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그대로 계속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만약 그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그 과정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 실린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평온한 삶 속에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혹은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 문구를 떠올리면 위로가 됩니다. 천재 화가 반 고흐조차 그림을 그리는 일이 쉽지 않은 날이 있었다는데, 우리 또한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이따금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막혔던 문제가 딱 풀리는 순간을 맞는 것처럼 말입니다.
『행복의 문을 여는 이야기』라는 책에서는 ‘초일심’과 ‘최후심’을 갖고 살아갈 것을 권합니다. ‘초일심(初日心)’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처음의 마음입니다. 누구나 처음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설렘과 감격 속에서 열정을 다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몇 달, 몇 년이 지나면서 우리의 마음에도 권태와 요령, 게으름과 실망이 자리 잡습니다. 처음의 가벼웠던 마음가짐은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우리는 처음의 그 마음, 초일심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초일심을 잃으면 감동이 사라지고, 감동이 사라지면 삶의 의미마저 흐릿해집니다. 나아가 생명을 향한 감동조차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살면서 정말 맑은 눈을 본 적이 있나요? 어린아이들만큼 빛나는 눈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마트나 놀이동산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보석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의 눈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빛을 잃어 가곤 합니다.
세상에 싫증 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익숙해지면 흥미를 잃고, 나아가 그것이 소중하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도, 좋아하는 취미나 게임을 향한 열정도 시간이 지나면 식기 마련인데 하물며 일이야 오죽할까요.
모든 일은 기본적으로 힘들고 고됩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 즉 괴로움의 바다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고통 그 자체가 사람을 괴롭히는 악이 아니라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고통은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성장합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나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존재합니다. 그 아이는 상처를 입었지만, 아무도 알아차리거나 보듬어 주지 않아 마음속 깊이 숨어 버립니다. 상처 입은 그 시간에 멈춘 채 발달조차 멈춰 버립니다. 더 이상 자라지 못한 채 네버랜드로 날아가 버린 피터팬처럼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에 나오는 오스카처럼 성장을 멈춰 버린 채 어린아이의 시선과 두려움, 공상을 간직한 채 말이죠.
우리 인생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배우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의 한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나 지금 집으로 돌아간다 /고달픈 하루, 일과를 접고 /무거운 팔과 다리 데리고 집으로 간다 /집에 가면 낯익은 얼굴 주름진 얼굴 /나를 반겨주겠지 /편안한 불빛 속으로 나 돌아간다 /안녕 안녕, 오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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