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천지개벽 ‘멕시코시티’를 가다
지저분·치안불안 도시 ‘옛말’
구시가지 헌법광장·대성당
엄청난 규모 차풀테펙공원
놀랍다…대단하다…거대하다…
인파숲 속 보물 찾기 ~ing
멕시코가 어디게? 바로 답이 나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미국 아래라고 대답하는 이가 3분의 1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멕시코는 북미일까, 중미일까? 북미는 미국·캐나다가 있는 대륙이니 당연히 아닐 테고, 막연히 중미라고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다. 틀렸다. 멕시코는 지리상으로 엄연히 북미다. 단지 쓰는 언어가 스페인어이고, 남쪽 국경을 마주한 과테말라·벨리즈가 중미여서 그렇게 인식하는 것뿐이다. 멕시코는 모두가 알지만,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또 볼에 바람만 잔뜩 넣고 딴청을 피우게 된다. 멕시코 음식 타코나 축구 정도를 떠올리는 게 다가 아닐까? 멕시코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크고 다채로우며 매력적인 곳이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역시 마찬가지다. 20년 만에 방문한 멕시코시티는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위험하고 지저분한 과거의 멕시코는 온데간데없고, 화려하고 쾌적한 멕시코시티가 손님을 맞이했다. 그야말로 천지개벽, 새롭고 근사해진 멕시코시티로 함께 떠나 보자.
그리운 멕시코, 반가운 멕시코시티
4개월간 남미에서 여행 인솔자로 돈을 벌었다. 여행자들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게 주 업무였다. 좋은 추억도 많았지만, 상당히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4개월간의 고된 일이 끝나고 나니 내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원래 같은 여행지를 내 돈 주고 다시 가는 법이 별로 없는데, 멕시코는 늘 생각나고 그리웠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인솔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멕시코행 비행기를 탔다. 저비용항공을 여러 번 갈아타고 20시간 만에 드디어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좋은 호텔에서 묵었다면, 이제부터는 다시 배낭여행자 모드로 돌아가야 한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얘기다.
다행히 공항에서 예약한 호텔까지 지하철이 연결돼 있어 택시를 탈 필요는 없었다. 멕시코의 지하철은 카드를 구매해 충전하는 방식이다. 카드가 15페소(약 1000원), 한 번 탈 때마다 요금은 5페소(약 360원)다. 목적지가 가깝든 멀든 요금은 같다. 저렴한 요금에 안도한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처럼 깨끗하고 편리하진 않다. 에스컬레이터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낑낑대며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내려야 했다.
게다가 지하철 창문이 여기저기 열려 있다. 그 창문으로 지하철의 먼지들이 눅눅한 바람과 함께 마구마구 들이쳤다. 승객이야 잠시 탄다 치고, 운행하는 기관사들은 매일 이 공기를 마시며 사는 건가. 20년 전 멕시코시티에서 물갈이를 심하게 했다. 그 시작이 지하철이었는데, 어쩌면 이 나쁜 공기가 이유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시간마다 화장실로 달려가는 최악의 배탈 설사였다. 새벽에 변기에서 엉엉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배탈, 이놈아! 잠이라도 좀 재우면서 괴롭혀야지’ 이러면서 변기에서 서럽게 울었더랬다. 그땐 멕시코시티가 그렇게 지겹고 싫더니 그런 곳을 또 찾게 된다. 사람 인연 모르는 것처럼, 여행 인연도 모르는 거다. 멕시코시티는 요물이다. 요물!
호수 위에 지어진 도시
소칼로광장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멕시코시티의 구시가지다. 후기가 좋기도 했고, 여행자가 많이 묵는 곳이라 덜 외로울 것 같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거대한 소칼로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고대 아즈텍 제국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이 지금의 멕시코시티가 됐다.
호수 위에 지어진 이 도시는 정교한 수로와 피라미드로 가득했던 찬란한 문명의 중심지였다. 1521년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곳을 무너뜨리고, 식민지 시대 건축물들로 도시를 재구성했다. 숙소가 있는 구시가지는 아즈텍 유적과 스페인풍 건축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 됐다. 메인 광장인 소칼로는 과거 아즈텍의 신전이 있던 자리로, 지금은 ‘헌법광장’으로 불린다.
광장 한편엔 웅장한 ‘멕시코 대성당’, 다른 편엔 아즈텍의 유적인 ‘템플로 마요르’가 나란히 서 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구시가지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도떼기시장이다. 우리네 남대문시장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여행자의 컨디션도 첫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피곤한 상태에서 어마어마한 인파와 마주하는 건 상당한 고역이다. 게다가 숙소도 파티장 성격이 강해 저녁에 소음이 심했다. 음악 소리와 사람들 수다에 머리가 지끈지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국군 장병 여러분은 이런 곳에서 꼭 세계인과 어울리길 바란다. 나도 20대 때는 열심히 어울렸다. 여행의 가장 큰 재미는 친구를 사귀는 거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나라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눈이 하트로 변하는 외국인을 여럿 만나게 될 것이다. 인기 많은 숙소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언어 교환, 영화 같이 보기, 무료 시티투어 등을 하면서 급격히 친해져 보자. 평생 남는 추억이 될 것이다.
‘놀랍다, 대단하다, 거대하다’ 차풀테펙공원
멕시코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만1000달러로, 한국의 3만5000달러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숫자로만 본다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가난하다. 두 번째 숙소는 차풀테펙공원 근처였는데, 이 공원은 멕시코시티 부촌에 위치해 있다. 차풀테펙은 나우아틀어(고대 아즈텍 문명의 언어)로 ‘메뚜기의 언덕’이란 뜻이다. 실제로 과거에 이곳에 많은 메뚜기가 서식했다고 한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여기가 미국인가, 멕시코인가’ 도통 헷갈리는 시간이었다. 어디서나 영어가 들리고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과 값비싼 카페, 식당 등이 즐비했다.
차풀테펙공원은 중세 왕의 정원처럼 당당하고 기품이 넘쳤다. 차풀테펙공원 규모를 챗GPT에 물어봤더니 놀랍게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딱 2배 크기였다. 누군가가 뉴욕 센트럴파크와 차풀테펙공원을 동시에 보여 줬다면, 과연 어디가 더 아름답다고 했을까? 두 공원의 조경이 전혀 달라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지만, 아마도 차풀테펙공원의 손을 들어 주지 않았을까 싶다.
공원 내부에는 차풀테펙성, 국립인류학박물관, 동물원, 보트가 떠다니는 호수 등 다양한 시설이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고대 아즈텍 시대부터 왕족의 휴식처였던 이곳은 역사·문화적 유산이 자연공간과 함께 공존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면서도 시민들의 산책, 피크닉, 문화활동이 동시에 이뤄지는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멕시코시티는 치안이 안 좋다는 소문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차풀테펙공원 주변은 마치 유리온실처럼 안전해 보였다. 개를 끌고 나온 이가 유난히 많았는데, 어쩌면 저 개가 도둑·강도를 막는 호신용인 건 아닐까? 멕시코인은 개를 사랑하는 걸까, 개가 필요했던 걸까?
멕시코와 미국, 얽히고설킨 애증의 관계
19세기 중반 미국-멕시코 전쟁(1846~1848) 이후 멕시코는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유타, 네바다, 콜로라도 일부 등 현재 미 서남부의 광대한 영토를 미국에 빼앗겼다. 이 지역은 현재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5% 이상을 차지하며, 라틴계 인구가 밀집된 다문화 중심지로 성장했다. 미국의 25% GDP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냐면, 현재 유럽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즉 멕시코가 잃은 땅은 단순한 국토가 아니라 현대 미국의 경제·문화적 심장부의 노른자를 의미한다.
재밌는 건 미국에선 어디서나 스페인어가 들린다는 거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이민자들이 폭증하면서 영어권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멕시코엔 미국인이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디에서나 미국 여행자와 은퇴자들을 볼 수 있다. 미국인에게 멕시코는 꿈의 휴가지이고, 저렴한 은퇴지이며, 흥미로운 여행지다. 멕시코 이민 2세대·3세대에겐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서로의 영토를 탐했으나 그게 과연 무슨 의미였나 싶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죽임을 당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던 걸까?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건 무엇일까? 100년, 200년이 흐르면 결국 무승부가 되는 건 아닐까? 지금의 미국은 최소 10분의 1, 영향력까지 따지면 그 이상을 멕시코인이 다시 차지했다. 역사는 돌고 도는 쳇바퀴다. 전쟁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파괴적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 파괴적인 전쟁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자주국방이 절대적 전제조건임도 잊어선 안 되겠다.
꿈을 걸어 볼 만한 기회의 보물섬
멕시코시티에 일주일 머물면서 숙소를 3번 바꿨는데, 두 번째 숙소는 처음보다 더 별로였다. 큰 소리로 유튜브 라이브방송을 하는 미국인, 욕을 하면서 게임을 하는 또 다른 미국인 등이 장기체류하면서 분위기를 흐려 놨다. 밤엔 또 모기가 어찌나 물어대던지 긁다 보니 아침이었다. 결국 숙소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시내에 있는 캡슐호텔에서 묵었는데, 완전 신세계였다. 모기도 없지, 시끄러운 사람도 없지, 우주여행을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여기 캡슐호텔이었다. 평소 창문이 없으면 절대 잠을 못 자는 폐소공포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만약 폐소공포증으로 괴로운 이가 있다면 모기가 종일 물어뜯는 곳에서 하룻밤만 자 보라고 권하고 싶다. 모기가 들어오는 창문 자체가 없는 방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캡슐호텔이 있는 숙소는 우리로 치면 서울 여의도 분위기가 나는 빌딩가였는데, 그곳에서 인생 타코를 먹었다. 타코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동그란 토르티야에 이것저것 얹어 멕시코 특유의 매콤한 소스(살사)를 얹어 먹는 요리다. 멕시코에서 먹어야 제맛인 이유는 재료를 눈앞에서 볶거나 튀기기 때문이다. 뜨끈한 요리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인생 타코를 먹었던 곳은 양배추샐러드를 양껏 가져다 먹을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양배추샐러드가 신의 한 수였다. 2개만 먹어도 배가 터질 정도로 배가 불렀다. 다른 나라에서 사업해 보고 싶은 사람은 멕시코시티도 한 번 와 봤으면 한다.
다른 중남미 국가와 비교해 안정적이면서 비싼 식당들도 손님으로 북적였다. 만약 이곳에 한식당을 연다면 우리나라에서 1만 원에 파는 김치찌개를 2만 원에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다. 인건비는 훨씬 저렴하니 멕시코시티, 아니 멕시코라는 나라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다. 물론 장사나 사업도 진심을 파는 거니 멕시코인의 행복을 위해 음식이나 물건을 만들고, 팔았으면 한다.
여행은 단순히 노는 행위가 아니다. 그곳의 사람, 분위기를 관찰하며 자신의 꿈을 키우는 시간이다. 한국은 너무나도 좋은 나라지만, 굳이 한국에서만 평생 살 필요는 없다. 가끔 여행지로 오면 한국은 더 재밌고 신나는 세상이다. 지구 어디에서든 살 준비를 하자. 그러면 지구는 우리에게 놀이터가 돼 주고, 현금인출기가 돼 줄 것이다. 멕시코시티는 그중에서도 더 재미난 놀이터고, 반짝이는 보물섬임은 두말하면 입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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