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스타를 만나다 - 드래곤포니와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돌아온 밴드의 시대…대중음악 중심 우뚝
K팝 시스템 교집합 속 신예 보이밴드 등장
대형 소속사의 기획력·장르적 도전 돋보여
인디공연부터 세계적인 페스티벌까지 섭렵
|
“이젠 더 미쳐야만 해!” 적막을 깨고 호쾌하게 솟아오르는 청량한 고음의 외침을 신호로 각 악기가 불을 뿜는다. 힘찬 드럼, 묵묵히 흐름을 지휘하는 베이스, 화려한 기타 연주와 함께 오늘날 청춘을 살아가는 밴드의 송가다. 희미하지만 분명 저 멀리 끄트머리에 보이는 선명한 빛을 향해 어두컴컴한 표류를 견디는 젊음의 표상이다.
반대편에는 혁명의 깃발을 들고 분노하는 젊음이 날을 세우고 있다. 아이러니한 화면 속에 숨은 널 부숴 버릴 거야!” 4분25초 동안 펼쳐지는 다채로운 메탈 코어의 록 오페라가 비장하게 외치는 거대한 세계관을 지탱하고 있다. 6명의 멤버가 힘을 다해 뽑아낸 소리를 타고 질주하는 밴드 소리가 쾌활하다.
드래곤포니의 ‘낫 아웃(Not Out)’과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뷰티풀 라이프(Beautiful Life)’다. K팝 보이밴드의 새로운 세대를 자처하는 두 팀이 비슷한 시기에 내놓은 출사표다. 드래곤포니가 이제야 2번째 미니앨범을 발표하는 신예인 반면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벌써 6번째 EP다. 새 작품과 함께 활동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드래곤포니는 지난 주말 실내 페스티벌 ‘더 글로우’에 출연해 팬들에게 뜨거운 음악으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국내를 넘어 세계를 향한다. 오는 5월부터 한국을 시작으로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싱가포르, 미국을 도는 2번째 월드투어를 한다. 뉴진스, 아이브가 섰던 세계적인 페스티벌 ‘롤라팔루자 시카고’에도 출연을 확정 지었다.
고등학교 동창 편성현, 권세혁, 고강훈에 안태규가 합류한 드래곤포니는 루시드폴, 박새별, 정재형, 페퍼톤스, 이진아, 정승환 등 실력 있는 싱어송라이터가 대거 포진한 안테나뮤직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보이밴드다. 보이밴드라는 수식은 있으나 작동방식은 우리가 익히 생각하는 밴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작사·작곡·편곡을 도맡아 하고 싶은 음악을 선보이며, 데뷔 후 서울 홍익대 앞 인디공연장과 국내 유수 페스티벌을 돌며 실력을 쌓았다.
|
이번 ‘낫 아웃’ 앨범에 수록한 ‘웨이스트(Waste)’ ‘이타심’ ‘온 에어(On Air)’ 모두 팬들은 오프라인 무대에서 익히 들었을 곡이다. 미공개곡을 미리 들려줘 세트리스트를 채우고, 기대감에 부응하며 음원을 발매하는 방식 역시 수많은 인디밴드가 취하는 전략이다. 4인조 편성답게 음악은 깔끔하다. 완급 조절이 빛나는 합창곡 ‘낫 아웃’과 쓸쓸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이 돋보이는 ‘네버(Never)’를 필두로 밴드에 기대하는 강렬함과 쓸쓸함 모두를 갖추고 있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보이밴드’ 개념에 좀 더 충실하다. 이들은 데이식스를 낳은 JYP엔터테인먼트 산하 레이블 스튜디오제이의 2번째 밴드다. K팝의 기획과정을 거쳐 콘셉트와 세계관, 음악적 지향을 확정하고 이에 맞는 연습생들을 꾸려 악기 파트를 배분했다. 덕분에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건일, 정수, 가온, 오드, 준한, 주연 멤버 전원이 가창에 참여한다. 2대의 기타와 키보드, 신시사이저까지 동원해 보다 선이 굵고 개성 있는 음악을 선보인다. 그 역량은 반항적인 하드코어 펑크록에 헤비메탈 요소를 결합한 메탈 코어 장르로 빛을 발하고 있다. 처음엔 2000년대 전 세계 10대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이모(emo) 팝 펑크를 지향하다가 점차 소리에 힘을 싣고 있는 셈인데, 그 도전이 생각보다 본격적이다. YB 윤도현이 참여한 ‘인스테드(iNSTEAD)’, 거꾸로 YB와 함께한 ‘리벨리온(Rebellion)’을 들어보면 완연한 헤비메탈이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그들의 음악을 ‘장르의 용광로’라고 표현한다. 하나의 곡 안에서도 다양한 변주를 하며 화려한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준다.
2024년 대중음악계의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밴드 음악의 약진이었다. SNS를 적극 활용하는 Z세대와 알파세대가 K팝의 유행 대신 자신이 응원하는 록 음악을 직접 알리고 소통하며 조직적인 밴드 응원단이 꾸려졌다. 만들어진 음악 대신 만드는 음악, 서툴더라도 진심을 담아 눈빛으로 호흡하는 거친 소리의 매력이 힙스터 마니아들을 넘어 삭막한 음악에 지친 대중을 사로잡았다. 오랜 마니아들과 함께 늙어 가던 록 페스티벌과 매번 만나는 사람만 보이던 서울 곳곳 언더그라운드 공연장에 새로운 팬들이 몰려들었다. 작은 규모, 중간 규모, 큰 규모 각각의 수요를 맞추는 밴드들의 활약이 이어졌다. 이미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 밴드 몇 팀만이 생존하는 시장을 넘어 미약하게나마 순환하는 생태계가 비로소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최초로 확인한 해가 지난해였다. 이승윤, 실리카겔, 나상현씨밴드, 유다빈밴드, 한로로, 터치드…. 이름을 다 댈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밴드가 사랑받았다.
K팝의 유행 역시 밴드 음악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선두주자는 단연 데이식스다. 2015년 데뷔 이래 꾸준히 좋은 음악을 쌓아 오며 팬들과 호흡했던 이들은 입대 후 군악대에서의 연주와 성실한 군 복무로 오히려 팬을 끌어모으며 폭발의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결과가 지난해 전 국민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했던 ‘웰컴 투 더 쇼(Welcome to the Show)’와 ‘해피(HAPPY)’의 쌍끌이 성공이었다. 데이식스 역시 JYP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해 만들어진 팀이지만, 피나는 연습과 노력 끝에 작곡가 홍지상과 함께 그룹 고유의 서사를 자신의 작사·작곡으로 전달할 힘을 갖추고 있다. 과거 보이밴드 선배 FT아일랜드와 씨앤블루가 출중한 실력에도 기획된 밴드라는 편견에 저평가받았던 딜레마를 슬기롭게 극복한 사례다. 어디 데이식스뿐이던가. 2024년 대중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노래 중 하나인 (여자)아이들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인터넷 방송인들과 전직 일본 아이돌 보컬을 모아 꾸린 걸밴드 QWER의 ‘고민중독’과 ‘내 이름 맑음’ 역시 밴드 음악이다.
드래곤포니와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를 통해 오늘날 한국 대중음악 시장이 주목하는 밴드 음악과 K팝 시스템의 교집합을 목격한다. 창작이냐 기획이냐. 의문과 유행 가운데 우뚝 서기 위해 다시금 악기를 조율하고 창작에 몰두하는 청춘들이다.
사진=안테나뮤직·JYP엔터테인먼트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