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중산층의 기준

입력 2025. 03. 28   16:41
업데이트 2025. 03. 3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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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동 오즈세파 대표 
오계동 오즈세파 대표 



2023년 영국의 나이트 프랭크 자산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상위 1%에 들기 위한 순자산은 미국 550만 달러(약 80억 원), 영국 330만 달러(약 48억 원), 아랍에미리트 160만 달러(약 23억 원), 브라질 43만 달러(약 6억 원)가 있으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81억 인구 중 최상위 1%의 7분의 6은 자산이 200만 달러(약 29억 원) 이하다. 이런 재산 중 대부분은 집 1채 혹은 2채와 연금 투자에 묶여 있다. 1%의 상위 7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 중 5000만 달러(약 733억 원) 이상의 자금을 굴리는 100만 명 정도가 주로 와인, 예술품, 보석에 투자하는 이들이다. 투자는 소비와 또 다른 차원이다. 2018년 기준 지구상 상위 10% 자산가 안에 들려면 9만 달러(약 1억3200만 원)의 재산만 있으면 된다.

상위 10% 안에 드는 사람들은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데, 자녀들의 신분 상승 기회가 있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다. 프랑스에선 이들을 통칭해 ‘프레카리아트’라고 부르면서 프롤레타리아트와는 구분되나 계층 안정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알고 보면 세상에 가난한 사람 천지다. 우리는 워낙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만 매몰되다 보니 내가 가난한 것처럼 비치지만, 외연을 확대하면 대한민국이 얼마나 잘사는지 알 수 있다.

문화적 소양은 소양 이전에 기본적 삶의 질이 충족돼야 갖출 수 있다. 올 1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평균가는 92만 달러(약 13억 원)이고, 전국 평균은 28만 달러(약 4억 원)로 조사됐다. 5억~6억 원쯤 하는 아파트 1채와 연봉 6000만~7000만 원가량을 받는 가족이 문화적 소양을 높이기 위해 투자할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될지는 계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세계 상위 10%에 해당하는 4인 가구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공연에 나타나는 이가 매번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는 이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배고프다고 하는 이유다. 언론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명품 론칭쇼가 홍보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물건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10만 내외. 강남구 인구의 20% 정도다. 우리나라에선 중산층의 기준이 어디에서 아파트 몇 평에 사는지가 잣대가 되지만, 고상하다고 하는 나라들의 중산층 기준은 우리와 다르다.

옥스퍼드대에서 영국 중산층의 기준으로 제시한 것을 보면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불평·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등이다. 이들은 모두 사회적 태도를 이야기한 것이지 삶의 여유를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삶의 진정한 여유라고 할 수 있는 재산과 안전, 사회적 존경 수준을 말하기에는 그들도 부담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세계의 상위 10%가 자신을 ‘자신 없는 중산층’ ‘언제든 더 밑으로 추락할 수 있는 중산층’이란 의식을 갖고 있는 한 이 기준으로 중산층을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중산층이라고 정의 내릴 때는 수학적 중간계층이 아니라 최소한 사회적 추락과 삶의 궁핍함에서 벗어나 있고, 인간으로서 품위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우리나라 중산층으로서 세이코 시계를 찬다.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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