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높은 호수 ‘티티카카’
3812m…고산병 증세 느껴질 고도에
볼리비아·페루 가르는 8300㎢ 호수
잉카 등 외세 피해 달아난 ‘우로스족’
땅이 아닌 호수 위에서 사는 삶 택해
갈대로 만든 인공섬 120개 터전으로
1200명 주민, 관광객 상대로 살아가
우로스섬 가는 배 출발하는 도시 푸노
박물관·송어 등 볼거리·먹거리 풍성
티티카카호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다. 해발고도는 무려 3812m로, 정상적인 호흡조차 쉽지 않은 고지대다. 이 호수는 볼리비아와 페루를 가르며 펼쳐져 있고, 면적은 대한민국의 약 8% 수준인 8300㎢에 달한다. 파란 하늘과 맞닿은 듯한 수면은 처음 마주한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잉카문명의 근원지로, 페루와 볼리비아인에게 신성한 호수로 여겨진다. ‘슈퍼 곡물’로 알려진 키누아도 이곳에서 가장 먼저 재배됐고, 원시의 감자 역시 수천 년 전부터 여기서 뿌리를 내렸다. 인류의 밥줄이었던 셈이다. ‘토토라(totora)’라는 갈대로 만든 인공섬 120여 개가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다. 보고 있어도 믿어지지 않는 풍경과 삶이 그곳에 있다. 다 떠나서 청량하게 아름답다. 내 안의 모든 찌꺼기가 한 번에 씻겨 나가는 듯한 특별한 쾌감에 일부러 더 거칠게 숨을 몰아쉬게 되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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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 20년 만의 재회
20년 전에도 티티카카호수에 와 본 적이 있다. 당연한 거지만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도 한국과 비교하면 변화는 더디고, 옛 모습이 고집스레 남아 있는 편이다. 페루 쿠스코에서 버스로 8시간 거리다. 남미는 고속버스터미널이 회사마다 다른 경우가 많다. 화장실도 안에 다 있다. 버스 하나만 봐도 문화적 차이가 느껴진다.
결코 짧지 않은 8시간이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새삼 남미가 가진 게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큼직큼직, 푸릇푸릇 안데스산들이 동네 앞산처럼 흔하게 펼쳐진다. 흔하게 펼쳐진다고, 절대 흔한 대접을 받아선 안 되는 풍경이다. 해발고도가 워낙 높은 곳이어서 키 큰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대신 키가 낮은 풀들, 이끼, 덮개 식물, 선인장이 채우고 있다. 우리네 산과는 퍽이나 다른 식생이다.
나무들만 자라기 힘든 게 아니다. 버스 안 승객 중 인상을 쓰거나 창백한 이가 종종 보인다. 실제로 고산증세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한둘이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응급실을 찾을 각오를 하고 이곳에 온 여행자들에게 라마와 알파카, 양과 말, 당나귀가 화답한다. 때로는 목적지가 아닌 목적지로 가는 ‘여정’이 곧 여행이 된다. 쿠스코에서 티티카카호수로 가는 길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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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퓨마 바위? 혹은 퓨마 똥?
티티카카호수는 ‘티티(퓨마)’와 ‘카카(바위)’의 합성어다. 원시 잉카인이 썼던 케추아어로 ‘퓨마 바위’라는 뜻이다. 티티카카호수를 공중에서 보면 퓨마가 토끼를 사냥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식으로 카카라고 발음하면 케추아어로 ‘똥’으로 들린다고 한다. 목에서 가래 끓는 듯한 발음을 해야 제대로 된 바위가 된다.
티티카카호수는 페루와 볼리비아가 양분하고 있다. 서로 ‘티티(퓨마)’는 우리 쪽, ‘카카(똥)’는 너네 쪽, 이런 우스갯소리로 상대 나라를 놀린다고 한다. 티티카카호수엔 인간이 만든 인공섬, 우로스섬이 있다. 수세기 전 우로스족은 잉카제국과 콜라족 같은 강력한 외부 세력의 침략을 피해 호수로 도망쳤고, 땅이 아닌 물 위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티티카카호수에 자생하는 ‘토토라’라는 갈대를 엮어 섬을 조성했다. 토토라는 튼튼하고 가벼우며, 잘 마르면 물에 뜨는 특성이 있어 뗏목과 섬을 만드는 데 이상적인 재료다. 우로스족은 이 갈대로 섬은 물론 집, 배, 탑, 심지어 신전까지 지었다. 시간이 지나면 갈대가 썩기 때문에 섬 위에 계속 새로운 갈대를 덧대며 유지한다.
토토라는 단지 건축자재로만 쓰이지 않는다. 속이 부드럽고 수분이 많아 껍질을 벗기고 생으로 먹으면 수박 껍질처럼 시원한 단맛이 난다. 갈대는 불을 피우는 연료로도 사용된다. 식재료이자 에너지 자원, 주거 기반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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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개의 인공섬이 둥실둥실
현재 우로스섬에는 120여 개의 작은 인공섬이 존재하고, 총 12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일부 섬에는 태양광패널이 설치돼 있어 조명과 소형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학교와 유치원이 있는 섬도 있는데, 아이들은 작은 배를 타고 등하교를 한다. 관광객은 페루의 푸노에서 배를 타고 섬을 방문할 수 있다. 티티카카호수 항구에서 출발하면 30~40분 만에 도착한다. 여행사 투어나 개인 일정으로도 방문 가능하다.
섬에 도착하면 주민들의 안내로 갈대 배를 타 보고, 갈대 공예품을 구경하거나 전통가옥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다. 물 위에서 사는 게 건강엔 괜찮을까?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단단한 땅에 맞게 진화된 인간이 365일 습하고, 물렁한 갈대섬에 상주한다는 게 내심 걱정됐다.
여행자가 방문한다는 걸 알고 원주민들은 서둘러 전통복장으로 갈아입는다. 현대적 옷도 있으나 여행자들이 기대하는 건 옛날 모습이기 때문이다. 비단 우로스섬만 그런 건 아니다. 원시부족들도 TV를 보고 스마트폰을 쓴다. 편리함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관광업이 주 수입원이다 보니 관광객 눈높이로 변장(?)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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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비극, 여행과 실제의 삶
방문하기로 한 날, 한 여자가 죽었다. 섬의 대표 격인 여자의 어머니였다. 여자는 눈이 퉁퉁 부은 채 여행자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관광’은 염치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마트에서 산 달걀과 닭고기만 조심스레 건네고, 조용히 섬을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살림살이를 선물로 주면 좋아할 것 같아 미리 준비해 갔던 거였다.
우로스섬 투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는 편이다. 일부 여행자는 현지인들이 기념품을 팔기 위해 몰려드는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을 사지 않으면 죄책감을 갖는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25달러 정도의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를 배로 둘러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뽑고도 남는다.
무엇보다 여행은 상상력의 영역이다. 땅이 아닌 물 위에서 살기로 결정했을 당시의 긴박함을 떠올리면 살고자 하는 그 간절함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아이들은 맨발로 폭신한 갈대섬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여행자들은 이런 곳에서 어찌 사나 걱정하지만, 이들의 눈엔 도시의 좁고 규격화된 아파트에서 지내는 우리가 더 안쓰러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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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큰 도시, 푸노
티티카카호수가 있는 푸노는 인구 14만 명가량으로, 페루에서 20위권 내외의 작지 않은 도시다. 시내는 평일인데도 활기가 넘친다. 특히 대학 도시답게 젊음과 거리공연, 청춘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이 외진 곳에도 한국 가게가 있었는데, 라면과 과자를 사려는 현지인으로 북적였다. 가격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두세 배나 더 비싸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 티티카카호수는 전 세계인이 몰려드는 꿈의 여행지이지만, 여기 사는 이들에게는 한국이 가장 가 보고 싶은 곳일 수도 있겠다는! 푸노성당은 18세기에 지어진 바로크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으로, 광장 바로 앞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다. 카콘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티티카카호수와 도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사진명소로도 유명하다.
마지막으로 푸노박물관에선 지역 선사시대 유물과 잉카 이전 문명의 흔적을 만나 볼 수 있어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들러볼 만하다. 푸노는 티티카카호수와 우로스섬만 있는 도시가 아니다. 활기로 가득한 도시이며, 티티카카호수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여행지다.
송어의 도시, 맛의 도시 푸노
푸노는 송어요리로 유명하다. 20년 전 이곳에서 돈을 잃어버렸다. 송어요리를 먹을 생각에 들떴는데,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식욕도 의욕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돈 생각에 그저 피눈물이 났다. 결국 그때 송어를 먹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돈이 있다.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들어가 송어요리와 알파카스테이크를 주문하고, 팁까지 두둑이 챙겨 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지금의 여유와 청춘의 가난 중 어느 걸 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청춘의 가난’이라고 답하겠다. 돈이 없을 때 먹었던 음식은 왜 하나같이 절절히 맛있었나 모르겠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떠난 여행은 평생의 기억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 준다.
송어 맛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눈물 흘리던 우로스섬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관광객은 잠깐 보고 떠나지만, 그들의 삶은 우리네와 다를 게 없다. 기쁨과 슬픔이 있고, 삶과 죽음이 있다. 다음에 또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야겠다. 예를 들면 프라이팬이라든지, 오래가는 전구라든지. 단순히 구경하고 사진 찍는 여행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현지인들과 나누는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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