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가진 이라면 희망이라는 개념이 익숙하게 들릴 듯하다. 이들 대부분이 ‘희망의 수호자’로 여겨지지만, 신앙인만이 희망을 품으며 살아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희망이라는 건 보편적이며 넓은 의미의 신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어린 시절 신앙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당시엔 무신론자였다. 어머니는 불가지론, 즉 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유사한 신념적 체계에 잠시 빠졌지만 꾸준히 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더 나은 내일과 더 좋은 결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라는 희망을 품으며 살았다.
현재의 삶에서도 여전히 변치 않는 희망을 품고 있다. 더 나은 내일, 더 큰 성과,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더 나은 기회를 잡고자 하는 희망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달라졌을까? 군목으로서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신앙의 진영’에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무신론자였을 때나 신앙인이 된 지금이나 희망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희망하는 바를 충족하기 위해 어떤 목적과 대상을 바라봐야 하는지가 달라졌을 뿐이다.
과거에는 바라는 바를 실현해 줄 대상으로 인문학적 체계를 더 신뢰했다. 학교 선생님과 정치인, 아니면 기회라는 요소에 더 가치를 두는 편이었다. 진리의 충실함에 무게중심이 기울었고, 그 결과 청소년 시기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상처받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내가 어떻게 신앙인으로 돌아서게 됐는지 궁금할 터. 또 바라던 소망이 모두 실현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앙으로 인해 상처받기도 했기에 아직 결론짓기는 이른 듯하다.
다니던 교회와 교인들에게 실망한 적도 있다. 솔직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편모 슬하에 궁핍하게 자라 노숙자 생활까지 경험했다. 한 번은 주정부가 나와 누이를 위탁가정으로 보냈다. 이후 10대에 다시 노숙자가 됐지만, 이번엔 주법원이 법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성인임을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주정부 시설에 우리를 맡겼다.
18세가 되던 해, 하나님을 믿으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 더 나은 환경과 기회를 바라는 희망을 품게 됐지만 여전히 빈곤 속에서 고통받았다. 오로지 희망에 기대 살았고, 그 희망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자꾸만 멀어져만 갔다. 손끝에 닿는 듯하다가도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
“소망이 이뤄지지 않으면 마음이 병든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로 실현되지 않는 덧없는 희망에 매달리다가 우울증에 걸렸던 경험이 있어 이 말에 누구보다 공감한다. 희망이란 결코 보장된 게 아니며, 신앙인만이 독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누구나 고통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희망이 멀어지는 것도 똑같이 체험한다.
희망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이 칼럼에서 다 설명하긴 어렵다. 희망은 오로지 일련의 과정을 거쳐 실현되기 때문이다. 다만 군목이나 타 군종 장교들이 여러분이 가야 할 방향을 이끌어 주는 전문가임은 단언할 수 있다.
이 밖에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만약 스스로 희망이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친구를 찾는 것이다. 그런 친구가 없다고 해도 조력자가 돼 줄 군종 장교를 꼭 찾길 바란다.
번역: 김오성 통역관·51전투비행단 군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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