 복개되고 도로가 확장되면서 과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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