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부라보콘과 크보빵 그리고 애도

입력 2025. 04. 04   16:42
업데이트 2025. 04. 0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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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민 서울신문 문화체육부장
홍지민 서울신문 문화체육부장


프로야구 출범 당시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야구 흉내를 낸답시고 ‘짬뽕’을 하며 좁은 골목길을 뛰어다녔다. 방망이도 없어 맨주먹으로 고무공을 쳐 날렸다. 글러브도 없이 맨손으로 공을 잡고 던졌다. 찜뿌, 찌푸, 찜뽕 등 지역 따라 이름도 달랐다는데 그때는 알 길이 없었다. 여하튼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짬뽕이라고 불렀다.

나름 서울 사람이라 당연히 MBC 청룡 팬을 자처했다. 어린이 회원은 아니었다. 당시 돈으로 연간 몇천 원을 줘야 가입할 수 있었다. 회원이 된 동네 몇몇의 알록달록 유니폼이나 점퍼, 모자, 배지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또 몇몇은 종종 야구 경기를 직접 보고 와 자랑하기도 했는데 그 또한 부럽기는 마찬가지. 기록을 찾아보니 프로야구 첫해인 1982년에는 143만8768명이 야구장을 찾았다는데 그 시절의 나는 왜 한 번도 가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나를 그나마 프로야구 열기에 동참시켜주고, 아쉬움을 달래게 해준 건 바로 ‘부라보콘’이었다. 껍질을 까면 야구선수 사진이 들어 있었다. 해태에서 만든 거니 김봉연, 김준환, 김성환, 김종모, 선동열 등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 사진이 많았다. 내 기억 속 부라보콘 사진에 등장하는 한대화는 해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한대화의 첫 팀은 OB 베어스였다. 동네 골목에서는 당연히 수집 경쟁이 펼쳐졌고, 물물교환이 이뤄졌다. 얼마나 부라보콘을 사 먹었던지 제법 두툼하게 사진을 모았다. 지금도 본가에 가면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1995년 관중 500만 명을 돌파한 프로야구는 이후 침체기를 보이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 1000만 관중을 넘어섰다.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프로 스포츠가 된 것이다.

요즘엔 ‘크보빵(KBO빵)’이 큰 인기라고 한다. 한 제빵 전문 회사가 한국야구위원회(KBO),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KPBPA)와 손잡고 내놓은 빵이다. 롯데 자이언츠를 제외한 9개 구단의 특징을 빵으로 빚어냈다. 출시 사흘 만에 100만 봉 이상 팔려나가며 과거 ‘국진이빵’ ‘포켓몬빵’의 인기를 뛰어넘을 기세라고 한다. 봉지 안에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사진이 담긴 ‘띠부실(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스티커)’이 무작위적으로 들어 있다.

야구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들의 띠부실을 모으기 위해 크보빵 구매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인 김도영(KIA 타이거즈) 등 인기 선수들의 띠부실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빵값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될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인기의 크보빵을 얼마 전 선물받고는 그 옛날 부라보콘의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며칠 전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야구장을 찾은 한 팬이 건물 외벽에서 떨어진 구조물에 머리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았으나 사고 이틀 만에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소식에 충격을 받은 건 야구팬뿐만 아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2019년 완공된 최신 시설의 경기장이다. 시설 소유와 관리는 지방자치단체 쪽이, 운영권은 야구단이 갖고 있다. 책임 주체가 모호한 위탁 운영 구조에서 안전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았나 싶다.

KBO와 각 구단, 그리고 지자체까지 팬들을 보호할 매뉴얼 정비와 재발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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