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4월은 잔인한 달?

입력 2025. 04. 15   17:32
업데이트 2025. 04. 1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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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이영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엘리엇이 시 ‘황무지’서 노래한
가장 잔인한 달 4월은
함께할 수 없는 따뜻한 것을 향한
미련과 절망의 표현

 


계절이나 달(月)의 비유 표현 중 유독 4월에 부정적 언사가 많다. ‘잔인한 달’ ‘변덕스러운 달’ 등 상투적인 폄하에 더해 최근엔 ‘미세먼지의 계절’ ‘황사의 달’ ‘산불의 달’ 등 구체적인 기상현상과 재해를 끌어들인 표현도 등장한다. 일부 서양어에서 ‘4월 날씨’가 변덕스러운 날씨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쓰이는 것을 보면 기상 변화가 심한 계절적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는 이런 계절적 요인에 더해 이 무렵 유난히 불행한 사건이 많았던 역사적 특수성도 반영된 듯하다. 4·3사건, 4·19혁명, 심지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기억도 ‘잔인한 달’이라는 상투어의 배경이 된다.

4월의 단골 수식어 ‘잔인한 달’의 원전은 미국 출신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다. 1922년에 발표한 이 시에서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황폐한 정신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알뿌리로 작은 생명을 키워 주었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는 반전 표현 이전만 보면 4월은 마냥 라일락과 추억·욕망이 되살아나는 재생의 계절이다. 그럼에도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역설을 시가 내놓는 건 지금 살아나는 라일락과 추억·욕망이 진정한 생동이나 부활이 아니라 겨울 눈 덮인 대지 속에서의 애틋한 연명보다 못한 공허한 몸짓으로 여겨져서다.

황무지의 황폐한 시공 속에서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뭔가 시작하기를 요구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 그러므로 ‘4월은 잔인한 달’은 지금 함께할 수 없는 따뜻한 것들을 향한 미련과 절망의 표현이다.

4월은 또 진나라 문공(文公)과 개자추(介子推)의 전설이 담긴 ‘한식(寒食)’의 달이다. 춘추시대 진나라의 왕자 문공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전국을 유랑하는 불우한 시절을 보낼 때 신하 개자추는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구워 먹이는 등 갖은 희생을 다해 그를 보필했다.

그러나 문공은 왕이 된 뒤 그런 개자추를 돌보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후 자기 잘못을 깨닫고 그를 불렀으나 마음이 돌아선 개자추는 은둔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문공이 산에 불을 질러 그를 내려오게 하려 했지만, 그는 어머니와 함께 불타 죽으면서까지 마음을 열지 않았다.

문공은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고자 그가 죽은 날 하루만은 불을 피우지 말도록 했고, 이후 사람들은 이날만은 찬밥을 먹었다. 한식날 풍습의 유래인데, 과오를 되돌아보며 쉬 나서지 못한 문공의 회한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이 모든 절망과 회한에도 4월은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만물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부활과 재생의 계절이다. ‘잔인한 4월’도 ‘한식의 4월’도 라일락과 추억·욕망이 살아나고, 호의호식의 영광을 누리는 생동하는 봄의 반면 그늘일 뿐이다.

이 봄에는 부디 격동의 정치, 혼란스러운 경제를 이겨 내는 4월 본연의 생동감 있는 부활 재생의 기운이 넘치면 좋겠다.

‘잔인한 4월’ ‘한식 4월’을 넘어 진짜 ‘따뜻한 4월’ ‘온반(溫飯)의 4월’을 제대로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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