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스테이지 - 연극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작가 소설 원작 뮤직드라마
노숙자에서 편의점 야간 알바까지
사연 많은 ‘독고’와 의도치 않은 동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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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청파동까지, 노숙자에서 편의점 야간 알바까지.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는 그렇게 삶의 경계를 넘어왔다. 김호연 작가의 밀리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직드라마 ‘불편한 편의점’은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 혹은 평범하지 못한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꺼내놓는다. 연극과 뮤지컬 사이 어딘가, 이야기와 노래가 함께 흘러가는 장르 ‘뮤직드라마’는 탄탄한 원작을 품고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친절해라, 모두 힘들게 싸우며 살아간다.”
무대는 실제 편의점을 옮겨 놓은 듯 소소하다. 봉지라면, 컵라면, 샌드위치, 삼각김밥, 그리고 잠시 후 등장하는 새우깡에 소주까지. 일상의 소품들이 관객에게 묘한 친근감을 선사한다.
이 작품의 장점은 원작을 읽지 않아도 이해에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연출과 대본이 치밀하게 짜였고,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인물의 서사를 성실히 쌓아간다. 독고(윤토왕 분), 편의점 사장 염영숙(고혜미 분), 작가 정인경(이민지 분), 이 세 인물의 연기는 특히 반짝반짝 빛났다. 이들은 결코 과장되지 않은 우리네 일상의 언어로 조곤조곤 인생이 녹아든 대사를 객석에 전했다.
원작에서 가져온 명대사가 유난히 많다.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니다” “행복은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는 길 자체가 행복이다” 등. 등장인물들에게는 공평하게 각각 하나씩의 넘버가 주어졌다. 50대 생계형 알바생 오선숙, 취준생 시현, 절필을 각오하고 마지막 희곡을 쓰고 있는 극작가 정인경, 매일 밤 ‘참참참 세트(참깨라면·참치김밥·참이슬)’로 혼술하는 회사원 경만. 이들은 독고를 중심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고, 넘버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끌어올린다.
가사는 때로 지나치게 설명적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 작품은 뮤지컬이 아니라 뮤직드라마라는 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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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역시 독고다. 과거에 실력 좋은 의사였던 그는 수술 중 소년이 사망하는 의료사고 이후 가족의 이탈, 실직, 알코올 의존, 기억 상실을 겪으며 서울역 노숙자가 됐다. 그는 청파동 올웨이즈 편의점(대학로 올웨이즈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에서 야간 알바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몸과 마음의 회복을 시작한다. 그 회복의 여정에 의도치 않은 동반자들이 하나둘씩 생겨난다. 편의점 포스기 사용법을 알려준 시현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하고, 혼술의 경만에게는 옥수수수염차를 건넨다.
작가 인경은 독고를 주인공으로 한 대본을 완성하고, 선숙은 독고를 통해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경만은 두 딸이 기다리는 가정으로 돌아간다. 독고 역시 상실된 기억을 되찾고, 코로나가 극심한 대구로 의료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떠난다. 쿨하게 끝나는 이 엔딩이야말로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결말일 것이다.
인경 역을 맡은 배우 이민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극 중에서도 언급되지만 이 작고, 물건도 별로 없는 ‘불편한 편의점’을 왜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일까.
“다른 편의점에는 없는 독고가 있으니까요. 독고의 어눌하고 투박한 친절이 처음엔 낯설고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올웨이즈 편의점을 찾게 되는 거죠. 투박함 속에서 느껴지는 진심이 요즘 사람들에겐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람이 끝나고 돌아가는 관객들이 꼭 마음에 담아갔으면 하는 게 있을까요?”
“독고는 노숙인이었지만 편의점에서 일하며 점차 삶을 되찾고, 주변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어가죠. 관객들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든 현재와 미래는 바뀔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는 작은 관심과 배려, 위로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민지는 “중요한 건 아저씨(독고)가 저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거예요. 글쓰기를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저씨 덕분에 힘이 났거든요”라는 인경의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독고가 필요한 관객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대사가 또 다른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작품은 대학로 입문작으로도 손색이 없다. 특별히 볼 작품을 정하지 않고 대학로를 방문했다면 고민하지 말고 이거 보자. 100분 러닝타임이라 공연 끝나고 맥주 한잔 곁들일 시간도 딱 좋다. 다만 관객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 ‘불편한 편의점’이 선사하는 따뜻한 위로는 더 많은 이에게 닿아야 하니까.
우리 주변에도 ‘올웨이즈 편의점’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의 불편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그러나 내일은 삶이 조금만 더 친절해지길 바라는 사람들 말이다. ‘불편한 편의점’이 그들에게 전하는 위로는 작지만 확실하다. 그리고 친절하다.
마지막 여담 하나. 공연장 안에 화장실이 있는 구조는 처음 보았다. 처음엔 무대 세트인가 했는데 “공연 5분 전 화장실은 마감”이라는 직원의 안내를 듣고서야 진짜라는 걸 알았다. 뭔가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타이틀에 썩 어울리는 설정이다. 너무 ‘편리’해서 어쩐지 ‘불편’할 것도 같은 공연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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