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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18년 만에 우리 군이 휴전선 방어 전담

입력 2025. 04. 17   15:20
업데이트 2025. 04. 1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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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in 국방일보 - 1971년 3월 13일 자

 

일명 ‘휴전선’으로 일컫는 군사분계선은 남북 대치의 상징과 같은 곳입니다. 1년 365일 군 장병들의 철통같은 경계가 이뤄지는 전선입니다. 긴장감 속 경계초소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철책을 점검하는 장병들의 사진은 이곳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소개되곤 합니다. 

모든 ‘휴전선 방어’를 처음부터 우리 군이 전담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생각하기 힘들지만 1953년 정전협정 후 약 18년간 서부전선은 주한미군이 담당했습니다. 우리 군이 모든 전선을 전담하게 된 것은 1971년 이후부터입니다.

국방일보의 전신인 전우신문 1971년 3월 13일 자는 이와 관련한 중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국군, 전담방위 배치 완료’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기사는 단 5개의 문장으로 구성됐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기사엔 당시 복잡했던 정세와 우리 군의 자주국방 의지 등 결코 작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기사는 “휴전선 155마일 전선을 우리 국군이 전담, 배치를 완료하고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고 시작합니다. 이어 “미군이 담당하고 있는 서부전선 ○○㎞에 한국군이 배치 완료됨으로써 미군과의 완전 임무 교대를 하게 됐다. 이로써 한국군은 휴전선 전방지역 전체에 대한 지역방어 책임과 대간첩 작전지휘권을 전담하게 됐다”고 기술합니다.

더불어 “휴전선을 전담하게 된 한국군은 기동 위주로 편성돼 휴전선 주변 진지를 보강하는 한편 야간 매복 강화, 장애물 증설 등 미군과 교대한 지역에는 어느 때보다 강화됐다”며 “이로써 우리는 휴전 후 18년 만에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라고 마무리합니다.

주한미군은 1953년 10월 1일 체결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우리나라에 주둔하게 됐습니다. 당시 육군 7개 사단, 해병대 1개 사단 등 약 32만 명의 병력이 주둔하며 우리 군의 전력 증강과 교육훈련 등을 지원했습니다. 아울러 서부전선을 직접 방어하며 한반도에서의 전쟁 억지력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1969년 7월 미국의 제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이른바 ‘닉슨주의’에 따른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군 발표와 이의 후속조치로 1971년부터 서부전선도 우리 군이 전담하게 됩니다. ?

이 같은 상황은 우리 군에 적지 않은 부담이었지만, ?전방 경계의 주한미군 공백을 빈틈없이 메웠습니다. 기동방어에서 고수방어(방어지역 상실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적의 공격을 저지·격멸하기 위한 방어작전 개념)로 작전을 전환하고 각종 진지와 장애물을 보강하는 등 경계태세를 한층 강화했습니다. 더불어 실질적 전력 증강을 위한 ‘율곡사업’을 추진, 방위산업 육성과 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며 자주국방의 초석을 닦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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