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흔들리는 대서양 동맹과 유럽의 ‘자체 핵우산’ 논쟁

입력 2025. 04. 11   15:25
업데이트 2025. 04. 1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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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유럽 방위 의지가 흔들리면서 유럽에선 ‘자체 핵우산’이 핫한 논제로 떠올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의 핵 군사력으로 유럽을 지키는 핵우산을 만들자고 하면서 때아닌(?) 핵 논의가 불붙고 있는 것.

결론부터 말하면 ‘자체 핵우산’ 논쟁은 혼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혼란은 다른 지역에서도 벌어질 수 있어 왠지 ‘남의 일’ 같지 않다.

우선 프랑스와 영국의 핵 군사력이 유럽의 핵우산이 되기엔 미약하다. 양국은 각각 290여 개 및 230여 개의 핵탄두를 보유 중이다. 프랑스는 대부분의 핵무기를 4척의 르트리옹팡급 전략원자력잠수함으로 운용한다. 항모 함재기 및 지상 주둔 항공기를 플랫폼으로 하는 공대지 핵무기는 일부다.

영국은 미국제 트라이던트2 미사일을 탑재한 노후한 뱅가드급 전략원자력잠수함 4척을 운용하며, 통상 한 척만이 경계임무에 임한다. 5000기 이상씩을 보유한 미·러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유럽연합(EU) 정상회의 합의대로 8000억 유로(약 1200조 원)의 국방비를 추가로 마련하더라도 신속한 핵 증강은 쉽지 않다. 안보 민감도와 이해관계가 다른 30여 개국이 핵무기의 소유권, 운용방식, 핵 독트린, 발사 절차 등에 합의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

1950년대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은 파리를 위해 뉴욕을 희생시킬 수 있는가?”라면서 독자 핵무장에 착수했지만, 유럽의 비핵국들은 이제 프랑스에 “우리를 위해 파리를 희생시킬 수 있는가?”를 물을 것이다.

프랑스의 핵을 유럽을 위해 사용한다는 발상에 대한 프랑스 내부 반발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토의 핵기획그룹(NPG)에 가입하면서 ‘나토를 위한 핵 군사력’을 유지해 온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NPG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핵 운용에 관한 한 독자성을 고수해 왔다. 당연히 비핵국들은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 핵우산에 신뢰감을 갖기 어렵다.

이런 불신을 해소하려면 영국·프랑스는 비핵국들과의 핵 공유체제, 핵무기의 순환 배치, ‘핵·재래식 통합(CNI) 체제’ 등으로 ‘공동운명체’임을 증명해야 한다. 논의가 이 방향으로 흐를수록 프랑스의 핵 억지력은 프랑스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국민 정서와 충돌하며,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핵우산 논쟁을 촉발한 미국 입장도 복잡하다. 유럽이 스스로의 힘으로 안보를 지키겠다는 것에는 미소를 짓지만, 유럽에서 핵무장을 하겠다는 나라가 많아지는 건 미국이 수십 년간 고수해 온 반확산정책과 상충한다.

그래서 다수의 미국 전문가는 “핵은 증강하지 말고 재래 군사력을 키우라”라는 중간적인 주장을 한다. 미국 내에는 동맹국의 핵무장은 ‘우호적인 핵 확산(friendly proliferation)’이므로 찬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아직은 소수의견일 뿐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미국의 2022년도 핵태세검토서(NPR)는 핵무기의 임무를 ‘미국, 동맹국과 파트너에 대한 핵 공격 억제’로 규정하고 있다. 또 유럽 5개국에는 100여 기의 미국 공대지 핵폭탄 B-61이 배치돼 있다. 결국 유럽은 단시일 내 미국의 핵 보호막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고, 미국도 하루아침에 대서양 동맹을 버릴 순 없을 것이다.

프랑스산 핵우산에 선뜻 동의하지 않으면서 미국산 핵우산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영국의 생각이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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